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얕고 얇은 나의 지식으로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는 중동 어디쯤에 위치한 나라였다. 파키스탄과 이란, 과거 소련(지금은 독립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니 반은 맞다. 중국과도 살짝 맞닿아 있는데 다른 얘기지만 중국 땅이 진짜 넓긴 하다.
무식한 것 이상으로, 무지를 기반으로 한 편견도 있었다. 탈레반의 근거지이고 폭탄 테러를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만약 그런게 가능하다면) 악의 축. 위험하고 무서운 이슬람. 이것도 반만 맞다. 이런 불명예는 주로 탈레반이라는 집단이 하는 짓이고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을 무력으로 착취한 사람들이다.
이 책의 작가인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는 여기 수도 ‘카불’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인으로 살고 있는데, 아마도 자신의 고향, 과거에 만신창이였고 지금도 만신창이인 자국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으로 이 작품을 썼을 것이다. 예전에 영화로 본, 그 영화의 원전이 된 데뷔작이자 이 작품 전작인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 역시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니, 이 작품 이후의 다른 작품들 역시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러리란 예상이 쉽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고국을 떠난 한 개인으로서 자국에서 일어난,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비극과 불합리와 폭력을 세계에 고발하는 의무를 지는 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쉬운, 매우 당연한 선택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타국에 정착하여 소설을 발표하는 작가들을 보면 떠나온 곳에 대한 역사와 향수를 재료삼아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출신과는 별개로 완전히 현지화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제2의 고향의 구미에 맞는 소설을 쓰는 작가들도 있으니까. 그건 그저 작가의 선택이다. 자국의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천차만별일 테니까. 우리에게도 (망명한 경우는 아니지만) ‘현기영’ 같은 작가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한강’ 작가 역시 ≪소년이 온다≫ 같은 작품만 발표한 게 아니니까. ‘전후 문학’이란 게 카테고리 이상의 큰 의미를 갖지 않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거대하고 참혹한 비극을 자진해서 마주한다는 건 실로 놀랍고 대단한 일이다. 진정한 용기다.
작가 역시 고향의 거대하고 참혹한 비극을 마주한다. 그것을 배경으로 평범한 두 여자, ‘미리암’과 ‘라일라’를 전면에 내세운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보다 두 여자의 삶에 천착하는데, 그들이 겪고 그들에게 닥치는 일이 곧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이다. 독자들은 두 여자의 삶을 통해 한 나라에 닥친 가난과 폭력, 억압과 차별을 경험한다. 특히 여성으로서 두 인물이 받아야 하는 폭압은 개인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능가한다. 비극 속에서 여성들의 삶은 더 가혹했다. 악몽 같은 삶을 살아내기 위해 두 여자는 연대한다. 그럼에도 고난은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쉴 새 없이 닥친다. 와중에 웃을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은 천상의 선물 같다. 휘청대는 운명에 눈물 흘릴 겨를이 없는 건 독자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진실을 담는다. 진실을 담는다는 그릇이기에 소설은 ‘사실’을 재료 삼는다. 하지만 그 ‘사실’만을 드러냈다면 소설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갖추기 어렵다. 방법을 아는 작가들은 사실보다 허구를 부각시킨다. 허구가 독자들의 의식을 사로잡을 때 사실은 무의식을 자극한다. 은밀하고 꾸준하게. 그리고 확실히.
작가의 진짜 의도는 ‘사실’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게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면 촌스럽고 서툴고 지루해 보인다.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지금 허구(거짓말)로 이루어진(작가가 지어낸)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걸 끊임없이 주지시켜야 하지만 동시에 배후에 숨겨진 사실(진실)을 눈치 채게 만들어야 한다. 이야기의 ‘핵’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가는 제 할 일을 무척 잘 해냈다. 이야기에 빠져 감정이 휘몰아치는 사이, 순식간에 읽었다. 위에서 인정했듯이 모종의 편견으로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책인데 친구의 추천으로 읽었다(책을 사주진 않더라). 작품에선 탈레반이 물러나고 그나마 평화가 찾아오는 걸로 끝나지만, 몇 년 전 탈레반이 다시 집권했다는 뉴스를 들은 기억이 나서 아연실색하게 된다.
비극은 여전하다. 지옥 같은 삶도 여전할 거다. 눈곱만큼 변한 게 있다면 바로 나 자신. 그토록 완고했던 편견이 흔들리고 그것에 의심을 품게 되었다는 거다. 난민에 대해서도 실낱같지만 관심을 갖게 됐다는 사실. 이런 게 바로 독서의 힘, 한 편의 소설이 해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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