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크라이 마미 / 2012
돈 크라이 마미 (2012)
Don't Cry, Mommy
7.9
고등학생의 딸 은아와 함께 사는 유림은 그럭저럭 행복해 보입니다. 이혼은 했지만 살림은 그리 궁색하지 않고, 커피 전문점 창업을 준비 중이고, 모녀의 사이도 아주 좋아요. 그러다가 은아는 학교 친구인 조한을 좋아하게 되고, 유림은 그 아이가 학교의 일진이라는 사실에 딸에게 충고를 하고 싶지만 참습니다. 그러다가 은아가 조한과 그 친구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모녀의 삶은 붕괴됩니다.
성폭행을 당한 딸과 그 복수를 행하는 엄마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김수현이 시나리오를 쓰고 윤여정이 주연한 ‘어미’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 영화와는 많이 달라요. ‘어미’라는 영화가 여성의 인권과 모정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영화는 폭넓은 의미에서의 인권과 사법제도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있는 영화처럼 보이니까요. 생각보다 엄마의 ‘복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모성애’에 집중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덕분에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은 상당히 냉정합니다. 물론 신파를 강조하는 부분도 없진 않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영화의 진행은 상당히 빠르고, 화면은 보여줄 것만 보여줍니다. 감정은 세고 깊지만 그것에 매달리지 않으며 슬픈 감정을 징징거리며 과장하지도 않습니다. 이건 이야기의 소재를 볼 때 분명한 장점이죠.
하지만 이야기의 테마로 들어가면 영화는 소홀히 한 부분이 많습니다. 단적인 예로 법정 장면을 들 수 있어요. 재판 과정을 길게 보여달라는 것이 아니라,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복수를 하기까지의 유림의 상황 전개에 비약이 많아 보인다는 거죠. 영화의 목적이 사법제도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솜방망이 법이라도 그것에 매달리고 의존하는 모습을 끈질기게 보여줬어야 한다는 거죠. 특히 자살한 은아의 손전화에서 문제의 동영상을 발견한 이후로는 더욱 그래요. 응당 캐릭터에게 기대되는 행동을 유림은 하지 않거든요. 기대가 있어야 배반감도 크고, 패배와 절망을 더욱 절실히 겪어야 복수심도 더 처절해지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유오성이 연기한 형사 캐릭터나, 전남편의 내연녀인 여자 변호사 같은 인물은 그냥 낭비돼요. 아깝죠. 그들 간의, 법 안에서의 연대가 있었다면 유림의 복수가 더욱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말이죠.
전체적으로 영화는 성공작입니다. 하고자 하는 말도 분명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으며, 무엇보다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특히 은아를 연기한 남보라의 연기는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플 정돕니다. 겁에 질리고 분노한 패배자에서 점점 냉철한 복수자로서의 면모를 갖춰가는 유선의 연기도 훌륭하고요. 유림의 복수 행위를 보고 있으면, 한 번 손에 피를 묻히면 그 다음부터는 쉬워진다는 말이 생각나죠. 어디서 읽은 구절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재 때문에 투자 받기가 쉽지 않았던 영화라고 하네요. 정작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돈에 매달리면 영혼을 팔기 쉽지요. 물론 장삿꾼들이 원하는 것이 영혼 없는 껍데기라면 할 말은 없지만요.
옥의 티. 결말 즈음에 하이힐까지 ‘깔 맞춤’으로 차려 입은 유선의 복장이 눈에 걸렸어요. 아무래도 그건 무리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 옥상 장면에서, 오 형사의 과잉방어에도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흉기를 든 사람이라고 굳이 심장을 쏴야 했을까요? 그런 상황이라면 손이나 다리를 쏴야 한다는 것을 우리도 알고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