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인_the Lodger_리뷰
하숙인
The Lodger
8.8
글쓴이 평점
화요일 밤마다 금발의 여자들이 교살되는 사건이 발생하는 27년의 런던은 떠들썩합니다. 계속되는 살인에 사람들은 공포에 떨면서도 사건에 대한 잔인한 호기심을 보이죠. 이번 화요일에도 살인이 일어날까?
그러던 중, 하숙집을 경영하는 번팅 부인 집에 어떤 하숙인(극 중 이름도 없어요. 그냥 하숙인이에요)이 들어옵니다. 방 안에 걸려 있는 금발 여인의 초상화에 거부감을 보이는 그는 좀 수상쩍죠. 더군다나 번팅 부인에겐 금발의 딸, 데이지가 있고요. 이런저런 힌트로 번팅 부인은 새 하숙인을 살인범으로 의심하게 되고, 데이지에게 껄떡거리는 중인 현직 경찰인 조도 그를 의심하게 됩니다.
히치콕이 그의 필모그라피 안에서 즐겨 다뤘던 ‘오인 받는 남자’의 소재를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영화들과는 차이점이 있어요. 영화는 살인 사건이나 범인의 정체 따위엔 관심이 없거든요. 연쇄살인은 소위 ‘맥거핀(macguffin)’이죠. 영화가 진짜 보여주고 싶은 것은 오해를 받는 한 개인에 대해 그 외부 세계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의심을 받는 개인에게 의심을 하는 집단(대중)은 절대 공정한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대중은 집단 심리에 의해 최면에 걸리기 쉽고, 그 최면의 영향력 아래 있지 않더라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지요. 그 일체감의 원동력은 대부분 증오라는 감정이며, 그 증오는 아주 흔히 사람들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킵니다. 그리고 그 증오는 때때로 개인의 감정과 관련이 있고 서서히, 그렇지만 확실히 다른 사람들을 전염시킵니다. 이 영화의 ‘번팅 부인’과 ‘조’라는 인물이 그렇죠.
번팅 부인은 어머니로서 딸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조는 연적에 대한 시기심과 스스로의 조바심에 의해 움직입니다. 특히 조의 질투는 수사관으로서 냉정해야 할 그의 판단력에도 영향을 미치죠.
그런 개인의 의심과 오해는 경찰이라는 집단과 신문이라는 매스 미디어의 원조로 엄청난 파급력을 갖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암시에 약한 동물’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집단 최면에 ‘권력의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증명하죠. 특히 영화 초반에 보이는 신문 제작 장면은 ‘매스 미디어의 맹점’에 관한 상징처럼 보입니다.
집단 최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왜?’ 라는 질문이나, ‘다른’ 가능성에 대한 생각은 거의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커다란 움직임에 따를 뿐인 거죠. 이런 반응과 행동 결정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맹목적으로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재고의 여유도, 여지도 없는 거예요. 일말의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어요. 이런 심리는 하숙인이 수갑을 찬 채, 대중들에게 쫓기는 클라이맥스에서 잘 보입니다.
더욱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암묵적인 동의 하에 부당한 폭력을 휘두르며 그것을 정당화하는 집단 심리에 대한 경고이면서, 또한 ‘전체화’, ’일반화‘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너무나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이슈에 하나로 똘똘 잘 뭉치는 주변의 현상들을 봐도, 이런 일은 아주 흔한 일이죠. 특별히 범죄나 폭력의 키워드를 갖고 있지 않아도 말이에요. 이런 현상이 두려운 이유는, 종종 폭력의 양상을 띤다는 것입니다. 외람된 감상이지만, ’다수결‘이 진정 민주적인 발상일까요?
흑백이고, 무성 영화입니다. 이런 스릴러나 느와르 장르는 흑백 영화가 제격이죠. 특히 무성 영화의 장점은 (물론 자막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이야기와 감정의 전달을 대부분 배우들의 연기와 표정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의 ‘발연기’는 발 디딜 틈이 없죠.
최근의 ‘더 헌트(Jagten_the Hunt)’와 관련해서 다시보기한 영화입니다. 비슷한 테마를 다뤘긴 해도, 그 시대의 영화답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주인공은 누명을 벗고 연인의 따뜻한 포옹을 받지요. 그래서 영화가 주는 감정이 많이 달라요.
사족. 이 시대, 이 나라의 ‘하숙’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하숙과는 다릅니다. 호텔 식으로 운영되는 형태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에요.
또 사족.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 출연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이 영화는 그의 필모그라피 안에서 장편 영화로서 세 번째 연출작이고, 배우로서 첫 번째 출연작입니다. 히치콕 감독의 카메오 역사가 시작된 영화죠.
또, 또 사족. 이 영화는 우리나라 히치콕 팬들에게 18세기 영국의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영화의 원작인 Marie Belloc Lowndes의 소설은 ‘잭 더 리퍼’에게 영감을 받았지만, 영화는 아니거든요. 시대적 배경도 다르고 살인마의 살인 방법도 다르죠.
거듭되는 사족.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 ‘the Lodger’는 이 영화 이후 거듭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TV 에피소드까지 포함해서 여섯 번이에요. 외국은 소설 하나 잘 쓰면 두고두고 돈이 되는 군요.
여러 리메이크 작들 중에서 ‘하숙인’이라는 제목으로 DVD로도 출시된 2009년 작이 최근작입니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가 많이 다릅니다. 이 영화와 비교하면 뭔가 빠진 느낌이죠. 아무래도 고전의 힘엔 something special한 것이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