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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 스코츠먼_The Flying Scotsman_2006-리뷰

달콤한 쿠키 2013. 9. 25. 04:52

 


플라잉 스코츠먼

The Flying Scot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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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더글라스 맥키넌
출연
조니 리 밀러, 빌리 보이드, 브라이언 콕스, 로라 프레이저, 론 도나치
정보
드라마 | 독일, 영국 | 96 분 | -
글쓴이 평점  

 

 

제목의 ‘플라잉 스카츠맨’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제 모델이 된 영국의 사이클 선수, ‘Greame Obree’의 별명입니다. 그레이엄은 실재 인물로, ‘One Hour Record(한 시간 내에 달리는 최장기록)’를 두 번이나 깼으며, 4km 추발 종목에서 세계 기록을 두 번이나 갱신했고, 93년과 95년 두 차례에 걸쳐 세계 기록을 세운, 90년대 영국 사이클계의 수퍼스타였습니다. 그는 또한 Superman Position이라고 불리는 자세를 발명해서 다른 많은 사이클 선수들의 기록 갱신에 막대한 영향을 준 사람이죠.

 

영화는 스포츠 영화라기 보다, 휴먼드라마, 혹은 이 사람의 전기 영화에 가깝습니다. 또래 아이들의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아빠에게 선물로 받은 자전거에 익숙해지는 어린 시절의 동기부터, 성장한 후,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며 메신저로 일하다가 사이클이라는 스포츠에 뛰어들기까지, 영화는 이 사람이 자전거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을 아우르고 있거든요. 그래서 영화는 경기나 기록 갱신 같은 주인공의 업적들 보다, 오히려 이 인물의 삶에 더욱 집중하는 편입니다.

 

그레이엄은 타고난 라이더이고, 승부사이며, 타고난 물리학자이기도 합니다. 자전거와 기록에 대한 이 사람의 왕성한 호기심과 승부 근성은 정말 대단합니다. 특히, 기록을 조금이라도 단축시키기 위해 바퀴를 개조하고, 사이클의 구조를 바꾸는 모습을 보면, 물리학에 대한 감각도 타고 났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자신의 자전거를 디자인하고 자신에게 최적화시키려는 그레이엄과 WCF(World Cycling Federation)이 부딪히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름도 없는 스코틀랜드 촌놈에게 이런저런 트집을 잡고 그를 무력하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레이엄이 타는 자전거가 그들의 규정에 벗어났다느니, 그레이엄이 자전거를 타는 자세가 불안하고 촌스럽다느니,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정말 치졸하기까지 한 거죠. 심지어 그들은 그레이엄을 실격시키기 위해 없는 규정까지 급조해가면서 방해수를 둡니다.

 

이런 종류의 전기 영화에서 흔하게 하는 실수가 있는데, 그건 그 대상을 너무 신격화시키려고 애를 쓴다는 겁니다. 이 영화는 대부분 잘 했지만 ‘갈등의 심화’라는 것을 너무 의식했는지 무리수를 두고 맙니다. 어릴 적의 나쁜 친구들과의 조우, 선수 자격 박탈에 이은 자살 시도 등의 에피소드들은 억지스러웠으니까요.

 

이 영화가 가장 잘 한 것은 그레이엄과 그의 주변에 배치된 인물들의 앙상블입니다. 특히, 매니저로서 모든 성의를 보이는 말키는 친구로서도, 동료로서도 무척 훌륭한 조연이에요. 이 사람이 그레이엄에게 보이는 우정과 충의는 거의 신적인 수준이죠. 옆에서 그레이엄을 지켜주는 아내, 앤도 그렇고, 백스터 목사도 그렇고요.

 

이들은 단순한 조역들이 아닙니다. 그레이엄의 인생을 바라보면 더욱 그렇죠. 스포츠맨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그레이엄의 성공엔 그 자신 뿐 아니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죠. 그것은 우리가 살면서 얻게 되는 당연한 교훈이기도 합니다만 그것을 진심으로 깨닫는 것은 힘듭니다. 앞만 볼 게 아니라, 가끔 뒤도 돌아보고 주위를 살피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것이 나이를 먹을수록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는 크게 무엇을 주장하거나, 사이클이라는 스포츠에 대해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알려주려는 태도는 거의 없습니다. 사이클 선수로서보다 한 인간으로서의 그레이엄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죠. 하이라이트가 빠져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이런 점이 좋았어요. 스포츠 영웅에 대한 이야기라고 그 사람이 항상 영웅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스포츠 영화에 있어서 환성과 박수, 감동적인 승리도 좋긴 하지만, 때로는 고인 듯 흐르는 듯, 들려주는 이런 이야기도 충분히 감동적일 수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