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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들기 전에_Before I Go To Sleep_2014-리뷰

달콤한 쿠키 2014. 11. 9. 17:27

 


내가 잠들기 전에 (2014)

Before I Go to Sleep 
7.4
감독
로완 조페
출연
니콜 키드먼, 콜린 퍼스, 마크 스트롱, 앤-마리 더프, 딘-찰스 채프먼
정보
미스터리, 스릴러 | 영국, 프랑스, 스웨덴 | 92 분 | 2014-10-30
글쓴이 평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올해 마흔인 크리스틴은 매일의 아침을 언제나 스무 몇 살 때의 기억으로 맞는 기억상실증 환자입니다. 크리스틴의 증상은 약간 특이해서 스무 몇 살 이후로의 기억을 쌓는 것에 문제가 있어요. 그러니까 깨어 있는 하루 동안의 기억은 할 수 있지만 일단 밤에 잠이 들고 그 다음날 깨어나면 기억이 완전 백지 상태가 되는 거죠. 스무 몇 살 이전의 기억은 문제없고요.

 

남편 벤은 십사 년 전 있었던 어떤 교통사고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크리스틴은 그 말에 의심을 갖고 있습니다. 남편 몰래 진료를 받고 있는 내쉬 박사의 말은 완전 다르거든요. 내쉬 박사의 말에 의하면 크리스틴은 폭행을 당해 집 근처 모텔촌 옆의 공장 지대에서 알몸으로 발견됐다는 겁니다. 크리스틴은 내쉬 박사의 조언대로 매일의 기록을 동영상으로 남깁니다. 그것을 단서로 크리스틴은 자신이 잃어버린 과거에 조금씩 접근하게 됩니다.

 

영화의 장르(이 단어를 사용해서 굳이 분류를 하는 것이 유의미한 일인지 의심은 가지만, 아무튼)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재는 기억상실.

일단 크리스틴의 증상은 ‘첫 키스만 50번째’란 영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기억상실이란 소재를 미스터리의 도구로 삼은 점에서는 ‘메멘토’를 닮았고요. 소재의 참신함, 어쩌구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소재의 유사성으로 이 영화는 이득을 얻고 있어요. 관객들에게 이것은 어떤 영화고, 어떤 분위기고 어떤 이야기일 것이라는 설명을 대폭 생략해서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으니까요.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동력과 테마인데,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는 동력, 즉 영화를 이끌고 가는 힘과 이야기의 매력입니다.

일단 이 영화는, 이른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추진력이 부족해요. 폭행의 후유증으로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는 크리스틴의 주위엔 달랑 두 남자가 있을 뿐이죠. 주인공의 과거엔 어떤 비밀이 있고 엔딩엔 엄청난 반전이 있을 거라 잔뜩 분위기를 잡지만 두 명뿐인 용의자에서 나쁜 놈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백 년 전, 고전 추리소설들에 나오는 유명한 탐정들의 이른바 ‘소거법’을 사용하면 누가 누구일지 보이거든요. 이 놈 아니면 저 놈인데, 이 놈은 아닌 것 같으니 저 놈이네. 이런 식인 거죠. 영화는 한두 번 꾀를 부려 추리에 혼선을 주는 척 하기는 하지만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냅니다. 그 장면에서 관객들은 ‘아하, 나쁜 놈은 저 놈이었군.’하는 결론에 다다르죠. 미스터리 스릴러의 영화를 보면서, 호기심을 자극받고 추리력을 농간당하는 즐거움이 없다면 관객들은 그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영화는 대체로 어눌합니다. 단서는 많지만 나열되어 있을 뿐이라 관객들이 끼고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수수께끼는 있지만 별로 궁금하지는 않으며 잘 계산된 디테일이 주는 지적 쾌감도 없죠. 결국 관객들이 얻는 것이라고는 유명 배우들의 아름다운 모습들과 능란한 연기뿐이에요.

이야기가 시답잖아도 내용이 알차면 감상은 또 달라집니다. 줄거리는 그저 그런데 인상적인 영화들은 많죠. 캐릭터가 인상 깊거나 영화적인 메시지가 남다를 때, 관객들은 이야기가 시큰둥해도 그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화려한 껍데기를 제외하면 남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주인공의 고통과 두려움은 수박 겉을 핥는 식이고, 그나마 악당의 심리가 흥미롭긴 하지만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느라 소외되어 있죠.

 

 

미스터리 스릴러의 외피를 쓴 영화와는 달리, S. J. 왓슨의 원작에서는 그것 이상의 것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겪는 내면의 갈등과 심리의 섬세한 떨림,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통찰과 희생의 미덕, 사랑과 믿음에 관한 교훈 등등. 주인공이 일기를 쓰는 덕에 독자는 그의 눈으로 세상을 대하고 자신을 바라보며 하루를 삽니다. ‘일인칭’이라는 이야기적 장치에서 나온 장점이겠지만, 원작 소설이 단순히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작품으로 읽히지 않은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었죠. 하지만 영화는 각색 과정을 거치며 그것들을 많이 잃습니다.

 

또한 영화가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에 충실하느라 아기자기한 멜로드라마적인 재미들도 많이 줄었습니다. 불쌍한 여자에게 느끼는 동정심과 안타까움이 의혹과 미스터리로 바뀌면서 서서히 긴장감을 구축하며 서스펜스를 고조하는 원작의 묘미는 각색과 더불어 모조리 사라졌어요.

 

그런 것들을 잃거나, 혹은 스스로 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버린’ 겁니다. 어쩔 수 없이요. 그런 데엔 필요에 의한 선택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은 영화를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크리스틴의 손에 펜과 노트 대신 동영상이 찍히는 카메라를 쥐어 줍니다. 이게 가장 중대한 실수 같아요. 노트나 카메라나, 똑같이 일기를 적거나 하루를 기록하는 데에 동원될 수 있는 매체들이지만, 글을 적는다는 것과 카메라를 노려보며 말로 떠드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한 번 해 보세요. 어떤 경우가 ‘자신에게 더욱 솔직해지기 위한 행위’에 더 적합한지. 영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해도 안타까운 거죠. 그리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되지도 않고요.

이야기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스스로 포기한 결과, 주인공이 겪는 고통과 혼란, 두려움 등은 조금만 힘을 주어 만져도 바스락거리며 사라지는 메마른 낙엽 같습니다. 생기가 없는 거죠. 이것은 핍진성(逼眞性)의 문제입니다.

 

(희한한 일이지만) 그런데도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실컷 불평만 늘어놓은 것에 대한 핑계 같지만 사실 그렇습니다. 상영 시간이 무척 짧다고 느꼈으니까요.

그런 데엔 무엇보다 위에 살짝 언급했듯이 캐스팅의 덕을 많이 봤겠죠. 그리고 영화는 재빠른 전개에 소설에서 느꼈던 중반의 지루함도 잘 극복한 것 같아요. 특히 클라이맥스가 좋았는데, 크리스틴이 폭행을 당한 모텔에서의 그 시퀀스는 관객들을 얼어붙게 만듭니다. 크리스틴의 위기감이 잘 표현되어 있어요.

 

 

배우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크리스틴을 연기한 니콜 키드먼의 캐스팅은 약간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연기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니콜 키드먼은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볼 수 있지만, 크리스틴이라는 캐릭터, 즉 기억상실을 겪고 있으며, 모종의 범죄의 피해자이고 정체성을 잃고 오락가락하는, 하루아침에 스무 살의 나이를 훌쩍 먹어버린 혼돈의 캐릭터에서 기대하는 측은지심이 별로 생기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외모가 오히려 방해가 됐다고 하면 이 배우의 팬들을 자극하려나요.

 

반면, 벤은 콜린 퍼스라는 배우의 덕을 톡톡히 본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척 흥미로워요. 이 영화의 캐릭터들을 분석한다면 크리스틴보다 벤에게서 더 많은 텍스트가 나올 것 같아요. 소설 속의 벤에게선 이런 것이 없었죠. 이런 데엔 억눌린 듯한 배우의 외모가 한몫했다는 의견도 언급해야겠습니다.

벤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그가 크리스틴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십 년 가까이 기억상실증 환자 옆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지겹고 고된 일인지에 대한 것 이상입니다. 사랑보다, 매일의 힘든 노동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겪었다는 사실보다 벤의 행동엔 어떤 긍정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크리스틴에 대한 ‘속죄’죠. 크리스틴에 대한 벤의 태도와 행동을 ‘사랑’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해석하기보다 ‘속죄’와 ‘반성’의 틀에서 생각해본다면, 이해와 동정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것은 용서와는 다른 얘기입니다만.

 

 

사족.

어쩔 수 없이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게 됐습니다. 영화가 어떤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두 개의 결과물은 전혀 다른, 완전히 독립된 것이라 이해와 감상이 전혀 별개의 영역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데도 말이죠.

 

부연해서 적자면 제 경우, 소설 원작의 영화 같은 경우에 소설을 읽었다면 영화는 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영화를 먼저 봤다면 소설은 안 읽죠. 물론 예외는 있어요. 제가 아주, 무척 좋아하는 작가나 감독이거나, 무진장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다거나 하면 꼭 보거나 읽죠. 소설이나 영화의 감상이 너무 강렬한 경우도 그렇게 하고요. 그건 두 번째 접하는 매체에 대한 올바른 감상이 어렵기 때문인데,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우습지만) 무료였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마크 스트롱이란 배우 때문이었어요. 우리에겐 별로 알려져 있진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하는 배우죠. 이 영화에선 내쉬 박사를 연기합니다.

 

S. J. Watson의 원작 소설이 궁금하시다면, 아래를 방문해 보세요. 제가 쓴 리뷰입니다.

http://blog.daum.net/soulflower71/228

 

사실 소설도 그리 썩 만족스럽진 않았답니다. 소설 리뷰의 말미에 살짝 언급했지만, 아마도 번역의 문제도 한몫했던 것 같아요. 번역도 또 다른 형태의 창작이란 것을 실감하게 해준 번역물이었습니다.

 

 

벤이라는 캐릭터는 올랜도 블룸이 주연한 영화, ‘굿 닥터’의 주인공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가벼운 요로 감염으로 입원한 환자와 사랑에 빠진 의사가 그녀의 퇴원을 막기 위해 의사의 지위와 기회를 이용해 계속 감염시킨다는 이야기죠.

두 영화 모두, 사랑의 파괴적인 이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죠. 동전의 양면 같은 거죠.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감정, 사건, 관계 등이 거의 모두 그렇다는 것은 가뜩이나 피곤한 현실에 우리를 움츠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만, 삶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거죠.

‘굿 닥터(The Good Doctor)’의 리뷰가 궁금하시면 아래를 방문해보세요. 본인이 쓴 리뷰입니다.

http://blog.daum.net/soulflower7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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