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프랑스를 여행 중인 미국인. 그곳에서 싱글맘과 사랑에 빠진 남자는 여자와 그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들어옵니다. 좋은 시절도 잠시. 어린 딸이 고향에 대한 향수로 타국 생활을 힘들어하고 두 사람의 사랑에 위기가 옵니다. 결국 모녀는 프랑스로 떠나고 남자는 어릴 적 여자 친구를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지지만 그 여자와도 잘 안 되고, 그러다가 프랑스 여자가 다시 오고, 다시 행복해지려는 찰나, 여자에게 자궁 쪽에 무슨 (암 같은) 병이 생기고, 한쪽에선 남자가 사는 교구의 멕시코인 신부가 신의 존재와 사랑을 의심하고, 또 한쪽에선 마을의 토양에서 중금속이 발견되어 마을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줄거리를 요약하기가 좀 복잡해서 스크린에 보이는 것들을 나열해 봤습니다. 대강 어떤 이야기일지, 무슨 말을 하려는 지는 감이 옵니다. 하지만 솔직히, 명확하지는 않아요.
영화는 대체적으로 일방적이고 불친절합니다. 일단 인물들이 그렇죠. 그들에겐 이름도 없고, 뭐하고 먹고 사는지도 안 보입니다. 게다가 마땅한 대사가 거의 없어요. 이야기 진행은 인물들의 내레이션에 크게 의존하는데, 그 내러티브도 일관성이 없죠. 그런데다가 개연성이 별로 없을 것 같은 장면들이 툭툭 던져지고 관객들은 그 연결고리를 스스로 찾아야 해요. 예를 들어 두 연인이 오골오골거리며 사랑을 나누다가는 느닷없이 토양을 채집하는 현장이 나오고, 이런 식이죠. 이런 영화적 도전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 영화 감상의 재미를 찾는 관객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영화는 최악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그나마 추천할 수 있다면 그건 아마 인물들이 쉴 새 없이 뱉어내는 독백 때문일 것입니다. 지나치게 내면에 몰입된 감도 없진 않지만, 사랑과 자연의 경외감, 인간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는 내레이션들은 철학적이기 이전에 무척 시(詩)적이죠. 영화 속의 내레이션을 따로 모아 옮긴다면 근사한 경구집(警句集)이 거뜬히 나올 정도로요.
미장센이 좋은 영화입니다. 화면이 무척 예뻐요. 장소를 공들여 선정하고 프레임 안에 대상들을 어떻게 배치할 지, 앵글은 어떤 식으로 할지, 기타 등등 무척 고민한 티가 많이 납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장면들이 포스터나 관광 엽서 같은데, 그게 또 불만입니다. 약간 부담스럽거든요. 두 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 타임 내내, ‘강-중-약’의 완급을 무시한 하이라이트 같은 장면들을 주구장창 봐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부담스러운 것은 배우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지 않고 포즈를 취합니다. 모델처럼요. 마치 잡지의 화보 이미지들을 슬라이드 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은 영화를 보는 내내 방해가 되더군요.
이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은 대강 그렇습니다. 영화 사이트를 뒤져보니,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호불호가 양극단을 달리더군요. 매스컴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우호적이고요. 이 영화에 대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슬프게도) 그건 본인의 착각이었어요.
이런 모양새로 영화를 만든 의도가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감독의 철학이 저 같은 평범한 관객의 그것을 초월하거나, 아니면 ‘자뻑’ 수준이거나 둘 중의 하나겠죠. 상영관을 나왔던 직후와는 달리, 지금은 본인의 한계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또 아닌 것도 같거든요. 핑계처럼 들리겠지만요. 최소한의 힌트라도 줘야 할 것 아니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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