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빨간 집_마크 해던-리뷰

달콤한 쿠키 2017. 1. 15. 03:28


‘가족’이란 단어에 대해 우리는 일종의 환상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한한 사랑과 위로를 기대할 수 있고 세상 누구보다 더 친밀하며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품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죠. 이것은 TV의 일일 드라마 등에서 자주 써먹는 테마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갖는 기대는 어느 정도 미디어가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더 골똘히 생각해보면, ‘가족이라서’ 오히려 더 멀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밀이 많고 또래 친구들이 더 좋았던 십대 시절을 떠올려 보세요. 그 시기의 우리들에게 가족들이란 참견쟁이에 잔소리꾼인, 그저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에 지나지 않았지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비밀이나 심각한 고민을 가족들에게 털어놓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는 그 관계에서 우리는 왜 진실한 속내를 내보이는 것에 주춤거리게 되는 걸까요. 

그 이유 또한 가족들이 물리적으로 너무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은 나를 모르고 나도 그들을 모르니, 서로의 존재와 서로의 이야기는 금세 잊힐 겁니다. 얘가 어떻네, 쟤가 그렇네, 이런 말이 나올 새가 없는 거죠. 다시 볼 기회나 필요가 거의 없을 테니까요.



‘마크 해던 (Mark Haddon)’의 <빨간 집 (the Red House)>에 나오는 가족도 그런 모습입니다. 구성원 각자 모두에겐 나름 심각한 고민과 비밀이 있지만 서로에게 숨기고 함구하며 아닌 척 합니다. 그 사이에서 생긴 갈등은 더 큰 오해를 만들고 괜찮은 척, 자신의 가증에 지쳐 용기를 내보지만 상대방의 빈축만 사고 오해의 골을 더 깊게 파는 결과만 만들 뿐입니다. TV의 일일드라마라면 가족들 모두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면서 행복한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에서 끝났겠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팔일 간의 가족 여행에서 이들이 얻은 것은 동정에 가까운 애정, 오해를 겨우 벗어난 이해, 그리고 아주 약간의 친밀감뿐이죠.


여덟 명의 인물들의 시점을 바쁘게 오가며 진행되는 이 작품은 그 심리 묘사가 일품입니다. 다양한 감정들로 촘촘히 엮여 있는 인물들의 내면은 극적인 사건 없이도 작품에 충분한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바로 전에 읽은 ‘앤 타일러 (Anne Tyler)’의 <파란 실타래 (a Spool of Blue Thread)>와 비교를 한다면, 이 작품은 상당히 비극적입니다. 인물들의 고민은 더 무겁고 현실은 더 냉정하며 상황은 더 삭막해요. ‘데이지’는 커밍아웃 이후 그 누구에게도(부모님에게조차) 진심어린, 용기가 되는 말을 듣지 못합니다. 그러기엔 ‘앤젤라’와 ‘도미니크’의 고민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죠. 작품 속 인물들이 맞는 엔딩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살아간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실망도 없습니다. 가족에게 기대할 수 있는 정도도 그 한계가 있죠. 작가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결국 혼자 살아가는 것.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엔 큰 용기가 필요하며, 그 용기는 누구도 아닌 자신만 일궈낼 수 있다는 것. 넘어져도 자신이 추슬러야 하고 아프거나 상처를 입어도 결국 자신만이 그 고통을 돌볼 수 있다는 거죠. 모질게 들리지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런 형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마음을 써주는 사람들은 역시 가족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밉든 곱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사랑하든 증오하든, 그들은 우리들의 가족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에겐 가족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의 마법을 믿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환상의 마법’은 어리석게 들리지만 ‘마법의 환상’은 그럴싸하게 들리지 않나요. 


도서 정보는 여기로 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