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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이프_What If_2013-리뷰

달콤한 쿠키 2014. 11. 19. 09:59

 


왓 이프 (2014)

What If 
8.6
감독
마이클 도즈
출연
다니엘 래드클리프, 조 카잔, 아담 드라이버, 라프 스팰, 메건 파크
정보
코미디, 로맨스/멜로 | 캐나다, 아일랜드 | 98 분 | 2014-11-13
글쓴이 평점  

 

의대 중퇴에 숫기가 약간 부족한 월레스는 어떤 파티에서 샨트리라는 아가씨를 만나 첫눈에 반하지만 샨트리에겐 이미 남자 친구가 있고 같이 산 지도 5년째죠. 실망한 월레스에게 샨트리는 친구 하자고 제안을 하고, 웰레스는 속마음을 숨기고 동의를 합니다. 이후로 두 사람은 친구로 지내지만 월레스의 샨트리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질 줄 모르죠.

몇 차례의 사소한 고비를 겪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베프’가 되는 데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샨트리의 애인이 업무 차, 더블린으로 오랜 기간 자리를 비우게 되자, 월레스와 샨트리의 베프 관계에 진짜 위기가 찾아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될까요?

 

흔한 설정에 결말까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기는 해도, (결론부터 적자면) 이 영화는 보기 꽤 즐거운 영화입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우정’ 운운하는 소재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2014년 버전 같죠. 표면적인 차이라면, 빌리 크리스탈이 코미디를 연기했다면 다니엘 레드클리프는 진지하게 정극을 연기했다는 정도? 하지만 이 영화엔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 커플들에 있습니다. 특히 월레스가 그런데, 그의 친구 앨런의 말대로 ‘찌질한 쑥맥’은 아니죠. 이 사람은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고, 친구로 맺어진 관계와 그 대상을 보호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샨트리를 사랑하지만 샨트리의 다른 관계도 존중하고 싶어 하고, 심지어 자신의 라이벌에게도 진심으로 대하죠. 월레스의 최대의 갈등은 자신의 내면을 상대로 한 자신과의 싸움의 결과이며, 이는 곧바로 캐릭터의 매력과 연결됩니다. 월레스는 영화 내내 전전긍긍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게 아니라) 샨트리의 눈치를 살핍니다. 관객들은 월레스의 진심과 그 태도에 공감하며, 월레스가 용기를 내어 행동에 변화를 줄지, 그렇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 지 주목하게 되지요. 그리고 관객들은 (아마도 제가 그랬던 것처럼) 사랑을 앓고 있는 속마음과는 다르게 겉으로는 쿨한 척, 상대에게 앙증스러운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과 모습들에서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를 느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갈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월레스는 시작부터 갈등을 안고 이야기를 출발했던 반면, 샨트리의 경우는 이야기가 진행하면서 월레스에 대한 감정이 점점 커져감에 따라 갈등도 발전했다고 할 수 있죠. 샨트리의 감정 흐름이 훨씬 더 다채롭고 흥미롭지만, 영화는 샨트리를 보여주는 몇몇 시퀀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월레스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이는 영화의 중요한 국면 전환이 월레스의 결심이나 행동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힌트인데, 이 점을 영화의 테마와 연결한다면 꽤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영화는 남녀의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남자가 먼저’ 행동해야 한다고 넌지시 조언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칼자루는 남자가 쥐고 있다는 것인데, 그게 사실인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런 무언의 충고에서 여자는 수동적이고 남자는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성역할의 관습을 읽을 수 있는 것 같아 재미있죠.

 

이 영화는 마치 일명 ‘썸 타기’에 관한 이야기인 것처럼 홍보되고 있지만 이야기의 실체는 약간 다릅니다. 단순히 밀고 당기기, 고백하느냐 마느냐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는 ‘자신의 마음을 따르고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용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엄연한 애인이 있어 마음의 눈에 장막이 드리워진 샨트리는 그렇다고 쳐도, 월레스는 처음부터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깨닫고 있었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숨기느라 진을 빼죠. 표면적으로 영화는 ‘애인과 친구 사이’ 혹은 ‘남녀 사이에 친구 관계란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영화가 관객들에게 묻고 있는 것은 좀 복잡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우리는 한 단어로 단정 짓고 싶어 합니다. ‘애인’이나 ‘친구’, 혹은 ‘선배’나 ‘후배’, 그것도 아니라면 (무척 모호하게도) ‘아는 동생’이나 ‘아는 형’, ‘아는 오빠’ 등등의 다소 억지스러운 단어의 조합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정의하고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그런 것이 과연 필요할까요? 이 영화의 갈등도 그런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친구로 시작한 월레스와 샨트리의 관계는 그 감정에 변화를 겪으면서 난관을 겪습니다. 스스로 정의내린 ‘친구’라는 관계에 빨간 신호가 들어오자 불안해지는 거죠. ‘관계를 정의 내리려는’ 함정이 때때로 이 영화 속의 두 인물들처럼, 본능에 솔직해지고 자신의 마음을 따르려는 것에 방해 요소가 된다는 사실은 아마도 우리 모두 몇 번은 겪었을 경험 같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겪고 있는 갈등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숨겨져 있는 만큼 그것을 극화시키는 것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쉽게 소동극의 형태를 취한다는 것도 그런 곤란을 극복하기 위한 한 방법이죠. 하지만 이 영화는 다릅니다. 대사가 무척 길고 많거든요.

원작이 희곡이라는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인물들이 대사를 치는 모습을 보면, 관객으로서도 숨이 찹니다. ‘갈등을 말로 푼다’는 말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긴 호흡의 수다스러운 대화들이 단점이 되질 않아요. 속사포처럼 주거니 받거니 대사를 치고 있는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흥미진진한 탁구 경기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죠. 겉과 속이 다른 대사들은 재치가 넘치며 거침없는 ‘말빨’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를 보장합니다.

 

엔딩에 대해서.

처음에 저는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라고 적었는데, 사실 그런 엔딩은 약간 뜻밖이었어요. 영화 보는 내내 그런 결말을 상상하긴 했어도 ‘그 장면’을 진짜로 보여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마음에 아주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엔딩을 열어놓고 끝을 맺었더라면 여운이 더 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족.

두 사람의 앞날을 살짝 엿보고 싶으시다면 엔딩 크레딧을 놓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