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미의 심리학_앨런 싱크먼-리뷰

달콤한 쿠키 2019. 1. 7. 07:24


이 책의 제목만 보고 그 내용에 대해 오해했던 점을 먼저 인정해야겠습니다. 《미의 심리학(원제; The Psychology of Beauty; Creation of a Beautiful Self)》이란 제목은 언뜻 여성들의 소위 ‘꾸밈노동(화장이나 다이어트 같은 일)’에 일침을 가하는 페미니즘에 반(反)하는, 본 저서에 나온 말처럼 ‘원초적인 여성성’을 옹호하고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기를 부추기는 내용으로 일관된 책으로 오해하게 만드니까요. 그럼에도 제가 이 책을 읽기로 한 이유는 저 역시 ‘매력적이고 잘 생긴, 아름다운 나’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미’를 추구하는 건 남녀노소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저의 예상은 반은 맞습니다. 저자는 여성의 꾸밈노동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미의 추구’는 인간 욕구의 핵심이고 ‘건강한 여성성’은 아름답고 똑똑하며 야심이 있는 것이라 말합니다.

저자는 오히려 아름다운 나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정적인 면들, 즉 성형 중독이나 극단적인 신체 변형, 거식증, 죽음에 이르는 지나친 다이어트, 도착적인 욕망 같은 병리적 결과들에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저자는 그 문제들을 드러내기 위해 ‘미를 추구’하는 심리의 근원을 좇고 그 배후의 불안을 살피는데, 부족한 자기애, 어린 시절의 경험, 특히 주양육자(어머니)와의 관계 등에 집중합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들은 부족한 자기 인식과 관련한 내적인 감정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압축된 저자의 주장입니다. 또한 저자는 정신적인 문제들이 육체와 무관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아름다움과 관련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육체적인 면(신경심리학적인 측면 같은)도 함께 고려할 것을 권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저서 안에서 ‘아름다움’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룹니다. 신화와 동화, 소설 등에 나타난 아름다움의 가치, 아름다움의 사회문화적 의미, 정신분석, 심리학과 생물학의 관련성, 예술적 관점에서 본 아름다움, 미학, 늙어가는 것에 대한 고찰 등등. 특히 ‘노화’와 ‘상실’을 논한 부분에선 일종의 감동마저 느껴집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현실을 단순히 늙어가고 아름다움을 잃는 과정이 아닌 ‘성숙’과 ‘성장’, ‘새로운 모험’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기회로 삼으려는 현명한 노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피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오늘날의 ‘페미니즘’과 관련한 내용은 13장, ‘여성성과 아름다움의 관계; 성 정체성과 원초적 여성성’에서 언급됩니다. 여기서 저자는 여성이란 결핍이 있는(성기가 없는)남성이라는 프로이트(Sigmund Freud) 식(式)의 남근중심적 여성성을 부인하며 동시에 다양한 여성성을 인정합니다. 또한 아름다운 몸매를 과시하는(노출하는) 행위는 신경증과 도착, 페티시즘이나 마조히즘과는 무관하게, 승화(昇華)한, 다양한 층위의 쾌감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저자의 이런 주장이 소위 ‘탈(脫) 코르셋’을 외치는 여성운동가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해집니다. 또한 오늘날 커다란 사회 문제로 떠오른 ‘여성 혐오’는 여성이 가진 생식 능력에 대한 남성의 부러움 때문이라 주장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남성 독자들의 의견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미국 영어의 관용적인 표현에 ‘멍청한 금발(dumb blonde)’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외모가 아름답고 화려한 사람은 지적인 능력이 다소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표현인데, 이를 역으로 이용한 영화(‘리즈 위더스푼(Reese Witherspoon)’이 주연한 《금발이 너무해(Legally Blonde)》)가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죠. 이런 편견은 유독 여성들에게만 심합니다. 근래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탈 코르셋’ 운동도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 성적 매력을 어필함으로서 극대화된 여성성이 아닌, 진정한 실력과 재능으로 인정을 받길 바라는 여성들의 절실한 바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장에 공을 들이고 아름답게 보이길 원하는 여자들의 노력들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심리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이니까요. 재능도 있고 실력도 갖춘데다가 아름답기까지 하다면 훨씬 좋은 일입니다. 보기 좋은 외모가 절대적인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외모가 보기 좋다고 폄하당하는 것 역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죠.


심리학자로서, 그리고 상담가로서 저자의 풍부한 임상 경험과, 그쪽 분야의 걸출한 (저자의 동료, 선후배)학자들의 가설들이 다양하게 언급되어 저자의 주장에 설득을 돕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독자들에겐 다소 어렵습니다. 심리학 지식이 거의 백지엔 저 같은 독자보다는 임상의, 혹은 상담가들이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실제로도 그들을 위한 조언과 충고가 많이 등장하니까요.

저자는 이 책을 여성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지만 남자들이 읽어도 무방해 보입니다. 요즘엔 잘 생긴 남자들보다 아름다운 남자들이 넘쳐나니까요. 멋진 외모를 위해 노력하는 건 남자들도 여자 못지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저자가 주의를 요하듯 과한 욕망과 지나친 노력은 화를 부릅니다. 저자가 이 책 안에서 ‘판타지’라는 단어를 고수라는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아름다움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지만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궁극의 아름다움에 이르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욕심이 끝이 없는 것처럼 완벽한 아름다움도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최고로 아름다운 나’는 그저 환상에 불과합니다. 무지개가 손에 잡힌다면 그건 더 이상 무지개가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