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로저스_the Lodgers_2017-리뷰
일차 세계대전 직후의 아일랜드. 한적한 시골 마을, 하고도 한참 외떨어진 영지에 크고 낡은 저택이 있습니다. 넓은 정원은 손을 보지 않아 제대로 망가졌고 저택 역시 세월을 겪어 을씨년스럽죠. 무엇보다 호기심을 사로잡는 건 그 집에 사는 쌍둥이 남매, ‘레이첼’과 ‘에드워드’입니다. 자정이 되기가 무섭게 각자의 침실 안으로 도망치듯 몸을 숨기는 남매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그리고 남매를 두렵게 만드는 존재들은 과연 무엇일까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시작과 실제로 ‘귀신 들린 저택’으로 소문난 고택이라는 무대는 무척 좋습니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하면서 스스로도 비밀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주인공 역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죠.
하지만 영화는 시작과 더불어 제시했던 흥미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합니다. 엉성할 설정에 스토리가 너무 빈약합니다. 대체 왜 나왔을까 싶은 주변 인물들에 무엇보다 가장 나쁜 건 이야기에 깊이가 없어요. 너무 얄팍합니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단점은 쌍둥이 남매가 처한 불행의 정체가 모호하다는 겁니다. 저주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악의적인 관습에 의한 것인지 영화는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질 않고 있죠. 이것이야말로 영화의 세계관을 결정짓고 인물들의 행동을 좌우하는 중요한 설정인데도 말이죠.
초현실적인 힘이나 기운에 의한 ‘저주’와 인간의 행동이라는 요소가 개입된 ‘악습’은 그 근원부터 다릅니다. 저주를 푸는 것과 악습을 끊는 것 역시 전혀 다른 행동이죠. 저주에서 벗어나는 것과는 달리 악습을 끊는 것은 주인공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갈등 장치입니다. 모호한 설정 탓에 주인공들이 하는 행동도 막연해 보입니다. 주인공들은 부지런히 움직이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방향 제시가 서툰 이야기와 어깨에 잔뜩 힘만 주고 있는 주인공들 탓에 피해를 보는 건 주변 인물들입니다. 특히 ‘션’의 죽음은 정말 어처구니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불필요해 보인단 말이죠. 무슨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았던 ‘데시’나 ‘케이’ 같은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는 인물들을 한 번 썼다가 그냥 막 버립니다.
‘물 속의 존재들’ 역시 설명이 불충분합니다. 정체는 알 것 같아요. 하지만 좀 더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것들은 악역은 아니지만 주인공에 대해 반(反)한다는 점에서 ‘안타고니스트(antagonist)’의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도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할 여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전면에 드러나는 클라이맥스를 보세요. 무작정 션을 희생시키는 걸로 얼렁뚱땅 해치웁니다. 밍숭맹숭하기 짝이 없습니다. 카타르시스도 없고 감동도 없으며 무엇보다 너무 안일해요. 그냥 ‘레이첼은 살았구나’ 정도죠.
주인공인 레이첼에 대해서도 영화는 소홀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주인공을 비호감으로 남겨놓을 리가 없죠. 레이첼은 자신을 대신해 희생한 션에 대해서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나 누이에게조차 그 죽음을 알리지 않습니다. 정말 무책임하고 인정머리 없는 행동이죠. 레이첼이 짐을 싸들고 그 집을 나오는 엔딩은 그냥 줄행랑에 가까워 보여요. 그 집과 ‘그것들’로부터 벗어난다고 레이첼이 과연 행복해질까요?
전형적인 용두사미(龍頭蛇尾)식 진행입니다. 남는 건 고딕(gothic) 풍의 분위기, 으스스한 배경과 그럴듯한 스타일 밖에 없어요. CG도 그저 그렇고 좋은 배우들은 빈약한 이야기 속에서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훌륭한 무대와 가능성 있는 소재를 이렇게 낭비하다니. 무척 아까워요.
사족
레이첼은 외상값을 갚을 생각이나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