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미’는 의미없는 폭력과 기상천외한 미친 짓으로 어렸을 때부터 유명했다. 그런 언니를 둔 덕에 화자인 ‘전수영’은 부모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우그러지고 찌그러진 채 살아왔다. 그러므로 생존을 위해,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나름의 방식을 찾아야 했다. 수영은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전수미’들을 식별하고 피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수영은 ‘자신 안의 전수미’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악의’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작품 속엔 여러 형태의 악의가 나온다. 적극적인 악의, 소극적인 악의, 결과로서의 악의, 기타 등등. 결과로서의 악의는 약간 억울한 점도 있으나, 결과가 이런데 넌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따지면 할 말은 없다. 그도 그런 게 무의식이란 게 있으니까. 무의식의 밑바닥에 굳이 악의가 아니더라도 증오와 무관심이 흐르면 수면 위로 어떤 물고기가 튀어 오를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게 사실이니까.
‘절대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절대악’도 거의 거짓말이다. 우리의 마음속엔 천사와 악마가 공존한다는 건 심리학계에서 꾸준히 주장하고 행동심리학에서 증명해 온 가설이다. 평소에 선한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하거나, 반대로 악한 인간으로 알려진 사람이 의외의 선한 행동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왕왕 본다.
작품 속 ‘전수미’는 오로지 동생을 위해 행동한 적이 있다. 빈틈없는 장삿속에 냉혈한처럼 보이는 ‘구원장’ 역시 철저히 악인이라고 매도할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인공 수영은?
수영이 ‘태풍’의 결말을 몰랐을까? 나쁜 결과를 예측하기가 전혀 불가능하지 않았을 텐데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쁜 조짐을 외면한건 결과를 방치한 것과 다름없을까. 소극적으로나마 그런 결과를 바라고 의도하진 않았을까. 고작 ‘개’일뿐인데, 그렇게까지? 너무 잔인한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그런데 작가의 생각은 어떨까.
추리소설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애정하고 존경하는)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는 작품들 속에 ‘공기 중의 악(evil in the air)’이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그 말인 즉,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악의는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말일 테다. 세심히 살피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는 악의는 도처에 존재한다.
여러 작품들을 통해 본 작가 ‘안보윤’은 위로보다는 고발, 격려보다는 각성을 촉구한다. 날카롭게 벼린 시선은 인간의 내면을 향한다. 선과 악의 본질을 물으려는 시도는 작가의 관심이 인간 의 본성에 있음을 증명한다.
사족
전수영-전수미 자매의 관계는 작가의 작품집 ≪밤은 내가 가질게≫의 연작 단편, <미도>와 <밤은 내가 가질게>에 나오는 자매를 연상하게 한다. 연관해서 읽으면 의미가 더욱 확장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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