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상속_은희경-리뷰

달콤한 쿠키 2015. 6. 1. 21:31

 


상속

저자
은희경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02-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동서문학상.이상문학상.한국소설문학상 수상 작가의 새로운 창작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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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세상이 번잡스러운 만큼 우리 삶도 변화무쌍하지만, 차 떼고 포 떼면 사는 거, 참 단순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부자거나 가난뱅이거나 유명하거나 평범하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기타 등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천태만상의 모습으로 가지가지 양상의 삶들을 살아내지만, 결국 사는 건 태어나서 살다가 죽어서 사라지는 것, 그게 전부 아닐까요?

은희경이 이 작품집에서 보여주고 있는 인물들도 딱 그만큼입니다. 특별히 잘나지도 않았고 딱히 못나서 두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도 아닌, 그저 그런 사람들. 나름의 장단점도 있는 그들이 사는 이유는 태어났기 때문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고 막 사는 것도 아닙니다. 각자 자신의 형편에 맞게 처신하는 나름의 방법도 알고 있죠. 그게 먹히고 안 먹히고는 나중의 문제고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사는 건’ 어려운 숙제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인물들을 ‘사람’이 아닌 ‘사물’, 관찰의 객체로 다룹니다. 이런 의도는 그저 인물들을 대상화 시키고 타자화 시켜 결국 ‘글감의 일부’로 전락시켜버릴 위험이 다분하지만, 작가는 유려한 필력으로 그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으니 그 필력이야 당연할 테지만, 그 결과는 단순히 ‘위험을 극복했다’는 수준 이상의 것입니다. 은희경이 철저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하고 잔인할 정도로 냉정한 어투로 풀어낸 인물들은 충분히 가엽지만 동정의 여지는 없고,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거기 같은 그들의 삶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교훈도 없습니다. 다양한 이야기와 충분히 감상적인 소재들로 쓴 이야기들의 감상은 씁쓸하고 냉정합니다. ‘가차 없다’라는 표현이 떠오르죠.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며 독자들 역시 자신들이 마주한 ‘삶’이라는 거대한 산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 어마어마한 위용(威容)에 주눅은 들지만 언젠가 그 안을 향해 발을 떼어야 하죠. 그 산을 넘거나 정상을 밟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숲속에 들어가긴 해야 하니까요.

이런 ‘삶에 대한 외경심’은 이 작품집을 꿰뚫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력하며, 불만과 권태에 짓눌리는 삶을 하루하루 연명하기 바쁩니다. 이들의 권태란 ‘적극성의 결여’라는 문제로 이어지고, 이들의 ‘그냥 살아지는 삶’은 곧 ‘무덤’이라는 소재로 상징됩니다. 이렇게 작품마다 깃들어 있는 ‘죽음’의 분위기는 살아지는 대로 우주에 잠시 머물 뿐인 우리의 존재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낳은 부산물처럼 여겨져요.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는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입니다. 주인공 ‘소라’의 유년시절부터의 서사(敍事)는 삶의 기록이라기보다 편견과 차별에 대한 한 개인의 역사처럼 보입니다. 소라의 인생을 담담히 들려주는 작가의 목소리는 차라리 잔인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모습과 성격은 변한 것처럼 보여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고 그것을 둘러싼 주변 환경과의 역학도 변함없는. 속수무책의 삶을 살고 있는 소라에게 공감하지 않는 독자들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살면서 소라는 ‘튀면 안된다’는 교훈을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해 터득했겠지만 제 모습은 어쩔 수 없었던가 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공감은 쉬워도 막상 소라에게 해 줄 조언은 마땅치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게 다 그런 모습일 테지요. 소라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동창생의 등장도 해프닝 이상은 아닙니다. 절절하지는 않더라도 적당히 로맨틱한 온기로 소라에게 위로가 되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니까요.

 

소라가 자신을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는 편이라면, <딸기 도둑>의 ‘은혜’는 그런 시도를 일찌감치 포기한 사람입니다. 이 작품에서 들리는 목소리의 은혜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는 이미 글렀으니 제 생긴 대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이죠. 그래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보입니다. 모든 걸 까발리고 자기 방식대로 산다는 건 어지간한 용기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 용기와는 달리 은혜는 슬픈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결말도 좋지는 못하죠. 의문을 남기는 이 작품의 결말은 반전이라기보다 은혜 앞에 놓인 끝없는 어둠을 보여주는 것 같지요.

 

우리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며 육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표제작, <상속>은 암으로 죽어가지만 여전히 삶에 의욕적인 아버지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과 아버지를 둘러싼 여러 의문들이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말하는 ‘대리인’의 정체와 재산의 행방 등에 대해 의문을 품지만, 결국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자신들의 삶에 지워진 짐들을 하나씩 덜어가기로 하죠.

누군가의 죽음, 특히 가족의 죽음은 가끔 우리의 인생에 중요한 국면을 제공합니다. 부정적인 면에서든 긍정적인 면에서든 우리는 그 사건을 겪으며 고인의 삶을 반추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거울에 비추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여태까지 살았던 모습과는 다른,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게 녹록한 일은 아닙니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아버지는 가족들의 인생에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아버지가 죽음이라는 막강한 클라이맥스를 겪으며 인상적인 퇴장을 한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은 가족들은 스스로가 주인공인 제 인생을 계속 살아야 하니까요.

 

<아내의 상자>의 화자는 평범한 아내를 두었지만, 자신의 아내가 점점 미쳐간다고 믿게 됩니다. 여러모로 평범한, 그래서 오히려 특이해 보이는 아내는 자신의 관계를 ‘권력의 도구’로 받아들입니다. 아내의 불임은 모든 인간이 어떤 식으로든 가지고 있는 열등감의 상징처럼 보이고, 그것으로 아내의 삶은 점점 생기를 잃어갑니다. 친절하고 이해심 많은 남편은 옆에 두고 살기엔 좋지만 자신의 근원적인 열등감을 해결하는 데엔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데다 새롭고 도전적인 관계에 몰입하며 자기 식대로 탈출구를 찾으려는 노력도 수포로 끝나죠. 어떻게 보면 자신의 삶을 살아내려고 노력하는 아내는 결국 자신 같은 사람들을 위한 ‘시설’에 수용됨으로 남편을 ‘저버립니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만난 ‘늘씬한 포장도로’는 그가 곧 자신의 아내를 잊을 거란 암시로 보입니다. 작품 속 뉴스로 인용되는 공격적인 암컷 초파리에게서 발견됐다는 돌연변이 유전자의 이름이 ‘불만’인 것도 의미심장하고요.

 

<태양의 서커스>에는 실직의 여파로 삶의 적극성을 잃어버린 남자가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삶의 중심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외부의 자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중간을 선택하고 있지요. 이 남자는 작가가 그러고 있는 것처럼 주변의 인물들과 그들의 삶을 관조합니다. ‘길모퉁이를 서성이다 후다닥 사라지는 외로운 존재’라는 마지막의 한 문장은 주인공이 주변의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얻어낸 결론이며, 그것은 삶의 본질에 대한 작가 나름의 정의인 것 같이 들립니다.

 

어쩌면 많은 불행의 원인은 ‘불만’이 아니라, 과잉, 혹은 그것을 만족과 행복이라 여기는 착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내가 살았던 집>은 독자들로 하여금 주제를 곰곰이 되씹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한 남자에 대한 주인공의 순애보처럼 읽히기도 하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죽음에 대한 사론(私論)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상속의 주제와 얼핏 상충하는 부분이 있어 흥미롭지요.

현재의 우리는 무수한 조상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를 살고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관계를 맺을 미래의 많은 생명들과도 이어져 있고요. 우리의 삶을 거의 불멸에 가까운 영원한 존재로 보고 있는 <상속>과는 달리, 이 작품 속에서의 삶은 육체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반된 주제는 아이러닉하지만 작가는 결국 ‘삶은 곧 육체’라는 믿음을 부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육체가 사라진 후에도 우리의 삶은 영속(永續)되는 거죠.

 

무척 노스탤직한 감상을 남기는 <내 고향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 않는다>는 두 소년이 번갈아 화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산(家産)이 기움과 동시에 가장(家長)의 상실, 가족 붕괴를 경험한 말더듬이 소년 영준은 가정 경제를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한 엄마를 등지고 일반적인 의미의 ‘불량소년’에게 의지합니다. 비행(非行)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력을 끼치며 위태로운 우정을 쌓아가는 두 소년의 모습은 기성세대들의 모순에 반항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닮아가는 우리네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삶과 세상을 마주한 두 소년은 그 속절없음으로 무기력해 보이지만 서로에 대한 그리움(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르는)으로 단조롭고 보잘 것 없는 삶도 빛날 수 있다는 기대를 전달하죠.

 

작품을 떠나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집엔 곳곳에 암호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암호 찾기 놀이 같아요. 발견한 그 힌트들을 한데 모아 놓으면 어떤 문장이 만들어지는데 그것은 무슨 경구처럼 들립니다. 이런 ‘놀이’를 작가가 의도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우연치고는 재미있죠. 다른 독자들도 나름의 암호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아마 제가 발견한 것과는 약간 다를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발견한 문장은 바로 이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태어나 세상을 서성대며 외롭게 살다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죽음을 맞는다.’

무척 그럴 듯하게 들리는데, 아마도 삶을 정의하려는 어떤 명언들보다도 그것에 대한 정확한 통찰을 담고 있는 문장 같아요. 그리고 가장 공감하고 있는 것은 ‘아무 흔적도 없이’라는 대목입니다. 무덤가에 핀 할미꽃 한 송이도 과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사족.

이 작품집엔 은희경의 중요한 작품이 두 편이나 실려 있습니다. <아내의 상자>는 이상문학상 수상작이고 <내가 살았던 집>은 한국소설 문학상 수상작이죠. 은희경의 팬들은 벌써 알고 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