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기프트_the Gift_2015-리뷰
새로운 직장과 더불어 새로운 집, 새로운 계획과 새로운 인생에 들떠 있는 ‘사이몬’과 ‘로빈’ 부부는 어느 날 사이몬의 동창이라는 ‘고든’과 조우하게 됩니다. 당장 고든에 대해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는 사이몬은 곧 그를 기억해내지만 친절과 환대로 중무장한 채, 사소한 선물 공세에 불쑥불쑥 때 아닌 방문을 일삼으며 그들의 곁을 맴도는 고든이 반갑지 않습니다. 그런 일이 잦아지자 사이몬은 점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게 되고, 로빈은 남편의 그런 반응이 과민한 것 같아 약간 별로죠. 사이몬의 생각대로 고든의 친절엔 어떤 저의가 있는 걸까요, 아니면 단지 사이몬의 과민 반응일 뿐일까요.
이야기에서 고든의 의도나 목적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학창 시절, 고든은 사이몬이 주축이 된 패거리들에 의한 왕따 폭력의 희생자였고 사이몬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성인이 되어 결혼까지 하고서도 양아치 짓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은 영화 중간쯤에 모두 드러나니까요. 이야기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고든의 ‘의도’가 어떤 ‘방법’을 통해 어떤 ‘결과’를 낳느냐 입니다.
피상적으로 한 남자의 복수담이며 과거의 죄는 평생을 가니까 절대 남에게 의도적으로 피해를 주지 말자는 교훈은 괜찮다고 쳐도, 이 영화엔 분명히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재미있고 잘 만들어졌으며 훌륭한 배우들이 나오고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충분히 귀 기울일 만하니, 특별히 시간 낭비했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엔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올바르지 못한 뭔가’가 있어요.
먼저, 고든이 원하는 게 단순한 ‘사과’인지, 아니면 보다 적극적인 ‘복수’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처음엔 사이몬의 사과만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지만, 디테일을 보면 이 사람은 처음부터 아예 복수를 작정한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플랜 A’가 무엇이었든 고든의 행동과 사이몬 부부의 반응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즐기는 것엔 그리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든의 의도가 사과나 복수, 어느 쪽이었던 간에 그 방법은 솔직히 불편합니다. 께름칙하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사악한’ 방법이었어요.
우선 밝히자면, 고든이 당한 학교 폭력은 단순히 왕따와 육체적인 폭력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영향으로 고든은 학교를 중퇴를 해야 했으며 사이몬이 퍼뜨린 해괴한 소문으로 아빠에게 죽을 뻔하기도 했죠. 그 결과, 고든의 아버지는 살인미수로 옥살이까지 해야 해서 그 가족은 거의 풍지박살나다시피 했으니, 그 분노와 증오, 복수심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갑니다. 거기에 사이몬은 아직도 그 짓, 타인을 모략하고 누명을 씌우고 이간질하며 자신의 이득과 성공을 위해 타인을 짓밟는 양아치 짓을 계속 하고 있으니, 한심한 인물이라는 것은 둘째 치고, 과거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던 고든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가 찰 노릇이었겠죠. 이건 뭐,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도 아까울 지경으로 사이몬은 그렇게 당해도 싼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이몬의 아내인 로빈은 고든에게 완전한 타인입니다. 로빈은 고든에게 호감을 가졌으며 사이몬과 고든의 과거를 알게 된 후로는 오히려 사이몬에게 사과하기를 다그친 사람이죠. 이 사람은 양심적이며 균형이 잡힌 윤리 의식의 소유자란 말이죠.
그런데 고든이 로빈을 대하는 것을 보세요. 고든은 로빈에게 몰래 약을 먹이고 성폭행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아주 민감한 부분인데, 영화는 고든이 로빈을 진짜로 성폭행했는지, 아닌지, 로빈이 낳은 아기가 사이몬의 아기인지, 고든의 아기인지 답을 주지 않고 있어요. 그게 바로 사이몬을 향한 고든의 ‘교묘한’ 복수입니다. 의심과 불신의 늪에 사이몬을 빠뜨린 후, 사이몬이 자신에게 요구했던 것처럼 ‘과거의 일은 과거일 뿐’이라는 주문을 걸고 있는 거죠.
하지만 사이몬은 꼴좋게 당했다 쳐도 로빈의 입장에서는 ‘때 아닌 날벼락’입니다. 고래 싸움에 등터지는 새우 꼴인 거죠. 실제로 약에 취한 상태에서 강간을 당한 거라면 최악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이몬에게 불신과 의심의 대상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니까요. 남자 하나 잘못 만나 사랑에 빠진 결과치고는 너무 혹독합니다. 게다가 자신이 동정해준 남자에 의해 뒤통수를 맞은 거나 다름없죠. 고든이 사이몬의 희생양이었던 것에 반해, 로빈은 그런 두 남자의 감정의 찌꺼기까지 감당해야 하는 취급을 당했으니, 영화가 이 여자에 대해 제대로 대접한 기분이 들지 않는 거죠. 절대로요.
이 영화의 감상에 ‘올바르지 못한’ 뭔가가 있다고 좀 전에 적었습니다. ‘사악하다’는 표현도 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로빈에게 두 남자가 한 일을 생각해도 그렇지만, 전체로서의 영화, 대중문화로서의 그 영화가 그 캐릭터를 다루고 있는 방식을 생각하면 그런 느낌이 더욱 절실합니다. 이 영화의 무의식엔 은근히 여성을 착취하는 의도가, 남자들의 인생에 희생돼도 괜찮다는, 남자들의 계획에 이용당해도 괜찮다는, 성을 희롱당하고 유린당해도 괜찮다는 목소리가 긴 메아리로 울려 퍼지는 것 같으니까요.
고든의 마지막 선물인 유모차를 발견한 사이몬이 동봉된 카드를 읽을 땐 소름이 돋더군요. 카드에 적힌 ‘the Gift’가 유모차인지, 아니면 방금 전에 로빈이 출산한 아기인지, 무엇을 두고 말하는지 말이죠. 아무래도 중의적인, 의미심장한 영화적 장치임이 분명하겠지만 아기를 선물이라고 일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 정보는 아래로...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93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