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쉬, 허쉬... 스윗 샬롯_Hush, Hush... Sweet Charlotte_1964-리뷰
파티 도중 ‘존 메이휴’가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터지고 그 파티를 주최한 집의 딸인 ‘샬롯’이 그 혐의를 받습니다. 옷에 피를 묻힌 모습도 그랬지만 샬롯이 유부남이었던 존과 ‘사랑의 도피’를 하려 한다는 비밀이 새어나가, 샬롯 아버지의 협박에 못이긴 존이 샬롯을 배반했다는 사실이 샬롯을 더욱 의심스럽게 했던 거죠. 하지만 목격자나 뚜렷한 물증이 없었고 재력가인 아버지를 둔 덕에 샬롯은 법의 처벌은 면했지만 반미치광이가 된 채 집안에 틀어박히게 됩니다.
긴 세월이 지나 아버지가 죽은 후 집안을 거의 돌보지 않은 탓에 샬롯의 가문은 거의 몰락 위기에 처합니다.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고택(古宅)은 과거 사건으로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집안의 유일한 친척인 ‘미리엄’과 오랜 친구, ‘닥터 드류’가 가정부 ‘벨마’와 칩거 중인 샬롯을 보러 그 집을 방문합니다.
그 후로, 샬롯은 자신의 집에서 이상한 일들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오래 전에 죽은 존의 목소리가 들리고 샬롯을 위해 존이 만들었다는 노래가 피아노로 연주되고, 거울이 갑자기 깨지고 존의 잘린 목과 손목이 느닷없이 튀어 나오고……. 샬롯은 과연 진짜 미친 걸까요. 아니면 어떤 다른 음모가 있는 걸까요.
1964년의 영화입니다. 그 안엔 무척 많은 호러 장치들이 도사리고 있지만 이야기 자체는 크게 무섭지는 않습니다. 최첨단의 C.G.와 사실적인 특수 효과로 무장된 오늘날의 호러 영화에 익숙한 우리들이 이 영화를 보며 오금이 저리는 경험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이 영화는 호러라기보다 70~80년대에 유행했던 텔레비전 드라마의 납량특집 수사물에 가깝습니다. 범죄와 피해자, 그리고 범인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영화죠.
이야기가 호러와 미스터리를 아우른다는 사실은 얼핏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의 소설을 생각나게 하지만 카의 소설들이 플롯을 비틀고 트릭을 능란하게 구사하는 추리소설 황금기의 생산물이었다면, 이 영화는 그 이후의, 프랑스의 작가들(‘피에르 브왈로(Pierre Boileau)’나 ‘또마 나르스자끄(Thomas Narcejac)’ 콤비 같은)이 시도했던 호러와 미스터리를 기반으로 한 ‘심리드라마’ 같은 느낌이 많습니다. 현대의 관객들도 이 영화를 대하는 자세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사랑에 모든 것을 걸 정도로 순진한 샬롯과 그녀를 시기하는 미리엄의 대결은 흔한 인물 구도입니다. 하지만 그 갈등이 거의 마지막까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특이하죠.
샬롯은 미리엄을 믿는 편이었고 미리엄도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정도로 멍청한 여자는 아니었습니다. 미리엄의 질투는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뿌리 깊은 증오가 되고 아름답고 부유한 사촌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미리엄-드류’ 커플에 맞서는 ‘샬롯-벨마’ 팀의 전투력은 어처구니없어 보일 정도로 약합니다. 성공한 커리어 우먼과 의사라는 엘리트 커플에 비해 두 여자가 무기로 내세울 것은 오직 순진함에 가까운 사랑과 충정심 뿐이었으니까요. 이야기가 맞는 결말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결국 ‘감성’이 ‘이성’보다 우월했음을 보여주는 엔딩은 단순한 권선징악의 결말보다 그 여운이 깁니다.
당시엔 진지하게 ‘호러’로 기획되고 만들어졌을 영화일 테지만 지금의 시선으로 본다면 많이 촌스럽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촌스러움이 오히려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캠피(capmy)’한 즐거움을 줍니다. 실내극의 경제성, 흑백영화다운 음영의 흥미로운 활용, 고딕(gothic) 스토리의 향수 같은 요소들도 이 영화의 장점입니다. 특히 ‘미친 노파’의 클리셰를 역으로 이용한 플롯은 무척 세련됐죠.
비록 이 영화가 호러의 서브 장르인 ‘미치광이 노파(psycho-biddy)’ 장르에 발을 깊이 담그고는 있지만, 이야기는 그것을 뒤엎습니다. 알고 보니, 그 할망구는 미친 것도 아니고 사악한 것은 더욱 아닌데다, 오히려 범죄와 사악한 음모의 희생양이었다는 거죠. 관객들이 이런 ‘뒤집기’에 불편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늘어지는 결말은 다소 구태의연하고 사족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정서를 마무리 하는 데엔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족
‘베티 데이비스(Bette Davis)’의 필모를 보면, 특히 말년에 호러, 스릴러 장르의 영화들이 많이 보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 사람의 분위기가 그랬던 모양이에요. 특별히 나쁘거나 그러진 않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젊은 나이에 출연했던 영화나 배역 등과 비교할 때, 배우로서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까칠하면서도 헌신적인 가정부, 벨마를 연기한 사람은 오래 전 인기 TV 외화시리즈였던 <아내는 요술쟁이>에서 주인공의 엄마로 나왔던 ‘아그네스 무어헤드(Agnes Moorehead)’입니다. 전 주인공보다 그 엄마의 팬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