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동화_온다 리쿠-리뷰
스무네 살의 평범한 아가씨인 ‘마유코’는 이십오 년 전에 죽은 화가인 ‘다카스키 노리코’의 유작 전시회에 갔다가 이상한 환영을 보고 기절합니다. 그 일을 계기로 알게 된, 노리코의 아들 ‘뵤’는 마유코가 죽은 어머니의 환생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으며 자신의 어머니가 왜 살해당해야 했는지 알아내는 데에 도와줄 것을 간곡히 부탁합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본 것이 단순히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마유코는 과거의 사건에 점점 흥미를 갖기 시작합니다.
도입부가 무척 멋집니다. 흡인력이 아주 좋아서 책을 들면 놓을 수가 없죠. 이는 주인공 마유코의 매력(능력)에 기인하는데,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마유코의 능력은 작품 안에서 단순히 ‘기억력이 좋다’고만 표현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훨씬 능가합니다. 마유코의 진짜 능력은 ‘타인의 기억’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도 겸비하고 있는 것 같고요. (‘어빈 커쉬너(Irvin Kershner)’의 <로라 마스의 눈(Eyes of Laura Mars)>이란 영화가 생각나지 않나요?)
사후 한참이나 지나 발견된 노리코의 유서를 통해 용의자를 배열하는 방식도 세련됐습니다. 노리코의 사후에, 친구들에게 선물하도록 남겨진 그림들을 통해 작가는 그들의 관계, 감정, 그리고 그 사람들은 물론이고 노리코 자신을 설명하고 있는데, 작가의 생생한 언어로 묘사되는 그 그림들은 노리코와 용의자들이 공유하는 과거 기억을 드러냄으로 상당히 의미심장한 단서가 됩니다.
사실 이 작품이 노리고 있는 것은 ‘누가 노리코를 죽였는가’보다 ‘노리코는 왜 죽임을 당했는가’에 있습니다. 그 죽음의 가장 강력한 동력은 범인이 아닌 노리코 자신에게 있으며 ‘노리코는 과연 어떤 여자였는가’의 문제는 이 작품의 핵심이 됩니다.
작가는 이야기의 변방에 존재하는 죽은 여자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데려옵니다. 이야기가 진행할수록 노리코는 과거의 망령이 아닌, 여전히 살아남아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체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그림자 같은 캐릭터가 됩니다.
결말은 일단 말은 됩니다. 설마, 하다가도 친부모에 의한 가정폭력이 얼마나 빈번한지를 안다면 있을 수 있는 얘기죠. 게다가 이야기 곳곳에 심어두고 뿌려놓은 복선과 단서들이 너무 치밀한 탓에 독자로서 어떻게 반박할 여지가 없는 편이에요. 동화 같은 이야기에 전혀 뜻밖의 진상은 독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작품의 주요 모티프인 ‘백설공주’의 이야기는 작품의 상징으로 아주 적절해 보입니다.
하지만 저자인 ‘온다 리쿠’의 장기가 골고루 발휘됐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만큼의 ‘팬덤’은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소재와 결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환생(還生)’이라는 소재는 종교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문학의 소재로서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환생이라는 소재를 문학에 데리고 온다면 판타지나 호러 장르의 작품이 되기 쉬운데, 작가는 논리적인 설명이 필수인 미스터리라는 장르 안으로 그것을 데리고 옵니다.
우선 이 작품은 논리가 우선인 미스터리 작품이니만큼 일단은 ‘말이 돼야’ 합니다. 엔딩에서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독자들을 그럭저럭 설득하지만 다소 위태롭게 보입니다. 마유코가 지닌 능력이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인데, 마유코라는 인물 역시 판타지나 히어로 물의 영역에 있는 캐릭터죠. 사건의 진상은 마유코라는 인물의 능력을 토대로 합니다. 독자들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작품은 설득력을 잃고 맙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런 점이, 오히려 ‘온다 리쿠답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온다 리쿠의 작품들 중에서 다소 이질적인 작품인데, 그러면서도 동시에 과거와 현재, 환상을 아우르며 다소 동화적인 분위기와 기괴한 정서를 뿜어내는 작가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유코라는 캐릭터를 일단 인정하고 나면 독자들은 작가가 펼쳐 보이는 음울하고 기괴한 세계를 충분히 즐길 수 있죠.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다른 소설이나 영화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잠자는 살인(Sleeping Murder)>, ‘대프니 뒤 모리에(Daphne du Maurier)’의 <레베카(Rebecca)>, '조셉 맨키비츠(Joseph Mankiewicz)‘의 <지난여름, 갑자기(Suddenly, Last Summer)> 기타 등등.
하지만 독창성의 문제에서 흠을 잡을 여지는 별로 없습니다. 아마 온다 리쿠의 색깔이 강렬한 탓이겠지요.
사족이지만 책표지에서 내세우고 있는 ‘호러 미스터리’라는 단어가 너무 선정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치게 노골적인데다 약간 과장된 감도 없지 않죠. 역자의 말에 의하면 원작의 띠지에도 그런 소개글이 있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