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웹툰; 예고살인_2013_리뷰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단서는 아직 아무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웹툰. 살인의 현장과 짐작되는 그 과정이 그 웹툰의 내용과 거의 똑같습니다. 경찰은 웹툰의 작가를 의심하지만 사건은 그렇게 단순해 보이진 않습니다.
미스터리와 호러의 조합은 호러 영화에서 자주 시도되는 콘셉트이긴 하지만, 결과물이 성공적이었던 경우는 드뭅니다. 그건 아마도 장르적인 특성이 부딪히는 결과인 것 같아요. 미스터리는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한 추리의 과정이 필수적인 데에 반해 호러 장르는 그런 요소들보다는 초현실적이고 미신적인 부분에 대해 더 관대하죠. 관객들의 설득과 동의를 얻기 위해 과학적인 설명보다는 그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란 말입니다. 두 요소들은 영화에 일정한 분위기를 제공하지만 한 틀 안에서 조화롭게 다뤄지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삐거덕거리기 십상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호러 영화에서 그러기 쉬운데, 그건 아마도 우리 식의 경찰 수사나 법에 대한 신뢰, 과학 수사의 수준 등에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호러 영화로서의 ‘더 웹툰; 예고살인’은 반 정도는 합니다. 호러 효과들은 그런대로 강렬한 편이고, 특히 고립된 사무실 공간에서 벌어지는 첫 번째 살인은 무척 인상적이죠. 만화의 장면과 실사를 교차하면서 보여주는 화면도 생동감과 긴장감이 넘치고요. 그 이후로도 아주 좋은 호러 장면들이 몇 부분 보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외진 도로 위에서 보여준 주인공의 악몽은 익숙한 장면이긴 해도 꽤 무섭습니다. 권해요가 연기한 염장이가 죽는 시퀀스도 그렇고요.
첫 번째 살인 이후, 경찰 수사가 개입되는 부분도 그 흐름이 부드럽습니다. 안일한 수사가 몸에 배인 베테랑 형사와 신출내기 후배의 기 싸움도 잘 그려졌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보이는 형사들의 태도 변화, 캐릭터의 반전 등도 잘 보여주고 있는 편이에요.
하지만 그런 부분적인 요소보다 영화 전체의 모양새에 집중한다면,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이 보입니다. 특히 중반을 넘어가면 더욱 그렇죠. 그 동안 호러 못지않게 힘을 쏟던 미스터리는 캐릭터의 반전과 더불어 흐지부지 되어버리고 결말은 신파로 이어지며 엔딩을 질질 끕니다. 이런 호러 영화조차 신파를 동원시키는 우리나라 영화인들의 정서가 궁금합니다. 마지막 십 여분 정도는 지겨워서 몸이 뒤틀릴 정도였으니까요.
영화가 가장 미숙했던 점은 관객들의 태도를 결정하는 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겁니다. 적어도 본인은 이 영화를 호러 영화로 대해야 할지, 미스터리 영화로 대해야 할지 중반이 넘도록 갈팡질팡하고 있었단 말이지요. 관객으로서 관람 자세의 결정이 이르면 이를수록, 그리고 확실할수록 좋죠. 그건 영화에 대한 평가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니까요. 영화는 중반이 넘도록 정말 ‘미친X 널뛰듯이’ 호러와 미스터리를 오락가락합니다.
디테일을 볼까요? 얼핏 영화는 말이 됩니다. 죽은 자들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주도적 아이디어도 아주 새것은 아니지만 거듭 시도될 가치는 있지요. 재미있는 아이디어에요. 하지만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글로 써내려간다면 모를까, 그림을 그려 전달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스케치나 크로키 정도도 아닌, 명암까지 넣어가며 아주 꼼꼼하게 그리는 게? 귀신들은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코치하는 것처럼 보여 코웃음이 났습니다. ‘거긴 좀 더 어두워. 아니, 구도가 별로야. 안 예쁘잖아.’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저는 혼자 큭큭거리며 웃었답니다.
그리고 악에 찬 영혼들의 복수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첫 번째 살인의 희생자를 보세요. 자기 딸한테 그렇게 잔인하게 복수할 수 있는 엄마가 과연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될까요? 거기다가 그 엄마 귀신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애초에 자살하려고 했던 게 모두 딸을 위해서였는데, 몇 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웬 뒷북인지요. 다른 귀신들은 어떤가요. 수년을 잠자코 있다가 만화로 그려지길 기다린 이유가 대체 뭐죠? 영화가 그런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설명을 하던가요?
한 맺힌 영혼이 실제적인 힘을 갖기 위해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설정이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추어진 ‘악’이나 ‘죄의식’, 내지는 ‘죄책감’ 등을 까발리려는 의도는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제는 아니죠. 몇 가지 설정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로 영화를 완성시키려는 태도는 약간 안일해 보였고, 성의 없는 내러티브로 실망만 안겨준 영화였습니다.
올해 개봉된 국내산 호러 중에서 가장 롱런하고 있는 영화의 모양새가 이런데, 이슈를 만들지 못하고 조용히 묻혀버린 다른 영화들은 과연 어땠을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