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I Walked with a Zombie
5
사탕수수 농장주의 부인을 돌보도록 고용된 간호사 벳시가 서인도 제도에 도착합니다. 농장주인 폴과 배다른 형제인 웨슬리, 그리고 웨슬리의 친모인 랜드 부인이 살고 있는 저택은 크고 넓고 안락하지만 어딘지 음산하죠. 벳시가 돌봐야 할 환자는 폴의 아내인 제시카로, 몇 년 전 열대병을 앓은 후유증으로 숨 쉬고 먹고 자는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의식은 없는, 한 마디로 좀비처럼 보이는 여자입니다. 그러다가 벳시는 제시카를 사이에 두고 있었던 의붓형제들 간의 갈등을 눈치 채고, 폴을 사랑하게 되며,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제시카를 꼭 회복시키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제시카에 얽힌 가족들의 음모와 마주치게 됩니다.
1940년대, RKO 스튜디오를 무대로 인상적인 호러 영화를 만들어냈던 제작자 발 루튼(Val Lewton)과 감독 자끄 뚜르뇌(Jacques Tourneur) 콤비의 영화입니다. 제작자로서 발 루튼의 필모그라피 안엔 모파상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Mademoiselle Fifi’ 같은 드라마가 있기는 하지만 고전적인 호러 영화로 더 유명하지요. 이후에 발 루튼은 로버트 와이즈나 마크 롭슨 같은 감독들과도 좋은 영화들을 제작하기도 했지만, 자크 뚜르뇌와 함께 ‘캣 피플(Cat People)’ 같은 명작들을 뽑아냈던 시절이 아마도 그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Zombie)는 요즘의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것과는 완연히 다릅니다. 오히려 부두(Voodoo) 어쩌고, 저쩌고로 시작되는 사전적인 의미에 가깝죠. 산 사람을 뜯어 먹고, 전염이 되며, 뇌를 파괴해야만 퇴치되는 좀비의 이미지는, 사실 조지 로메로의 68년 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에서 시작된 거죠.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오늘날 영화 팬들의 관심을 끌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의 원래 의도가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Jane Eyre)’의 호러 각색이니, 전형적인 고딕 로망 미스터리 스토리인 건 당연할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호러보다 드라마로서 접근하는 것이 가장 좋은 감상법인 것 같아요. 물론 흑백 호러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인 빛과 어둠의 대비, 그림자, 그늘을 이용한 화면 분할 같은 장치들이 제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과 가장 큰 재미는 인물들 간의 관계와 갈등의 표현, 오고가는 감정들의 디테일들 안에 있습니다.
이 영화는 또한 캐릭터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화면에 보이지만 전혀 정보가 없는 제시카는 베일에 싸인 여자입니다. 그 여자에 대한 비밀을 푸는 것이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고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지요.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형제 간에 갈등을 일으킨 그 여자는 성녀일까요, 악녀일까요. 이야기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이런 미스터리에 접근하게 되면 이 영화의 매력은 더욱 커집니다. 그런 이야기 구조는 다프네 뒤 모리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히치콕의 40년 作 ‘레베카(Rebecca)’나 맨키위츠의 59년 作 ‘지난여름 갑자기(Suddenly, Last Summer)’ 같은 영화들과 닮아 있죠. 이야기의 모든 핵심은 죽은 사람(이 영화의 경우 죽었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영향 아래 있으며, 정작 주인공은 그 비밀을 파헤치는 탐정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호러 영화답게 엔딩에 대해서는 열려 있습니다. 어떻게든 이야기는 끝을 맺지만 모든 의문을 완벽하게 풀어주지는 않죠.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결말은 약간 김이 빠진 느낌이에요.
형식과는 별개로, 이야기 안에는 아기자기하고 의미심장한 요소들이 참 많습니다. 현대 의학으로 대변되는 ‘이성’과 토착 신앙인 부두교로 대변되는 ‘감성’의 대립, 부두 의식을 미신이라고 치부하면서 그것을 이용하고 있는 의사의 아이러니, 아이가 태어나면 온 가족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죽음 앞에선 박장대소를 한다는 서인도 제도의 풍습, 날치는 천적이 무서워 수면 위를 날아오르고, 밤바다의 반짝임은 죽은 생물체가 썩어가면서 내는 빛에 기인한다는 폴과 벳시의 대사 등등은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주는 도구인 동시에,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인 암울한 사랑의 모습과 그 비참한 결말, 나아가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의 단초까지 제공해줍니다. 영화의 ‘좀비’란 소재 자체가 삶과 죽음, 두 영역을 아우르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좀비’라는 소재가 무척 철학적이기도 합니다. 요즘 소비되는 좀비의 변질된 이미지는 다르지만요.
이 영화가 만들어진 43년이래로, 이 영화는 호러를 목표로, 호러를 의식하고, 호러로 만들어지고, 호러로 선전되고, 호러로 관람됐던 영화입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반드시 호러 영화라는 이름표를 달고 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인 에어를 호러 소설이라고 여기는, 저 같은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게 감상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사족이지만, 러닝 타임이 한 시간 겨우 넘습니다. 발 루튼이 RKO 스튜디오와 계약할 때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는 군요. 그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첫째, 영화 한 편 당 제작비가 15만 불(당시로선 무척 저예산)을 넘지 않을 것,
둘째, 영화 한 편 당 러닝 타임이 75분을 넘지 않을 것,
셋째, 모든 영화의 제목은 슈퍼바이저가 지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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