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헌트_Jagten_the Hunt_리뷰
더 헌트 (2013)
The Hunt
9
글쓴이 평점
덴마크의 한 교외. 최근에 이혼을 한 유치원 교사인 루카스는 아들을 맡아 키우는 데에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그것 빼고는 그리 큰 갈등은 없는 편입니다. 친절하고 믿음직스럽고 친구들의 신뢰를 얻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절친인 테오의 어린 딸 클라라의 작은 거짓말로 루카스는 곤란에 빠집니다. 사람들의 태도는 하루아침에 변하고, 루카스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닌 추악한 범죄자로 몰리게 됩니다.
영화는 단순히 ‘나쁜 소문’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발단이 된 건 아이의 거짓말이지만 영화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그것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요. 어떤 발단을 거쳐 사람들이 증오와 폭력에 의해 하나가 되는 과정, 그리고 그 결과 공공연한 폭력에 동의하고 그것을 묵인하게 되는 과정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영화 속, 루카스의 친구들은 아이의 말이 발단이 된 거짓된 상황을 어떤 검증도 거치지 않고 믿어버립니다. 그리고 더 나쁘게도, 그 결과 상당한 폭력이 따릅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 따위는 아랑곳 않죠. 이들에게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요. 증오의 대상에게 분노를 표현하는 것만이 유일한 관심이지요. 루카스의 대척점에 있는 테오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동네 사람들은 피상적으로는 착실한 이웃이고 걱정 많은 부모들이지만, 실체는 다릅니다. 그들은 한 덩어리가 된 ‘증오’ 그 자체에요. 심지어 (분위기에 휩쓸린) 아이들과 부모들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후에도 사람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불신의 뿌리는 너무나 깊고 넓어 상황은 루카스를 더욱 옭아맵니다. 어제의 친구들은 오늘 모두 적이 되어 루카스에게 폭력으로 대응하지만, 그들의 린치에 루카스는 외로움과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변함없는 (친구들에 대한) 믿음과 (정의에 대한 막연한) 신뢰로 반응합니다. 심지어 그는 이사를 가지도, 일일이 해명하지도, 엄연한 폭력과 협박에 경찰의 도움조차 요구하지 않습니다. 정도가 지나친 외부에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오히려 루카스의 아들이죠.
영화는 이런 이야기를 아무런 사심 없이 냉정하게 풀어나갑니다. 영화 속엔 어떤 악인도 등장하지 않아요. 거짓말의 발단이 된 클라라조차 관객들의 증오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아이는 후회를 하고 있고 진실을 말하지만, 어른들의 귀는 이미 닫힌 지 오래죠. 클라라에게 죄가 있다면 그 아이에게 포르노 사진을 보여준 오빠도, 그들의 부모들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하지만 영화는 그런 양분법적인 태도는 피하고 있습니다. 마치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범죄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관객으로서 화가 나지만 그 화가 어디를 향하는지 모르는 거죠. 그런 이유로 이 영화가 주는 정서적인 충격은 고스란히 우리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영화의 이런 부정적인 감상은 엔딩까지 이어집니다. 오해가 풀리고 모든 관계가 회복된 (것처럼 보이는) 후에도, 사람들의 폭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현실인지 착각인지 모호하게 처리한 엔딩 장면은, 그 사건이 앞으로의 루카스에게 미칠 영향을 보여줍니다. 사건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적어도 루카스에겐 말이에요. 실질적으로든 정신적인 트라우마로든 루카스에게 그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입니다. 어떤 것이든 나쁜 결말이지요.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변에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까요. 인터넷 세상에서 판치는 ‘마녀 사냥’ 따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이슈도 물론 이 영화와 공유하고 있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영화의 테마는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테마인 ‘희생양 매커니즘’과 맞닿아 있지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하숙인(the Lodger; 27)’이나, 로만 폴란스키의 ‘거주인(le Locataire; 76)’, 앙리 클루조의 ‘까마귀(le Corbeau; 43)’ 같은 영화와 공통점이 많습니다. 이런 영화들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good news’보다 ‘bad issue’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여요. 이른바 gossip, scandal이죠. 그런 생각은 ‘성악설’에 대한 개인적인 신뢰를 더욱 강하게 하고요.
아쉽게도 멀티플렉스 ‘예술 영화’ 상영관에서 상영 중입니다. 도대체 예술 영화의 기준이 뭔지 알고 싶어요. 주말 저녁 시간 때였는데도 관람객이 별로 없었어요. ‘예술 영화’라는 카테고리가 없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