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마크하임 (단편)_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리뷰

달콤한 쿠키 2017. 2. 7. 06:17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오후, ‘마크하임(Markheim)’은 골동품 상인을 죽입니다. 그리고 양심의 무게에 못 이겨 자수를 합니다.


미스터리 작품이 아니니, 동기나 범행 수법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돈이 필요했다는 동기는 막연하고 살인 자체는 시시합니다. 대신에 작가는 살인을 행하고 난 후, 범죄자가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양심의 소리’에 집중합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평생 천착해온 주제 중의 하나는 ‘악(惡)’ 그 자체입니다. ‘선(善)과 악의 대립’을 보여주며 단순히 도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은 아니었던 거죠. 이 작품이나 작가의 대표작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Dr. Jekyll & Mr. Hyde>, 그리고 <시체 도둑(the Body Snatcher)> 같은 작품들에서 보여주듯이 작가가 독자들에게 어필되기 바랐던 것은 ‘악한 존재’로서의 인간이었습니다. 작가는 ‘지킬’이나 이 작품의 ‘방문객’을 인간의 악한 면에 따라붙는 부산물이나 그림자처럼 다룹니다. 작가는 인간의 ‘선함’을 악을 설명하고 보여주고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삼습니다.


작가는 인간의 악이란 선한 면과 함께, 한 개인의 내면에 공존하는 것이며, 그것들을 따로 분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킬 박사는 정체불명의 ‘약’을 통해 자신으로부터 ‘하이드 씨’를 분리해냈으며, 자신이 저지른 범죄 현장에서 느끼는 공포와 외로움은 마크하임으로 하여금 ‘선하고 양심적인 자아’와 조우하게 만듭니다.


작품들 기저에서 ‘인간은 원래 악한 존재’라는 작가의 강한 신념도 엿보입니다. 하이드 씨가 순수한 악이었다면, 지킬 박사는 선과 악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모순에 가득 찬 존재였고, 이 작품의 마크하임 역시 자신의 범죄를 스스로 고백하기까지엔 ‘양심적 자아’의 설득이 필요했으니까요.


범죄자의 흔들리는 양심을 담아낸 이 작품은, 단순하지만 ‘특유의 맛’이 있습니다. 폐쇄된 공간과 어둠, 유령처럼 춤추는 촛불, 다양한 각도에서 범죄자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들 같은 소재들은 그 시대에 유행했던 ‘고딕(Gothic) 소설’의 매력이 넘치고, 그 지옥 같은 공간 안에서 마크하임이 겪는 두려움과 고뇌는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비교적 긴 묘사와 장황한 대화는 고루한 면도 있으나 비장함이 넘쳐흐르고, 무엇보다 이 작품은 여러모로 작가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간을 탐구한 결과물로 보입니다.




인간이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하는 질문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그 질문은 아마 인간이 지능을 갖추기 훨씬 이전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역사는 범죄의 역사”라는 ‘콜린 윌슨’의 말을 무시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인류는 범죄와 항상 함께(가장 쉬운 예로 ‘전쟁’)였습니다. 자신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고 그들을 쫓아내거나 죽이고 포로로 삼는 일은 아직까지 우리의 뉴스 지면을 장식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악일 것입니다. 인간이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으며, 앞으로 더 잘 살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려야 할까요.




사족.


연극적인 분위기가 강해서 검색을 해보니, 이 작품은 여러 차례 라디오드라마, TV드라마 등으로 각색됐다는군요. 작년엔 이탈리아의 어떤 작곡가가 이 작품에 영감을 받은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고도 하고요.


또 사족.


쓰인 것은 이 작품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보다 먼저라고 합니다. 아마 ‘세기적인 걸작’을 위한 습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작품이 이렇게 '고퀄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