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편의 단편과 에세이 두 편이 실렸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표제작인 <신앙>이다.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한몫 잡으려는 인물과 그를 의심하면서 서서히 동조하게 되는 다른 인물을 통해 종교(믿음)의 본질을 살핀다. 누군가 마음의 평화와 구원을 얻는다면 사이비라도 상관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위험해 보이나, 사실을 알고 보면 거대 종교 역시 사이비의 성질을 갖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일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모든 취향, 물질에 대한 애호의 속성 역시 (사이비) 종교가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것과 비슷하다는 작가의 주장에도 공감이 간다. 틀에 박힌 사고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기발한 전개, 아이러니 가득해 어이없는 웃음이 절로 터지는 결말이 인상적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 작품만은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편의를 위해 가전제품을 구매하듯이 자신과 똑같은 ‘클론’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어느 미래. 가사 노동과 경제 활동, 기타 목적으로 클론들을 구입한 주인공이 자신의 고유한 인격을 서서히 잃어 가고 있는 과정을 그린 <쓰지 않은 소설>도 꽤 독특한 감상을 남긴다. 기계로 대체된 사회에서 고유성을 잃고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게 되는 주인공의 모습은 인간의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지배하는 외계 생물체의 위협을 그린 영화 ≪Body Snatcher≫를 생각나게 한다.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받는 요소는 무엇일까, 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 밖에 수단이 목적을 앞서는 주객전도된 미래를 그린 <생존율>, 대체 가정을 꿈꾸는 세 여성의 이야기인 <토맥윤기>, 무개성, 몰개성이 일반화된 획일된 모습의 미래를 그린 <컬처쇼크>, 예술의 위대함과 영원성을 이야기한 <마지막 전시회> 등의 소설 작품이 실렸다.
나머지 두 작품은 에세이인데, <기분 좋음이라는 죄>에서는 개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무리에 섞일 정도만’을 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주류 사회에 대한 작가의 경험이 들린다. 조금이라도 튀면 ‘비웃음을 당하고 캐릭터화 되고 라벨링을 당하는(126쪽)’ 일은 비단 일본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무리 없이,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개성, 다양함’이란 존재하는지,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자면서 가차 없이 제시되는 대중의 ‘이중 잣대’에 대해서도 사회는 고민해야 한다.
<그들의 혹성에 돌아가는 일>은 어릴 적, 주변과의 불화를 극복하게 해 준 어릴 적 상상의 친구에 대한 작가의 경험이 보인다. ‘상상 친구’의 경험은 작가들에게 거의 공통된 기억으로 보이는데, 내향형 인간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짓고 글을 쓰는 일이 ‘내향형’의 인간에게 특화된 건 아닐지라도 좀 더 그들에게 유리한 일은 아닐지, 근거 없는 상상을 해본다.
대부분의 작품이 SF의 성격을 갖는다. 작가의 문학적 지향점을 짐작할 수 있다. 통통 튀는 상상력이 좋았다. 대부분의 작품이 짧다. 간략한 분량 안에서 할 말 다 하고 있으니 굉장히 효율적이고 이야기 집약적이다. 낭비가 없다는 건 좋은 작가의 덕목 중 하나이다.
사족.
<컬처쇼크>을 읽으면서 기시감이 들어서, 뭐지, 했는데, 생각해 보니, ‘박지리’ 작가가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서 보여준 사회와 꽤 비슷하다. 미래에 대한 상상은 누구나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하고 있는 걸 보면, 현재에 대한 인식도 국가와 인종을 막론하고 서로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미래의 상상은 현재의 반영이니 사람들 사는 모습은 국경 너머 어디든 똑같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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