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하나만 들어줘_a Simple Favor_2018-리뷰
‘스테파니’는 어린 아들 ‘마일즈’를 키우는 싱글맘입니다. 요리 관련 웹 방송을 하는데, 그게 직업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대신 죽은 남편으로부터의 보험금이 있어 그걸로 살고 있죠. 스테파니는 어느 날, 아들의 학교 행사에 참석했다가 아들의 절친인 ‘니키’의 엄마, ‘에밀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은 절친이 됩니다.
스테파니와 에밀리는 공통점이 거의 없는 사람들입니다. 스테파니는 전형적인 가정주부에 별다른 직업이 없고 넓은 집이나 보석 같은 여유는 부릴 처지가 못 되는 반면 에밀리는 자기 말로는 모두 빚이라지만 넓고 멋진 집에 근사한 남편과 살면서 화려한 차림을 즐기는 유능한 커리어 우먼이죠. 스테파니가 천성적으로 친절함과 배려심을 갖고 태어나 사람이라면 에밀리는 살아오면서 차가움과 냉정함을 몸에 익힌, 삶의 수단으로 터득한 사람입니다.
많은 부분이 다른데도 두 사람이 급속도로 친해진 데에는 스테파니의 덕이 큽니다. 육아에 적극적이고 요리에 재능이 있는 스테파니에게 에밀리는 호기심을 갖게 되고 두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파한 니키의 픽업을 부탁한 에밀리가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스테파니는 친구의 안위에 대한 걱정으로 전전긍긍하고 며칠 후, 한 호수에서 에밀리로 추정되는 여자의 익사체가 발견됩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스테파니이지만, 의문의 대상은 에밀리입니다. 관객들은 스테파니에 대해선 보이는 모습대로 받아들이지만 에밀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는데 아무래도 뭔가 있을 것 같단 말이죠.
관객들의 감정이입은 스테파니를 통해 이뤄집니다. 스테파니라는 인물이 이야기를 이끌고 액션을 주도하는 주체라면, 에밀리는 풀어야 할 수수께끼, 객체입니다.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제시하는 가장 큰 수수께끼는 의문스러운 죽음 이전의, 에밀리라는 인간, 그 자체입니다.
이야기 속의 에밀리는 강력한 적입니다. 모든 혼란의 중심인 에밀리는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주변의 인물들을 무기력과 파멸로 이끕니다.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나 ‘세이렌’들처럼요. 에밀리의 실종이 주변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이유는 실종 자체도 그렇지만, 그 사건이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에밀리라는 여자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남편 '숀‘조차도 아내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제한적이죠. 여러 겁에 베일에 싸여 모호한 정체, 그 안에 숨겨진 악의 등으로, 에밀리는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의 소설, 《레베카(Rebecca)》의 타이틀 롤, '레베카'를 연상하게 합니다.
에밀리는 과연 어떤 여자였을까요. 어떤 삶을 살았고 왜 실종됐고 어떻게 물에 빠져 죽게 됐을까요. 그런데 에밀리는 진짜 죽은 걸까요? 혹시 살아 있는 건 아닐까요?
영화는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요소들을 빌려다 기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중요한 국면들은 ‘앙리 조르쥬 클루조(Henri-George Cluzot)’의 55년 作,《디아볼릭(les Diaboliques)》을 연상하게 하고, 로맨스와 미스터리를 적당히 버무린 분위기는 80년대 TV시리즈 《미녀첩보원(Scarecrow and Mrs. King)》을 닮았죠. 게다가 ‘사악한 쌍둥이(evil twins)’라는 클리셰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엔 남다른 개성이 있습니다. 차별화된 두 주인공과 그들의 매력, 뻔하지만 쓸모 있는 복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 사소한 사건으로 시작했다가 서서히 덩치를 불리는 미스터리 등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후반부에 스테파니의 ‘탐정질’에 비약이 다소 보이고 플래시백을 이용한 설명이 너무 안일하긴 해도 그 정도는 애교입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코미디와 로맨스,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얼버무린 경쾌하고 ‘코지(cozy)’한 분위기인 것 같아요.
이야기의 결말은 이런 장르의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행복하고 완벽합니다. 범죄는 만천하에 드러나고 악인은 법의 심판을 받으며 선한 사람들은 행복한 모습으로 남게 되죠.
하지만 인물들의 이야기를 면밀히 살펴보면 생뚱맞은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게 과연 해피엔딩일까? 이야기의 두 주인공을 다른 관점에서 볼 때 그 의심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에밀리는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데다 충동 조절이 어려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솔직하고 욕망에 충실하고 소위 ‘세상을 상대할 줄 아는’ 사람이었죠. 과거에 에밀리는 살인과 방화라는 범죄에 책임이 있지만, 그 대상은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스테파니는 주부, 엄마, 아내로서 완벽합니다. 이른바 가부장제가 요구하고 만들어낸 전형적인 여성상이죠. 요리에 능숙하고 아이를 잘 돌보며 이해심 많고 친절하고, 기타 등등. 이 사람에게도 어두운 그늘이 있지만 이미 그것에 대한 단죄는 끝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한꺼번에 둘이나 잃었으니까요.
이런 두 여자를 둘러싼 ‘권선징악’의 결말은 겉보기에 그럴싸하지만 그 이면엔 여러 논란의 여지들을 감추고 있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전형적인 권선징악, 인과응보의 교훈을 주는 동시에 ‘가부장의 승리’를 은근히 자랑하며 그 가치를 강조하려 듭니다.
열정적이고 솔직하고 야심이 많았던 에밀리는 섣부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욕심을 부렸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는 반면, 스테파니는 완벽한 승리를 거둡니다. 새로운 남편에 든든한 경제력, 완벽한 가정을 손에 넣으니까요. 사회문화적으로 답습된 ‘여성성’에 반대하는 인물은 가혹하게 내쳐지고 그것에 순응한 인물이 결국 행복해진다는 이 영화의 결말을 소위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이 영화는 진지한 여성 영화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데엔 실패했죠. 여성 캐릭터를 주축으로 하면서도 정작 ‘여성’의 이야기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싹수가 여기저기서 보이긴 하지만 영화는 아예 싹을 잘라 버립니다. 어쩌면 그럴 의도가 애당초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영화는 에밀리라는 여자를 너무 소홀히 다룹니다. 스테파니에 비하면 거의 푸대접에 가까울 정도로요. 과거의 에밀리가 그저 문제아에 불과했던 건지, 아니면 가부장적인 부모와 집안 분위기에 상상도 못할 불행을 겪었는지, 영화가 보여주는 건 아주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힌트뿐이니까요.
스테파니가 여성들에게 ‘주어진’ 궤도를 비교적 착실히 따르며 살았다면, 에밀리는 그 궤도를 일부러 벗어난 걸까요, 아니면 어떤 조건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벗어난 걸까요. 어쩌면 부모에 대한 반항심에 스스로 ‘궤도 이탈’을 선택했는지도 모르죠.
원래 세 쌍둥이였던 자매 중 막내가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사산하자, ‘두 언니가 막내를 잡아먹었다’는 모친의 푸념은 그 자체로 폭력입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그런 인식과 태도가 에밀리 자매를 문제아로 만들었던 가장 강력하고 근원적인 원인일 수도 있고요.
결국 이 영화는 ‘보기에 즐거운’ 오락 영화로 소비됩니다. 하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지금의 모양새로서도 충분히 좋은 영화입니다. 다른 영화가 될 여러 가능성이 보이지만 그걸 선택하지 않은 건 오롯이 제작진들의 권리이니까요. 관객으로서 투덜거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사족
1.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80년대에 인기 외화 시리즈였던 《미녀첩보원》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TV시리즈의 주인공인 ‘아만다 킹’ 역시 이혼하고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싱글맘에, 어눌하지만 당차고 친절한 성격, 넓은 오지랖, 촌스러운 스타일, 가정적인 면모 등으로 스테파니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죠.
문득 생각난 건데, 웹 방송을 활용해 여러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스테파니를 주인공으로 시리즈를 기획해도 재미난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아요. ‘블로거 아마추어 주부 탐정’. 흥미가 돋지 않나요?
2. ‘안나 켄드릭(Anna Kendrick)’에 대한 ‘팬심’ 때문에 본 영화입니다. 이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시리즈가 진짜 나오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