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베이션 로드_Reservation Road_2007-리뷰
‘에단’은 뺑소니 사고로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드와이트’는 그 뺑소니의 범인이고요.
사고 이후, 에단은 슬픔을 극복하지 못해 복수심에 불타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게 되고, 그런 남편을 아내 ‘그레이스’는 점점 못 견뎌 합니다. 결국 그 가정은 서서히 붕괴되고 말죠.
이런저런 이유로 에단은 ‘법’을 불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응징을 목표로 ‘추적자’가 되죠. 반대로 ‘드와이트’는 ‘도망자’가 되고요. 이후로 역시,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 에단은 자기 아들을 죽인 자가 드와이트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에단은 과연 아들의 복수를 할 수 있을까요?
영화는 그냥 평범합니다. 익숙한 사건, 예측 가능한 진행에 무슨 말을 할지도 뻔하지만, 이야기에의 몰입은 쉬운 편입니다. 훌륭한 배우들의 좋은 연기 덕분이죠. 그 외에 영화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법이냐, 주먹이냐’ 하는 질문인데, 안 됐지만 그 주제는 너무 진부합니다. 어떤 뚜렷한 주장도 없이 그냥 흐지부지 막을 내립니다. 그 외의 요소들 역시 드라마의 효과를 위해 존재할 뿐,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영화의 완성도를 크게 망치는 건, 다름 아닌 반복되는 우연입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양상을 보고 있으면 맥이 빠져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이렇게 저렇게 서로 아는 사이이고 관계가 얽히는 건, 우리 TV 일일드라마 수준입니다. 에단이 많고 많은 변호사 중에 고른 것이 하필 드와이트고, 에단의 딸, 엠마의 피아노 선생은 드와이트의 전처, 루스이고, 기타 등등. 가장 심한 건 에단이 루카스의 방에서 ‘그 사진’을 발견하는 장면입니다. 클라이맥스에서 그 사진은 드와이트를 옭좨는 강력한 증거가 되는데, 관객으로서 별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는 아들의 살해범을 추적하는 에단의 모습에 적잖은 시간과 공을 들이고 있지만, 우연과 비약만 난무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엔 시작과 결말만 있을 뿐, 그 중간은 거의 공백처럼 뻥 뚫려 있죠.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마크 러팔로(Mark Ruffalo)’가 연기한 ‘드와이트’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캐릭터에게 주어진 기능만을 연기한 다른 배우들에 비해 단연 돋보였죠. 그건 배우의 능력보다(물론 마크 러팔로는 훌륭한 배우이긴 합니다만) ‘캐릭터의 힘’에서 나온 거라 생각해요.
드와이트는 타고난 범죄자가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살인자가 된 것도 단지 운이 나빴기 때문이죠. 그 결과 이 사람은 죄의식과 양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합니다. 이런 고민은 사실 평범하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사람은 사고 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들에게 핑계를 돌립니다. 사고 현장에서 도망쳤던 건, 당시 함께 차에 있던 아들 때문이었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그 사람이 가장 걱정했던 건 바로 자신의 안위였습니다. 당시 루카스의 눈에 뭐가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그 사고를 똑똑히 목격했더라면 드와이트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마찬가지로 줄행랑을 쳤을까요? 우발적인 사고로 살인자가 되는 것과 아들 눈에 비겁한 도망자가 되는 것, 어느 쪽이 더 끔찍할까요?
이후로 드와이트에게 여러 상황들이 갈등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 사람의 내면은 에단보다 더 치열해 보입니다. 목표를 정한 후에는 일사천리로 내지르는 에단보다 드와이트의 갈등은 훨씬 다각적입니다. 보다 인간적이고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가죠.
결과적으로 관객으로서 응원하게 된 인물은 ‘에단’이 아니라 ‘드와이트’였습니다. 더 늦기 전에 양심을 구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게 되죠.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마는 드와이트를 볼 때, 저절로 탄식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영화가 노렸던 긴장감이 우러나옵니다.
범죄 사실을 고백하는 엔딩에서의 용기는 아이러닉하게도 ‘아들의 존재’에서 비롯됩니다. 그럼으로써 드와이트는 아들 핑계를 댔던 ‘비겁한 범죄자’에서 아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용감한 아빠’가 됩니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캐릭터’죠.
드와이트라는 인물이 갖는 장점을 적었으니, 반대의 인물, 함께 이야기를 이끌면서도 영화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에단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도 적어보겠습니다. 에단의 캐릭터는 이야기 거리들을 많이 갖고 있음에도 지나치게 단면적으로 그려지죠.
에단의 불신은 경찰에 대한 것이 아닌, ‘법’을 향해 있습니다. ‘법정엔 정의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법률’만 존재할 뿐‘이라는 말에 대한 공감은 무척 쉽고 에단의 이후 행동에 충분한 동기가 되지만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라는 주제를 에단을 통해 영화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것은 영화의 대단한 실수처럼 보입니다. 에단이라는 캐릭터에 있어서 그 테마를 뺀다면, 그 인물의 팔과 다리를 잘라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죠.
덕분에 에단은 그냥 ’복수심에 불타는 아빠‘ 이상은 되지 못합니다. 아내와의 갈등도 너무 전형적이라 인물들의 진심이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에단에게 존재하는 딜레마(극적인 딜레마, 캐릭터의 입체성)는 드와이트라는 인물에 의존합니다. 드와이트가 완벽한, ‘아주 몹쓸’ 악당이 아니기 때문이죠. 비슷한 주제, 비슷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더티 해리(Dirty Harry)》나 《브레이브 원(the Brave one)》 같은 영화나 ‘미키 스필레인(Mickey Spillane)’의 소설 《내가 심판한다(I, the Jury)》와 비교하면, 에단이라는 인물 역시 (지금 모습보다) 훨씬 ‘좋아질’ 가능성이 충분했던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인물의 기능만 활용합니다. 물론 ‘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의 연기는 훌륭하지만요. 시나리오나 연출의 문제 같은데, 이 영화가 지향했던 것이 ‘액션’이 아니라 ‘드라마’였으므로 특히나 아쉽습니다.
사족
‘제니퍼 코넬리(Jennifer Connelly)’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드미 무어(Demi Moore)’를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저만 그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