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불쌍하구나?_와타야 리사-리뷰

달콤한 쿠키 2018. 3. 5. 05:55



두 편의 작품이 실린, ‘와타야 리사(綿矢りさ)’의 작품집입니다. 처음엔 심심풀이 정도의 ‘칙 릿(Chick Lit)’으로 대했습니다만, 이 작품집을 다 읽고 난 후에야 그것이 편견이고 성차별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표제작인 중편, <불쌍하구나?>의 주인공, ‘쥬리에’는 헤어진 여자친구, ‘아키요’를 불쌍하다고 거두는 남친, ‘류다이’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 사람입니다.

형편이 어떠냐 하면, 류다이와 ‘아키요’는 미국에서 만났고, 류다이를 사랑하는 아키요는 이것저것 재지도 않고 모든 걸 포기한 채 류다이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왔지만, 류다이에게 그만 채이고 맙니다. 아키요는 일본에 발붙일 데가 단 한 군데도 없는 사람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취업도 안 되는 상태니, 그대로 둔다면 노숙자가 될 지경이었던 거죠.


상황이 그러니, 류다이는 아키요가 일본에서 취업도 하고 제대로 정착할 때까지 제 집에서 재우고 먹이고 있습니다. 그건 자신을 따라 일본까지 온 아키요에 대한 책임감일 수도 있고, 사랑을 저버렸다는 것에 대한 자책일 수도 있어요. 아니면 자기 말마따나 불쌍한 사람에 대한 딱 그만큼의 동정과 배려, 그 이상은 아닐 수도 있죠. 어쨌든 쥬리에의 선택은 딱 두 가지입니다. 그걸 견디거나 류다이와 헤어지거나. 

결국 쥬리에는 애인에 대한 사랑에 굴복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사람이라도 자기 애인이 그러고 있는 걸 이해하고 봐주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쥬리에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도 아니고, 특별히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인 쥬리에는 화도 나고 불안해서 염탐도 하고 설득도 하고 자기 최면도 걸어 보지만 역부족입니다. 그 속을 온전히 드러내고 싶어도 류다이가 질려서 떠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죠.


류다이를 깊이 사랑하고 있는 쥬리에는 정말 안간힘을 써서 류다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아키요에 대해서도 상황이 정말 안 됐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정말 안됐고 딱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진짜 ‘불쌍한’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 ‘안됐고 딱한’ 사람은 누구인지 독자들은 질문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불쌍하게 여기는 그 감정의 본질에 대한 질문도 역시 함께요.



상황이 안 된 사람이나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보면, 우리들은 흔히 ‘불쌍하다’는 감정을 갖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들도 있을 테죠. 하지만 그런 감정과 행동엔 함정이 있습니다. 그건 진짜 ‘순수한’ 감정일까요?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은 과연 착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착하지 않은 사람들인 걸까요?


류다이가 아키요를 보호하려는 이유엔, 아마도 여러 상황들, 감정들, 두 사람의 과거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유와 과정은 어찌 됐든, 쥬리에의 감정과 의견은 깡그리 무시되고 소외됩니다. 류다이가 욕을 먹는 건 그런 이유입니다. 어림도 없는 아량을 베풀려는 쥬리에가 비웃음을 사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애초에 그 ‘비극적인’ 상황을 바로 잡을 수 있었던 사람은 류다이가 아닌, 쥬리에였습니다. 사랑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말려들었다 쳐도, 쥬리에는 제정신을 차릴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는데도 그것들을, 그 신호들을 무시합니다.


쥬리에는 이중의 고통을 겪습니다. 일단 말도 안 되는 애인의 행동이 그렇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후엔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자신이 연기하기로 한 ‘이해심 깊은 애인’ 사이의 괴리로 괴로워합니다. 쥬리에가 좀 더 자신에게 충실했다면, 애인에게 솔직했다면, 더욱 용감했다면 그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요.


좀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 지향하는 바입니다. 좀 더 예쁘고 좀 더 착하고 좀 더 부지런하고 좀 더 부자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죠.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아닌 척, 한다면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쥬리에 역시 자신의 한계를 무시하고 도전해서 고생을 합니다. 그 모습이 하도 답답해서 옆에 쥬리에가 있다면 정말 꿀밤을 한 대 때리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결국 제정신을 차리고 ‘본색’을 드러내는 엔딩에서 독자들은 엄청나고 제대로 된 카타르시스를 경험합니다.


타인에 대한 동정과 호의 역시,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 독자로서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물론 그것들이 악의에 근거하지 않는 한, 크게 문제될 건 없겠죠. 하지만 자칫, 그 동정과 호의가 단순히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과연 순수하게 좋은 의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겉으로 드러나는 동정과 호의의 밑바닥엔 상대방에 대한 편견과 차별, 근거없는 판단이 은근히 숨어 있는 건 아닐까요?

이런 고민으로 ‘프로 불편러’가 되는 것과 사랑을 잃을까 겁에 질려 어설픈 성인군자 행세를 하는 쥬리에나, 정작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돌보지 못해 연인을 궁지로 몰아넣는 류다이처럼 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최악일까요?




<아미는 미인>은 ‘사카키’와 ‘아미’의 만남과 우정, 질투 같은 감정을 그린 단편입니다. 두 사람이 고등학교 입학식에서 만난 이후로 아미의 결혼으로 끝을 맺는데, 그 엔딩이 주는 감동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화자인 사카키의 친구 아미는 대단한 미인입니다. 남학생들은 물론이고 여학생들에게도 숭배를 받을 정도의 미모를 자랑하죠. 아미는 자신의 미모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이용하려 들지 않는 사람입니다. 딱 이 한 문장으로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게 설명되죠.


반면 사카키는 단순하고 솔직한 아미보다 훨씬 복잡한 친구입니다. 이 사람의 ‘아미’에 대한 감정은 진정한 우정이라기보다 ‘애증’에 가깝습니다. 사카키는 아미의 친구로서 외모를 비교당하며 갖가지 모멸과 질투를 경험합니다.

사카키는 그런 모욕을 겪으면서도 왜 아미 곁을 떠나지 못하는지, 아미는 왜 자신에게 ‘들러붙는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일종의 관성이 작용한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는 확실한 설명이 불가능하죠.


졸업을 하고, 대학을 가고, 사회에 발을 들이며 나이를 먹으면서 사카키는 자신과 아미, 두 사람의 관계의 본질을 찬찬히 바라보고, 그 우정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게 결말인데, 감동과 여운이 상당합니다.


누군가에게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것을 위해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 무엇을 깨달아야 하고 그 이해는 과연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지, ‘관계’에 대한 다각도의 질문을 독자들에게 묻고 있는 이 작품은 언젠가 다시 한 번 읽고 싶을 정도로 ‘예쁩니다’. 네, 맞아요. 이 작품은 정말 ‘예쁜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여성’ 작가에 의한 ‘여성’ 독자들을 위한, ‘여성’의 이야기로 대했다가 큰코다친 기분입니다. 전혀 상상도 못 했었죠. 하긴, 열일곱 살에 데뷔하고 스물도 채 안 된 나이에 일본 최고의 신인문학상(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상)을 수상한 작가의 이력으로 미루어, 그 내공을 상상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만.


두 작품 모두 만족스럽습니다. 비유하자면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엄청난 맛에 감동하게 되는, 익숙하지만 만든 이의 솜씨가 상당한 음식을 대하는 기분이 들죠. <불쌍하구나?>는 통쾌한 각성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아미는 미인>은 잔잔한 깨달음과 감동이 매우 특별합니다. 분명 ‘여자 독자들’을 위한 작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니, 기회가 된다면, 아니 이 작품집을 찾아서라도 꼭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