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사랑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_이채현-리뷰

달콤한 쿠키 2016. 7. 11. 19:55

어디 당선작이니, 하는 작품들을 대하는 본인의 태도는 어느 정도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을 우선 인정해야겠습니다. 물론 기성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은 제외하고 말이죠.

그 태도는 대체적으로 상반되는 두 가지 양상을 띠는데, 하나는 부럽다, 정도이고 또 하나는 얼마나 잘 썼는지 두고 보자, 죠.


관심은 있지만 해마다 당선작들을 꼬박꼬박 챙기는 편이 아니니, 당선작은 둘째 치고 당선자들에 대한 선입견도 있는 편입니다. 당선자들은 프로페셔널한 작가라고 하기엔 아직 이르고 이제 겨우 습작 단계를 벗어났을 뿐이니 분명 허점이 많으리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갖게 되는 편견이고, 아무리 그렇더라도 완전 초짜는 아닐 테니 분명 배울 점이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감 역시 편견이랄 수 있겠죠.


이래저래 기대 반, 우려 반 섞인 심정이지만, 그래도 역시 당선작이니까, 분명 뭔가 장점이 있을 테니까, 하는 마음으로 그것들을 대하는 게 최종적인 태도인 것 같습니다. 프로와 아마추어, 양쪽 세계에 아슬아슬하니 위태롭게 양 발을 걸치고 있는 신비로운 모습도 상상되고요. 당선작들을 대할 때마다 갓 신고식을 치룬 신인들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기도 하고, 나도 조금만 더 하면 이뤄낼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점쳐 보기도 하면서, ‘역시’라는 감탄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하지만 이채현 작가의 이 당선작은, 우리끼리 얘기지만, ‘역시’라는 감탄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뭐랄까, 기대에 못 미쳤다고나 할까요.



이야기는 단조롭고 뻔하며, 인물은 얄팍하고 감정은 느닷없습니다. 앞뒤 서술이 어긋나는 문장들이 많이 보이는 탓에 어떤 장면들은 머릿속에서 화면으로 그려지질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거칠어요. 삐거덕거리는 부분들이 많고 미숙해 보이죠.


솔직히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교감을 다룬 이야기는 SF 장르에서 너무 흔합니다. 이 작품은 도입부만 읽어보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너무나 뻔하죠. 작품의 주제의식 또한, 그런 뻔한 소재로 할 수 있는 이야기에 담을 수 있는, 딱 그만큼의 테마만 담고 있고요. 이런 몰개성의 이야기를 어떤 극적 장치도 없이 오로지 아이디어 하나 만으로 이야기를 밀어붙이고 있는 작가는 우직해 보인다기보다 미련스럽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은 캐릭터들이 불투명하다는 겁니다. 속까지 훤하게 들여다보인다는 말이 아니고, 그 반대죠. 형체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개성이 없어요. 어떤 감정인지 파악이 어려운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화면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은석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지만 고뇌에 찬 험프리 보가트 흉내 이상은 아닙니다. 주인공인 은석을 볼까요.


은석은 할아버지한테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는 건가요? 할아버지가 죽은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로봇을 만들어서 자신의 죄책감을 불필요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자극하기 때문인가요? 독자로서 그렇게 짐작은 가는데, 그게 맞나요?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그런 악의를 품을 만한 사람인가요, 아니면 손자의 상처보다 딸을 잃은 자신의 상실감이 더 컸던, 그래서 손자의 내면과 죄책감을 살필 겨를이 없었던 생각이 짧고 이기적인 노인네였던 건가요? 아니면 그건 완전히 은석의 오해에 불과한 건가요?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는 어땠나요? 가족의 죽음에 대화 한 마디 없었던 닫힌 관계였나요? 아니면 대화는 있었으나 은석의 엄마의 죽음만은 애써 외면했던 사람들이었던 가요?

엄마의 죽음에 대한 은석의 죄책감은 정당한 건가요? 엄마가 죽은 그 교통사고는 오롯이 은석의 잘못이었나요? 그렇다면 어떤? 졸음운전? 아니면 음주운전이었을까요? 상대방 차와 부딪혔다고 하는데, 상대 차량의 잘못은 없었나요? 혹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만 안전하도록 차를 돌렸기 때문에 그런 고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건가요? 왜 은석은 그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스스로에게 지우고 있는 걸까요?


할아버지에 대한 은석의 감정은 표면적으로나마 드러나고 있지만 깊이가 없어요. 그 배후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기 때문이죠. 엄마의 죽음을 배경으로 한 은석에 대한 할아버지의 감정과 그 관계에 대한 힌트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고요.



작품 전체의 감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은석과 이안’의 관계가 아니라, ‘은석과 할아버지’의 관계입니다. 그 배경엔 ‘엄마의 죽음’이 있고요. 작가는 ‘엄마의 죽음’에 대해 좀 더 풀었어야 했어요. 그 이후, 조손(祖孫) 간에 일어난 변화, 어긋나는 생각들, 억눌린 감정들, 울컥 터져 나올 듯 내장을 가득 채운 말들을 토해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자로서 더 듣고 싶은 말, 더 들어야 할 말이 있는데도 작가는 함구합니다. 작가는 썩어가는 상처의 근원을 치료하지 않고, 고름이 흘러넘치는 위에 얇은 반창고 하나 간신히 붙여 놓죠. 엄마가 아이돌이었네, 혼전 임신을 했네 하는 것들은 그냥 사족일 뿐입니다.


작가가 인물을 그리는 수준은 설정을 늘어놓는 것뿐입니다. 게다가 일방적이기까지 하죠. 독자들은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하나요? 당연히 주인공인 은석의 시선에 감정을 실어야겠고, 작가 역시 그러길 바랐겠지만, 사실 그게 어렵습니다. 거의 불가능해요. 은석이라는 인물은 믿을 만한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감정을 온전히 실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 작품 속에 빠져들지 못하고 이런 저런 단점들만 부각되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라면 엔딩은 은석과 이안의 엔딩이 아니라, 은석과 할아버지의 엔딩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안’이라는 휴머노이드는 그 엔딩을 이끄는 매개가 되어야 하고요. ‘깡통’에 불과했던 이안에 대한 은석의 감정 변화도 어색하고 느닷없습니다. 클라이맥스에서 뭔가 감정이 빵! 하고 터져야 하는데, 그런 카타르시스가 전혀 없어요.


오히려 지금의 엔딩 덕분에 작품 전체의 행간에서 뜻하지 않은, 하지만 별로 놀랍지도 않은 ‘homo-sexuality’나 ‘Oedipus Complex’의 뉘앙스를 읽어내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이게 작가의 의도였다면 뭐, 할 말이 없겠지만요.


또 투덜거려보죠.


할아버지는 유산을 남겼다면서  유언을 ‘그 따위’로 남겼을까요. 그냥 악취미인가요? 손자를 골려먹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면, 그 이유가 따로 있었던 건가요? 할아버지가 은석을 딸을 죽인 살인자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 외에 이러쿵저러쿵 불평을 많이 했지만 모두 생략하겠습니다. 불만들을 통틀어서 적자면 작가는 지문을 쓰는 훈련이 잘 안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소설의 모든 장면은 영화를 보듯 읽는 이의 머릿속에서 그려져야 하지만 이 작품은 그게 어려워요.

앞뒤 안 맞는 대화, 한 단락 안에서 마구 섞여 있는 시점의 혼용, 문맥이 맞지 않는 지문들, 인물 동선의 비약, 너무나 불친절해서 의미가 모호한 지문들, 그리고 클라이맥스는 너무 쉽고, 암호처럼 제시된 유언은 아무 의미도 없으며, 은석의 변화는 느닷없고, 기타 등등.

대체 이런 작품이 왜 당선작이 된 거죠?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의 어떤 점을 높이 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의 당선 의미는 그냥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 시장에서 드디어 장르 문학에 러브콜을 보냈다, 이 정도인 것 같다고 생각은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평을 읽어보면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소위 ‘장르문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들이 더러 있었던 것 같으니, 그 정도의 위안도 위안이 안 되는 것 같고 말이죠. 


이채현 작가의 당선작을 읽어보시려면 이곳으로...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2312005295&code=96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