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_그렉 올슨-리뷰 범죄를 빌미로 한 양심과 도덕, 믿음, 배반의 이야기. 범죄가 흘러가는 양상도 재미있지만그것을 계기로 인간성의 밑바닥을 드러내며 망가지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작가의 의도 역시 범죄 자체는 그저 리트머스 시험지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친절과 선의, 도덕성이나 윤리 같은 것은 인간성의 기본값일까. 아니면 그것을 구성하는 작은 퍼즐 조각조차 되지 않는 건 아닐까. 꽃을 읽기_책 2025.04.28
에고이스트_다카야마 마코토-리뷰 일단 흔한 ‘퀴어 로맨스’에서 벗어난 점에서 무척 새로웠다. 이 이야기는, 뭐랄까…, 사랑의, 사랑에 대한, 사랑을 위한, 사랑에 의한 이야기랄까.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이야기이지만 그 폭과 층위가 넓고 깊다. 두 명의 연인, 그리고 두 명의 엄마. 시작과 끝, 그리고 끝에서 비롯되는, 마치 화재로 폐허가 된 땅에서 움트는 새싹처럼힘과 생명력을 갖춘 이야기였다. 책의 마지막 장 이후엔 어떤 이야기가 진행될지 궁금해졌다. 화해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로도, 받아들임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단순히 외로운 개인과 개인의 사랑 이야기에서 벗어나 (아마도 이조차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보다 높고 넓은 무언가가 그 위에 있음을 작가는 놀라울 정도로 세련되고 감동적이게 보여준 것 같다. 영화도 있다.. 꽃을 읽기_책 2025.04.28
홀리_스티븐 킹-리뷰 경험 많은 노작가+대작가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다. 스릴러와 호러, 미스터리, 고어(gore)를 능숙하게 배제하면서도 상상하게 만들어 몸서리치게 만드는 인질극까지.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캐릭터들은 인간적인 매력을 지녔고 상호 간의 앙상블도 보기 좋다. 적당히 공감은 가지만 호감은 줄 수 없는 악당까지. 이야기의 리듬도 좋고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리다가도 어느 한 순간 숨통을 틔워주는 완급과 균형도 좋다. 이런 구성은 말 할 것 없고, 장면들마다 취사선택을 위해 심사숙고를 거친 태가 나, 어느 하나 낭비가 없어 보인다. 사실 스티븐 킹의 소설에 완성도 어쩌고 하는 게 불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작가의 재능이 돋보였단 말도 필요없지 않을까. 그냥 ‘재확인’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듯. 개인적인 .. 꽃을 읽기_책 2025.04.28
컵케이크 무장 혁명사_박지영-리뷰 최소한의 선의. 작가가 어떤 의도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것에 동의도 하고. 하지만 좋은 의도가 늘 좋은 작품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인물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 당위가 빈약하다.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는 그렇다 쳐도 억지스러운 진행은 짧은 분량임에도 몹시 지루하다. 게다가 적지 않은 곳에서 작가가 허둥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밑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않은 탓이겠지만, 무엇보다 ‘선과 악’이라는 관념 자체를 이야기로 형상화하려 한 의도 자체가 함정을 품고 있는 듯. 꽃을 읽기_책 2025.04.28
나의 작은 무법자_크리스 휘타커-리뷰 읽는 데 여드레가 걸렸다. 재미가 없었다는 얘기.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 인물들은 과장되고 구성은 산만하여 집약도가 떨어진다. 긴장감이 결여된 이야기는 그냥 지루하다. 이야기 자체만 봐도 구태의연하다. 폼만 잡는 인물들에겐 절실한 동기가 없다. 개연성도 부족하다. 상황에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을 하지 않고, 딱히 해야 할 당위가 없는 행동들을 한다. 이야기 거리는 많은 편이지만 무엇 하나 추진력을 주질 못한다. 두 명의 주인공이 문제일까, 싶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작가가 이야기를 다루는 데 서툴러 보인다. 꽃을 읽기_책 2025.04.28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_게일 허니먼-리뷰 주인공인 ‘엘리너’는 ‘괴짜’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근면하지만 성실하지는 않고 왠지 외롭고 딱해 보여 손을 내밀고 싶지만 선뜻 그러기 어려운 인물. 주기적으로 술을 마시지만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는 않고 정해진 루틴에서 한 치도 벗어남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 재미있거나 유쾌한 사람도 아니고, 매력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타인들에게 쉽게 자신을 어필할 ‘뭔가’가 없는 사람. 선천적인 장애는 없지만 어떤 사고에서 연유된 듯 얼굴의 상처를 주홍 글씨 품듯 살고 있는 사람. 주 중에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각에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그게 영 쓴 약 삼키듯 해버려 뭔가 있지 싶다. 엄마랑 연을 끊고 사는 건 맞는데 그렇다면 굳이 연락을 근근히 잇고 있는 것도 뭔가 수상.. 꽃을 읽기_책 2025.04.27
귀신들의 땅_천쓰홍-리뷰 여성, 퀴어. 그들의 가족, 이웃들, 그리고 연인들. 고유의 속도로 제각각 흐르다가 반가이 만나기도, 다시 헤어지기도 하는 여러 갈래의 물줄기. 그것들이 이뤄내는 커다란 강. 햇빛에 반짝이는 수면 아래 뭐가 있을까. 먹히고 썩어가는 죽은 짐승은 생전에 어떤 꿈을 꾸었을까. 이 책을 읽자마자 적은 메모인데, 더 이상의 세세한 면을 기억하자니 어렵다. (읽은 지 두 달 가까이 지났다) 대단히 방대한 시간대를 아우른 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가족의 많은 구성원들이 나오는데 인물들이 많았던 것도 기억난다. 현실적인 공감이 가는 인물들도 있었고 동화 속의 인물처럼 캐리커처로 묘사되거나 모호하게 처리된 인물들도 있었다. 이런 모호함은 작가가 의도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야기의 몽환적인 분위기에 잘 어울리기도.. 꽃을 읽기_책 2025.04.27
버터_유즈키 아사코-리뷰 결혼 어플을 통해 만난 남자들을 만나 돈을 갈취한, 소위 ‘꽃뱀’ 범죄의 피의자로 기소된 ‘가지이 마나코’. 가지이의 범죄가 더욱 유명세를 탄 건 남자들이 몇 명 죽었기 때문이다. 돈을 빼앗고 필요가 없어진 남자들을 죽인 걸까. 아니면 자연사? 사고사? 잡지사 기자인 ‘리카’가 독점 취재를 위해 가지이의 사건에 뛰어 들지만, 리카는 눈앞의 가지이가 ‘아름다운’ 사람이 아닌 데에 놀란다. 커다란 체구에 살집 풍부한 몸매는 일반적인 여성성과 거리가 먼, 성적 매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저런 사람이 남자들을 꼬드겼다고? 드러나지 않은 게 더 있음을 직감한 리카는 가지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의문의 범죄가 등장하고 의뭉스러운 용의자와 의욕적인 탐정이 잇따른다. 명목상 미스터리의 외피를 쓰고 있으니 잘 어.. 꽃을 읽기_책 2025.04.27
대온실 수리 보고서_김금희-리뷰 ❝The moment of the Rose and the moment of the Yew Tree are of equal duration.❞ 장미의 시간과 주목의 시간은 같다. -T. S. 엘리엇 이 작품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랬다. ‘김금희’가 이런 작품도 쓸 수 있구나.김금희의 재발견이랄까. 그냥 그런, 흔한 작가였는 줄 알았는데, 그 역량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일단 스케일이 크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대에 다양한 인물, 다양한 사건을 배치해 사슬을 엮듯이 촘촘한 서사를 엮어낸다. 과거의 사건에 주력하지만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결국은 미래를 지향하는 태도도 좋았다. 과거의 상처를 대범하게 마주하는 용기, 그 과정에서의 화해와 관용, 그 경험을 발판 삼은 성장과 성숙, 치유를 .. 꽃을 읽기_책 2025.04.27
옐로 페이스_R. F. 쿠앙-리뷰 소위 작가, 이야기를 짓고 글을 쓰는 사람들을 주인공을 한 소설 중에 두 번째로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대망의 1위는 ‘테디 웨인’의 ≪아파트먼트≫) 소설을 창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핍진하게 보여줬달까. 작가라는 직업군에 속한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다른 작품들은 대략 이렇다. 어렸을 때 문장가로서 싹수를 보였던 주인공이 작가가 되고 싶은데 돈도 안 되는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을 못 하니 생업을 버리지는 못하고 시간을 쪼개서 습작에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연애할 시간은 또 어디서 났는지 알콩달콩 연애 살짝 하다가 갑자기 ‘짠!’하고 작가 데뷔. 혹은 모든 걸 포기하고 귀향. 뭐 이런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이 소설, 뭔가 달랐다. 여타 다른 소설들에서 작가라는 직업이 최종 목표, 환상적인 미.. 꽃을 읽기_책 2025.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