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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을 쓴 소녀_La Religeuse_The Nun_2013-리뷰

달콤한 쿠키 2014. 3. 25. 19:55

 


베일을 쓴 소녀 (2014)

The Nun 
8.1
감독
기욤 니클루
출연
폴린 에티엔, 이자벨 위페르, 마르티나 게덱, 루이즈 보르고앙, 프랑수아 네그레
정보
드라마 | 프랑스, 독일, 벨기에 | 114 분 | 201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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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 두 언니의 결혼을 앞두고 지참금 마련으로 집안이 어려워지자, 부모님에 의해 수녀원으로 들어가기를 강권당하는 시모닌은 난처해집니다. 집안 형편을 위해서 종교적인 삶을 살라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일단 가혹하죠. 보릿고개 넘기기 위해 늙은 부모를 고려장하는 것과 뭐가 다르답니까. 게다가 시모닌은 하나님을 사랑하긴 해도, 수녀가 될 만큼의 신앙을 갖기엔 아직 어려요. 시모닌에겐 그런 깊은 신앙심은 없죠. 그런데 알고 보니, 부모가 그런 희생을 어린 딸에게 강요하는 데엔 사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출생의 비밀이 있었던 거죠. 결국 우리의 주인공은 엄마의 죄책감을 덜어드리기 위해 수녀원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합니다.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수녀원 생활이었으니,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습니다. 솔직하고 친절한 성격의 원장 수녀님 덕분에 그럭저럭 적응을 하려는데 원장 수녀님이 덜컥 죽어버리고, 이런저런 수녀원을 전전하며 시모닌의 고난이 시작되죠. 어떤 곳에선 왕따에 고문까지 당하고 어떤 곳에선 너무나도 지나친 사랑을 받고,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하면서 시모닌은 그곳을 벗어날 기회를 노립니다. 시모닌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기둥 줄거리도 그렇고, 결말도 그렇고, 프랜시스 버넷의 동화 ‘소공녀’가 연상됩니다. 유복한 여자 아이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거지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하여 갖은 고생을 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옛 친구의 은혜로 다시 행복해지는 그 동화 말예요. 너무나 유명하니 다들 책이나 영화로 한 번 쯤은 접한 기억이 있을 거라 생각돼요. 하지만 이런 익숙함이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결론부터 적자면 굉장히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시모닌을 향한 폭력의 강도는 꽤 세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온통 가시밭길투성이어서 도망갈 구멍은 없어 보이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시모닌이 정말 수녀원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은 잔인하고 냉혹하며 인정사정없습니다. 이자벨 위뻬르가 원장 수녀를 연기한 세 번째 수녀원에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인정 많고 유머 감각 넘치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안심할 수 없는 거죠. 직접적인 폭력이 아니더라도 그 정도면 거의 사람 피를 말리는 수준이니까요.

주인공을 엄청난 난관으로 던져놓고 빠져나오는 과정을 지켜보는, 전형적인 아크 플롯(Arch Plot)의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드라마틱하다 못해 TV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하죠. 시모닌에게 수녀원으로 들어가도록 부추기는 ‘출생의 비밀’이란 소재를 보세요.

 

원작이 된 소설은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다고 합니다. 종교 질서를 지키기 위한 이유였다지만 오늘날의 관객들에겐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좀 시시할 거예요. 종교계도 엄연히 사람들의 집단이고, 그 구성원들 역시 우리와 하나 다를 바 없이 오욕칠정에 시달리는 인간이니까요. 지금도 그런데 200년 전에는 더 했겠죠? 그 바닥에도 범죄자나 똘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마당에, 원작에 대한 그런 정보는 오히려 관객들의 솔직한 접근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배경과 설정이 지극히 종교적이고 나름 종교에 관한 테마도 무시 못 하지만, 영화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난처한 상황에 빠져 생고생을 하는 시모닌과 그 주변의 인간군상이 만들어내는 고난의 드라마입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관람 태도 역시 종교적인 영화로서보다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한 인물의 드라마로 접근하는 것이 더 큰 감동과 재미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종교라는 권력에 혼자 맞서는 시모닌의 캐릭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창백한 피부에 연약하고 아직 어린 나이에 낯선 환경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모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갑니다. 신의 사랑 어쩌고, 하는 감언이설로 눈속임하고 있지만 종교계 역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권력집단에 불과하잖아요. 그런 아이러니는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이고 전부이며 영화의 테마이기도 합니다. 시모닌이 내내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은 ‘자신의 신념’이죠. 신을 사랑하든 그렇지 않든, 어떤 삶을 살든 그건 스스로의 의지이고 선택이며, 영화는 그 신념을 갖고 지키는 것이 누군가의 인생에 얼마나 큰 가치인지를 경험하게 해주죠. 영화의 목소리도 그 부분에 가장 큰 힘이 실리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영화적인 방식들이 좋았어요. 시모닌이라는 캐릭터는 화면을 통해, 오직 사건을 통해서만 묘사되고 설명됩니다. 캐릭터 묘사에 있어 가장 고전적이고 여전히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그것에 이처럼 충실한 영화는 사실 별로 없거든요.

창백하고 연약한 인상이지만 깡다구가 엿보이는 외모의 Pauline Etienne의 캐스팅도 꽤 성공적이었고요.

 

66년, 프랑스의 Jacques Rivette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가 있습니다.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요. 그 영화는 못 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