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희생양_대프니 뒤 모리에-리뷰

달콤한 쿠키 2017. 1. 19. 06:43


주인공인 ‘존’은 가족도 친구도, 삶의 ‘목적이나 지향점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한량에 막 사는 사람이냐. 그것은 아닙니다. 존은 영국의 대학에서 프랑스 역사를 가르치고 있어요.


‘고독과 죽음, 빈 껍질 같은 인생, 삶의 불확실성, 메말라버린 감정’에 시달리던 존은 휴가차 들른 프랑스 시골의 어느 술집에서 ‘장 드게(Jean De Gué)’란 남자를 만납니다. 첫 인사에 술잔이 오가고 존은 장 드게에게서 특별한 매력을 느낍니다. 자신에겐 없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지닌 남자라는 점, 그리고 두 남자의 외모가 서로를 닮았다는 점에서요. 특히 거의 똑같은 얼굴은 존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거울 같은 존재’와 금세 친구가 된 존은 술에 취하고 다음날 아침, 미리 잡아놓은 호텔에서 눈을 뜨는데,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장 드게로 오인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장 드게의 악의인지, 아니면 치기어린 장난인지 구분도 하지 못한 채, 존은 장 드게의 삶 속으로 내몰립니다.




똑같은 외모의 두 인물이 서로의 신분을 바꾸고 서로의 삶을 산다는 이야기는 (그 전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한에서) ‘마크 트웨인’ 이래로 꾸준히 반복되는 익숙한 플롯입니다. 마크 트웨인이 그의 작품 <왕자와 거지>를 통해 당시 권력의 남용과 불합리한 정치를 고발하고 그에 희생되는 민초들의 고난을 드러내며 당대의 사회에 대한 의문을 드러냈다면, ‘대프니 뒤 모리에(Daphne Du Maurier)’의 이 소설은 보다 개인의 삶에 집중합니다. 작가는 장 드게의 세계에 던져진 존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타인에 대한 한 개인의 영향력의 한계 같은 주제를 담아냅니다.


낯선 환경에 던져진 별로 보잘 것 없는 주인공이 이름만 남은 모호한 실체의 그림자 같은 존재 아래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도전을 받는다는 플롯은, 이 작품보다 이십여 년 전에 나온 작가의 대표작, <레베카(Rebecca)>의 반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레베카>가 타인에 대한 탐구가 목적이었다면, 이 작품의 탐구 대상은 바로 ‘나’입니다.


이야기가 진행하면서 장 드게는 ‘생 질(St. Gilles)’이라는 지방의 영주였고 귀족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하지만 장이 책임자로 있는 유리공장은 곤란한 재정 문제로 거의 파산 직전이었고, 장은 아내와 어린 딸에게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주지 않으면서 동생의 아내와 불륜 관계를 맺는 등 사생활은 막장이었죠. 존은 그런 사실에 아연실색하지만 장 드게의 주변을 서서히 변화시키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존은 대체 왜 그랬을까요? 왜 자신이 장이 아니라는 것을 비밀로 하고 타인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던 걸까요.

그건 아마도 존의 이기심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이기심은 그의 주변(장 드게의 주변)을 긍정과 희망으로 채우려는 노력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느닷없이 생긴 살피고 지켜줘야 할 가족과 고용인들은 ‘관계’에 대한 욕구가 간절했던 존에게 삶에 대한 의미와 생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존은 자신의 정체가 거짓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고민하면서도 진짜 장 드게로부터 비롯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바로잡으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존은 많은 난관에 마주치게 되지만 자신의 의지, 혹은 운과 우연에 의해 그것들을 극복합니다. 특히 운이 좋았다는 건 미리 밝혀두고 싶어요.


장 드게로 오인된 존이 가장 먼저 마주친 문제는 ‘자신이 맡은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호기심입니다. 주인공의 이런 호기심은 ‘장 드게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의문으로, 결국 ‘그러면 나는 누구일까’라는 고민으로 확장됩니다.




1957년 작인 이 작품은 멜로드라마적인 소소한 재미와 진중한 주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고조되는 긴장감이 탁월한 수작입니다.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 널리 읽히는 작품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는 아마도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기시감’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이 소설의 결말이 독자들을 썩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고요.


개인적으로 결말은 약간 불만족스럽습니다. 제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는 그런 엔딩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희생양(the Scapegoat)’이라는 제목은 안성맞춤이었고 오히려 그래서 여운이 더욱 오래 남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래서 (본인의 감상에도 불구하고) 적절하고 타당한 맺음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생 질’의 삶에서 존은 완전한 타인이었고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초대를 받고 비밀리에 잠깐 머문 손님에 불과합니다. 낯선 타인이 우리의 삶을 쥐락펴락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타인의 영향력은 그것이 아무리 긍정적이라도 그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요. 우리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필 여지는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남의 손에 그것을 맡길 순 없는 거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이 삶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니까요.



이 작품은 발표된 이래, 여러 차례 극장용 장편 영화와 TV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드라마의 요소들도 그 재미가 쏠쏠하니, TV 미니시리즈 정도로 각색해도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오겠다는 생각을 읽으면서 했습니다.


<현대문학>에서 번역, 출간한 대프니 뒤 모리에의 (단편집을 포함한) 네 번째 작품입니다. 작가의 대표작이 여럿 있는데, 그 작품들도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도서 정보는 여기(클릭)로 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