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투게더_春光乍洩_Happy Together_리뷰
해피 투게더 (2008)
Happy Together
9.3
비록 여기저기 뜯겨진 버전이나마 오래전 이미 개봉을 했었고, 몇 년 전인가 장국영 추모 영화제에서 무삭제 버전으로 재개봉도 했었고, 감독이나 출연 배우들의 네임 밸류로 모두들 한 번 씩은 접했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엊그제, 김조광수 감독의 영화사를 후원하는 팬 모임인 ‘레인보우 프렌즈’의 정기 상영회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네요.
같은 영화를 다시 보거나, 같은 책을 되풀이해서 읽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만, 제 생각엔 그런 행위는 음식을 먹는 것과 비슷해요. 좋아하는 음식은 자주 찾게 되고, 먹을 때마다, 혹은 누가 만들었는지에 따르는 약간씩 틀려지는 조리 방법이나 양념과 재료들, 당시의 기분이나 무드 등의 조건에 따라 받아들이는 맛이 다르거든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나 책들을 되풀이해서 보고 읽는 편입니다. 그것들을 들출 때마다 전에 놓쳤던 디테일들이 보이고, 같은 내용이라도 감상이 다르고, 또 내용을 이미 알고 있으니, 중간부터 시작해도 충분히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마음에 쏙 들어온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키워드를 갖고 있긴 했지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제 상식, 제 감정으론 어려웠거든요. 화면도 뮤직비디오를 방불케 하는 지나친 멋스러움으로 눈에 걸렸고요.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온 두 명의 홍콩 남자가 사랑했다가 헤어지고, 다시 사랑했다가 헤어지는 이야기에요. 줄거리만 본다면 최근에 개봉한 ‘라잇 온 미(Keep the Lights on)’와 비슷하지요.
보영과 아휘, 두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엔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보영은 아휘를 사랑하면서도 자유롭길 원하고, 아휘는 보영을 사랑해서 소유하고 싶어 하죠. 동성애자들이 아니더라도 이런 사랑은 할 수 있죠. 단지 사랑하는 연인들이 모두 남자일 뿐, 이들의 이야기에는 퀴어들만이 공유하고 아파하는 코드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반드시 ‘퀴어 영화’라는 범주 안에서 소비되어야 할 이유는 특별히 없어요.
두 인물의 갈등은 사랑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보영은 자유로운 영혼이에요. 아휘를 사랑하지만 그에 종속되길 거부하는 인물이죠. 반면 아휘의 사랑은 좀 지독합니다. 어떤 면에선 가학적이랄 수 있어요.
겉에서 보기에 아휘는 친절하고 책임감 강하고 일편단심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는 소유욕이 무척 많은 사람입니다. 보영이 양손을 다쳐 꼼짝도 못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사람이니까요. 이 사람은 한시라도 보영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참지 못 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담배 사러 나가는 것조차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요. 어떤 면에서 무척 이기적인 남자라고 할 수 있어요. 더 잔혹한 행동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아휘와 그에 대한 사랑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보영의 심리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아휘를 사랑하지만, 아휘가 자신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하는 욕망에는 두려운 거죠. 그래서 아휘를 다시 떠나고, 그가 떠난 자리에 다시 돌아와 그리움에 울부짖습니다.
이야기를 잘 뜯어보면, 이 영화는 소위 ‘주류’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요. 이른바 영화학도들이 말하는 ‘드라마트루기’에 많이 벗어나 있죠. 이야기 중간에 끼어든 ‘장’이라는 인물도 그렇고, 내부에 함몰된 내레이션이나 툭툭 던져지는 이미지 장면들, 지나치게 멋을 부린 편집과 카메라 트릭 등등. 하지만 그것들이 눈에 거슬리고 유치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오롯이 감독의 역량 덕분이겠지요.
‘장’이라는 인물에 대해 약간 불평을 했지만, 이 인물이 하는 역할은 분명합니다. 엔딩의 감동은 이 사람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거든요. 그런 이유로 이 영화는, 왕가위 감독의 다음 작품인 ‘화양연화’와도 많이 닮았습니다.
몇 년 동안 이 영화가 꽤 우울한 영화라고 믿고 있었는데, 엊그제 감상 후, 생각 외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습니다. 이야기는 슬프고, 두 사람의 감정도 안타깝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리 무거운 영화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긍정적이고 희망을 품고 있는 느낌이 더 많았거든요.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려는 ‘사랑’의 힘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