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34

멜라닌_하승민-리뷰

편견과 혐오, 차별. 이런 이슈들로 소설을 써야지, 하고 작정했을 때 나올 수 있는 딱 그만큼의 이야기다. 그 이상은 없다. 평범하다. 평범하다 못해 지루하다. 지루한 건 문학작품으로서 죄는 아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설정에 바보 같은 행동을 일삼는 인물들은 죄다. 그냥 못 쓴 거다.  파린 피부, 베트남 출신 엄마. 이런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면, 출판사가 그런 문구로 마케팅을 하고 책 표지에도 버젓이 그렇게 인쇄되어 있다면,  그 소재들로 갈등을 만들고 사건을 일으키고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 그것들에 대한 결말을 보여줘야 옳다. 그게 (제대로 쓴)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갈수록 산으로 간다. 파란 피부와 베트남 엄마는 어느새 잊힌다. 얼렁뚱땅 이주민 얘기로 넘어간다. 맥락이 비슷하다고? 판..

꽃을 읽기_책 2024.09.16

벌들의 죽음_리자 오도넬

열다섯의 ‘마니’와 열두 살의 ‘넬리’ 자매는 어느 날, 침대 위에서 죽어 있는 아빠, ‘진’을 발견한다. 곧이어 뒤뜰의 헛간 대들보에 목을 맨 엄마, ‘이지’도 찾아낸다. 어린 자매는 경찰을 부르거나 하는 대신, 마당에 땅을 파고 부모를 묻는다. 그런 데엔 이유가 있다.  가족은 가난했다. 정부에서 쥐꼬리만큼 나오는 보조금은 부모가 유흥비와 마약 값으로 탕진하는 통에 집안엔 먹을 게 언제나 씨가 말랐다. 부모가 죽은 것을 정부에서 안다면 그나마 나오던 보조금이 끊기고 자매는 고아들을 위한 시설로 보내질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부모의 죽음을 숨기는 것뿐이다.  그렇게 어린 두 아이만의 삶이 시작된다. 폭력적이고(아빠가 어린 딸들에게 행한 성적인 폭력도 포함하여) 어린 아이들에게 아무 관..

꽃을 읽기_책 2024.08.22

밤의 행방_안보윤

작가의 최근작인 소설집을 꽤 인상 깊게 읽어서 손에 든 책. 결론을 미리 적자면… 설익은 밥 같다.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명품을 주렁주렁 걸치고 있는데, 알고 보니 죄다 짝퉁, 대강 이런 느낌. 아이디어로 시작해 아이디어로 끝난다. 다시 말 해 소설적 설정이 전부라는 얘기. 아이디어 자체도 독창성이 떨어지는데다 이런 설정이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독자들 호기심을 자극하고 조금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는 걸로 충분하다는, 아주 어마어마한 착각에 작가가 빠져 있는 것 같다. 작품 전체가 허술하고 구멍이 많은데 아이디어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게 무슨 소용일까. 그렇다고 아이디어가 반짝거린다는 얘기는 아니고. (나뭇가지 ‘반’의 정체조차 작가는 모르는 것 같다. 아니면 이 책의 후속작을 계획하고 있는지도 모..

꽃을 읽기_책 2024.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