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소리 마마_기리노 나쓰오-리뷰
40대 중반의 ‘아이코’가 일하는 한식당에 어느 날 한 쌍의 부부가 손님으로 옵니다. 아이코를 알아보는 그 부부는 아이코의 보육원 시절을 함께 한 보육사와 동급생. 아이코는 퇴근 후 늦은 밤, 나중에라도 들러 회포나 풀자는 부부의 초대에 응해 그들의 집을 방문해서는 그 부부를 불태워 죽입니다.
작품의 포문을 여는 사건은 끔찍합니다. 산 사람 몸에 불을 지르는 것도 끔찍한데, 그 행위의 주체가 ‘별 거 아냐’ 하는 것 같아서 더 끔찍하죠. 게다가 화마에 희생된 ‘미사에’와 ‘미노루’ 부부가 마치 주인공인 양, 이야기 초반에 꽤 공 들여 자세히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첫 장(章)이 주는 충격은 꽤 오래갑니다.
이 첫 장을 읽어낸 독자들의 열에 아홉은 아이코가 틀림없이 ‘나쁘고 무서운 여자’일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독자들은 과연, 아이코에 대한 그 판단을 이야기 끝까지 가지고 갈 수 있을까요.
아이코가 나쁘고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은 틀린 건 아니지만 완전히 옳은 것도 아닙니다. 아이코가 두렵고 위험한 존재가 된 데엔 다른 두렵고 위험한 존재를 많이 겪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코에게 더 나쁜 건 다른 사람들이라면 평생을 통해, 긴 삶을 통해 했었을 그 경험들을 어린 시절(유아시절)에 모조리 몰아서 했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충격이라도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사뭇 다른 법입니다.
아이코는 이른바 ‘홍등가’의 아이입니다. 생부는 누군지 모르고 낳아준 엄마는 출산 후 행방을 감췄습니다. 아이코는 포주의 손에서 자랐고 매춘을 업으로 삼는 다른 여자들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적절한 사랑이나 관심을 받지 못 한 건 당연합니다. 성장 과정에서도 아이코는 차별, 따돌림, 소외, 폭력을 경험합니다. 보육원이나 위탁 가정도 아이코에게 도움이 되지 못 했습니다. 아이코는 돈을 밝히고 눈치만 빠른,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아이코는 어른이 됐지만 전혀 어른스럽지 못 합니다. 엄마가 남기고 떠났다는 헌 구두를 엄마 삼아 외로움을 달래고 구두와 대화를 나눕니다.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조금이라도 거슬린다면 그 상황을, 혹은 그 사람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행동들은 살인, 방화, 절도 등의 범죄였습니다. 도덕성이 결핍된 듯한 이런 아이코의 모습은 아마 학습된 결과로 보입니다.
아이코의 세계는 이 사람이 어렸을 때나 어른이 되어서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권력은 잘나고 많이 배운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그들은 돈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지배를 받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 위에, 총체적으로 군림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남자들’입니다. 윤락녀들의 사회에서 그들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잘난 손님을 받느냐’입니다. 단골들이 많은 것도 권력이 됩니다. ‘경영도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일본 호텔 체인의 회장도 남편의 사랑을 얻지 못해 전전긍긍합니다.
남자들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작품 속 대부분의 여자 캐릭터들과 비교하면, 아이코는 오히려 용감하고 당당해 보입니다. 아이코의 범죄 행위는 마치 이 세계를 자기들 것인 양 쥐락펴락하고 여자들을 도구와 수단으로 삼는 남자들에 대한 ‘단죄’이며, 더 크게는 그것을 용인하고 자신의 권력을 오용하는 행태가 만연해 있는 사회에 대한 ‘저항’입니다.
하지만 아이코는 결국 굴복하게 됩니다. 동기는 인정할 수 있을지언정, 그 방법은 사회적으로 용납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이코의 행위들에 중요 동력이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약점으로 작용한 것도 아이러닉합니다.
작가가 ‘모성’이라는 소재를 작품 속에 녹여낸 방법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아이코는 항상 ‘모성’을 그리워하고 지향했지만, 정작 ‘모성’은 아이코에게 결여된 ‘도덕성’을 요구합니다.
‘기리노 나쓰오 (桐野夏生)’가 이 작품에서 고발하고 있는 것은 인성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사람이 이 사회에 얼마나 위험한지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양산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절름발이 사회’, 자체입니다. 이런 온전하지 못한 사회에서 ‘약자들’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됩니다. 단순하고 냉정하지만 복잡하고 뜨거운 인물인 아이코는 흔히 말하는 ‘괴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사회의 약자들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300쪽 가량의 길지 않은 분량에도 이 작품은 이야기의 밀도와 긴장감이 상당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독자들을 사로잡는 건 ‘아이코가 다음엔 어떤 범죄를 저지를까, 과연 아이코는 꼬리를 잡힐까’에 대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다음 장엔 어떤 인물이 등장해서 아이코와 엮이게 될까, 하는 호기심은 작가가 단순히 ‘플롯’에만 능숙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기리노 나쓰오는 주인공 주변에 흥미로운 인물들을 배치하여 인물들 사이에서 우러나는 드라마, 관계가 형성되고 어떤 사건이나 감정이 끼어들어 그것이 어떤 양상으로 발전, 혹은 퇴보되는가, 에 보다 집중합니다. 그렇게 절절 끓는 인물들의 관계는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 세계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형식적으로 이 작품은 ‘코넬 울리치(Cornell Woolrich)’의 <검은 옷의 신부(The Bride Wore In Black)>나 <상복의 랑데부(Rendez-vous In Black)>의 구성을 닮았습니다. 주요 장마다 등장하는 빛나는 개성의 조연들, 여행을 하듯 그들을 거치며 진행되는 주인공의 범죄 행각, 음울하고 슬픈 정서, 연민을 자아내는 주인공 등. 하지만 이렇게 암담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는 능청맞음은 코넬 울리치와 차별되는 기리노 나쓰오 만의 장점입니다.
사족
이 책을 단순히 ‘추리소설’로 소개하는 것은 대단한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읽어보신 분들은 다들 공감하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