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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박스_Dabba_The Lunchbox_2013-리뷰

달콤한 쿠키 2014. 7. 8. 14:27

 


런치박스 (2014)

The Lunchbox 
8.8
감독
리테쉬 바트라
출연
이르판 칸, 님랏 카우르, 나와주딘 시디퀴, 덴질 스미스, 바라티 아치레카르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인도, 프랑스, 독일, 미국 | 104 분 | 201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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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는 평범한 주부. 최근 소원해진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는데, 바로 다름 아닌 도시락 안의 쪽지. 정성껏 차린 도시락과 아내의 사랑 어린 메시지를 담은 편지를 받는 남편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하지만 일라의 도시락은 배달 실수로 엉뚱하게도 은퇴를 앞둔 중년 남자인 사잔에게 배달됩니다.

반복되는 배달 실수로 일라와 사잔은 도시락을 통해 쪽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다가 호기심과 친밀감은 두 사람의 감정을 점점 혼란에 빠뜨리고 말죠.

 

일렬로 죽 늘어선 각양각색의 도시락 가방. 비오는 날씨에 우산도 없이(그 나라에선 흔한 광경이겠지만) 그것들을 분류하고 정렬하고 배달하는 인부들. 복잡한 전동차와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 이런 피곤하고 번잡한 인도의 아침 풍경은 주인공 일라와 사잔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두 사람은 지쳐 있고 외롭고 불안해서 위태롭게 보여요.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도 별다르지 않겠습니다만.

이런 두 주인공의 무미한 삶에 활력소가 된 것은 도시락을 통해 주고받는 서로의 ‘쪽지’였습니다. 누가 읽을지 쓰는 당사자들조차 모르는 쪽지들은 일라와 사잔에게 숨통을 틔우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 것에서 이 영화의 목적을 읽을 수 있었어요. 우리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진솔한 의사소통이란 것, 사랑 같은, 인생의 다른 좋은 가치들은 바로 그것에서 파생된다는 사실이요.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소통’은 아슬아슬하지만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낯모르는 타인이기 때문에 더 솔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의 비밀을 털어놓는 것도 친구나 가족에게보다 친분이 별로 없거나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할 때 더 수월할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서 오는 ‘감정의 배설’에 따르는 쾌감과 낯모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의 긴장감을 영화는 잘 표현하고 있죠.

 

무척 귀여운 영화입니다. 오밀조밀한 사건들에 잘 짜인 플롯, 시종일관 흐르는 유쾌하고 행복한 정서가 특히 좋았어요. 이메일이나 모바일 메신저가 아닌 ‘직접 손으로 쓴 쪽지’라는 소재도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 좋았고요. 무엇보다 이 영화 속엔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들이 많이 나옵니다. 중요한 소재인 도시락이라는 것도 그렇고 카세트테이프나 천정에서 도는 선풍기 같은 것들도 그렇죠. 인도의 관객이었다면 영화 속에 나오는 인도의 전통 요리에도 특별한 감흥을 느꼈을 것 같아요.

 

엔딩에 관해서. 이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는데(저는 이 영화가 어떻게 끝날지 보는 내내 궁금했거든요), 이야기 속의 로맨스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아요. 뭐, 관객에 따라서는 이런 결말을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어차피 일라에겐 남편이 있고, 그 가정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확고하니 그 정도의 결말로도 충분한 거죠. 이야기 속의 사건들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지만 그것이 일라와 사잔에게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그들에게 행복과 치유, 변화할 수 있는 용기 등을 선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결말의 여운은 관객들에게 감동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죠.

 

영화 관람 후의 여운은 로맨틱한 감정, 그 이상입니다. 주변의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사소한 티끌까지 고백하고 싶어지니까요. 그런 용기는 자기 마음에조차 귀를 닫아버리는 요즘의 우리들에게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진심을 경청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런 용기도 생긴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인색하죠. 너무나 바쁘고 치열한 일상에 하루하루를 밤낮없이 무언가에 끌려 다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렇게 건조하고 평범한 삶을 가치 있고 특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소재는 음식입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이 잘못 배달된 도시락에 있으니까요. 음식을 매개로 사건과 사람들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영화는 거의 실망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바베트의 만찬’도 그랬고, ‘카모메 식당’, ‘음식남녀’, TV시리즈 ‘대장금’까지요. 그런 것을 보면 식욕만큼 사람들의 솔직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재가 또 있을까 싶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일라가 도시락을 쌀 때 만드는 인도의 음식들이 너무나 궁금하더라고요. 하나하나 죄다 맛보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