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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애나_I, Anna_2012_리뷰

달콤한 쿠키 2013. 7. 26. 07:38

 


아이,애나 (2013)

I, Anna 
8.5
감독
바나비 사우스콤
출연
샬롯 램플링, 가브리엘 번, 헤일리 앳웰, 랄프 브라운, 에디 마산
정보
로맨스/멜로 | 영국, 독일, 프랑스 | 91 분 | 201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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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피해자는 마약과 섹스를 좋아하는 폭력적인 이혼남. 피해자의 아들과 전처가 용의자로 떠오르고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애나(Anna)라는 여자가 주위를 맴돌지요. 강력계 형사인 번즈는 우연히 만난 애나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이 여자에겐 어딘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줄거리만 보면 40년대 헐리웃에서 유행했던 느와르 장르가 생각납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도 느와르의 분위기를 많이 따르고 있어요. 외롭고 지친 형사와 femme fatale처럼 보이는 여주인공, 거기에 살인이라는 미스터리와 어둠침침한 화면. 얼핏 느와르 장르의 클리셰들의 반복쯤으로 보이지만 이 영화는 자기만의 독특한 질감을 갖습니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무엇보다 영화의 미스터리는 생각보다 쉽습니다. 영화의 초중반까지 거치면 살인사건의 전모가 반 이상은 드러나니까요. 애너라는 캐릭터의 미스터리는 그 자체로는 흥미롭지만(잘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보여주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플래시백을 통한 설명은 무척 안일해 보이고, 스토리의 흐름을 깰뿐더러, 사건과 캐릭터를 설명하려는 통에 감정이입의 여지를 모조리 까먹죠.

이 영화는 느와르 장르의 요소들을 이용만 하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이 영화가 지향해야 할 장르는 느와르 장르이기도 합니다. 이런 장르에서 여주인공의 비밀과 수수께끼 범죄를 빼버리면 무엇이 남죠? 결국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가져가는 것은 알맹이를 뺀 찌꺼기들뿐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영화의 그 찌꺼기들이 개인적으로는 참 마음에 든다는 거죠. 그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점이에요. 아이러니하게 들리지만 사실 그렇거든요.

그것은 바로 이 영화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슬픈 정서입니다. 영화는 외로움과 고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캐릭터 자체만으로는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아요. 그건 두 인물이 엮어내는 시너지 효과 같은 것이죠. 노년에 접어든 두 인물이 서로에게 호감과 사랑, 동시에 의심과 경계심을 주고받는 장면들을 보면 그냥 그런 기분이 전해지죠.

특히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의 장면은 무척 긴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가 끝나고 두 사람의 여정이 녹록치는 않겠지만, 엔딩에서 보여주는 두 사람의 포옹은 그 어떤 것보다도 절절한 사랑의 감정을 잘 보여줍니다.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한 평범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something new가 없는 이야기임에도 몰입이 가능하고, 훌륭한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나름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엔 일조하고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도 샬롯 램플링의 예쁜 모습과 가브리엘 번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