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_김엄지-리뷰
중심인물인 E는 직장인이다. 쉬는 날엔 집 근처 산책도 나가고 가끔 등산도 하는 것 같고 빨래 걱정을 하는 걸 보니 집안일도 적당히 신경 쓴다. 직장에 나가면 대놓고 졸고 점심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는다. 퇴근 후엔 동료들과 술잔도 기울이고 안주 고르는 데 가격이나 가성비 따위 크게 따지지도 않으니 경제적으로도 큰 압박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 내내 비가 내리고 집안의 곰팡이가 신경 쓰이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비 맞고 신발 젖는 게 싫으면 우산을 쓰거나 장화를 신으면 되고 곰팡이가 귀찮으면 팡이 제로를 뿌리거나 방수 공사를 다시 하거나 최소한 도배를 다시 하거나, 그래도 정 안 되면 다른 집으로 가면 되는데, 이런 설정은 일종의 장치로 보인다. 주인공을 점점 잠식하고 숨 막히게 만드는 어떤 것의 은유.
이 사람은 뭐가 문제인 걸까.
모든 게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에 대해 피상적인 정보 외엔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으니 이 사람의 고민과 힘듦에 대해 대강이라도 짐작하기가 영 쉽지 않다. 그런데도 자꾸 힘들다, 힘들다, 하니 보기 싫다.
일단 이 사람은 ‘권태’에 함몰되어 있는 건 맞다. 힘들다면서 뭔가 변화나 다른 목적을 위해서 어떤 형태의 액션이 없는 걸 보면 천성적으로 나태한 사람 같기도 하다.
이 사람은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작가의 의도가 짐작이 간다. 희망도 없고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삶. 숨길 수도, 견딜 수도, 빠져나갈 수도 없는 일상의 굴레.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투덜거리기만 하는 '중2병' 어른 인물을 백오십 쪽 가까이 지켜보는 건 독자로서 고역이다. 연민도 안 생기고 응원하고픈 마음도 없다. 기술적으로도 서사 어쩌고, 소설 구조 어쩌고 얘기할 거리도 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색다른 관점을 작가가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세밀한 관찰로 디테일을 뽑아내는 것도 아니다. 뻔한고 흔한 위로를 건네는 것도 아니다. 작가는 시종일관 그 세계에 거리를 두고 지켜보면서 피상만 읊어댄다. 인물의 내면에 단 한 순간도 가닿지 않는다. 결국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뿐이다.
작가가 이런 ‘무(無)’의 결말을 의미했더라도 이 소설은 정말 공허하다. 그리고 무용하다. 이런 작품을 왜 읽어야 하나?
엔딩을 보라. 결국 우리의 주인공은 ‘회피’한다. 등을 돌리고 숨는다. 그게 자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꼬리를 감추고 내빼는 꼴이다. 비겁해 보인다.
우연찮게도 이 책 바로 전에 읽은 소설이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동네 공원≫이었다. 분량도 비슷하고 ‘보잘 것 없는 삶’이란 이슈도 비슷하다. 그럼에도 뒤라스의 소설엔 뭔가 있었다. 귀 기울일 뭔가가. 두 소설을 비교하며 삶이 어때야 하는가 말 하는 건 어림없겠지만, 소설이 어때야 하는지 말 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