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인 ‘현수빈’은 몇 권의 자기 계발서를 쓴 저자이면서 강사, 그리고 칼럼 등을 신문에 기고하는 저술가입니다. 나름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죠.
수빈이 쓰는 칼럼은 1984년, 본인이 여덟 살 때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라일락 하우스’라는 다가구 주택을 배경으로 한 그 시대의 추억담이 목적입니다. ‘그 때를 아시나요’ 하면서 향수를 소비하는 거죠. 어쨌든 수빈의 칼럼은 (작품 안에서) 꽤 인기 있는 모양이어서, 작은 집에 옹기종기 다섯 가구가 모여 살면서 어깨와 엉덩이를 부대끼며 겪었던 일들을 그 시대의 문화들과 함께 재미지게 풀어나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수빈은 칼럼을 연재하면서 좀 더 신빙성 있는 자료들을 모으기 위해 당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함께 살았던 옛 이웃들을 블로그와 SNS를 통해 수소문합니다. 그러던 중, ‘고영두’란 퇴직 경찰이 수빈을 찾아오고, 당시 라일락 하우스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었던 ‘조영달’의 죽음에 의문을 표합니다. 너무 오래 된 일인데다 어렸을 때라 정확하지도 않은 기억 속의 그 죽음에 수빈 역시 뭔가 께름칙한 게 있음을 알게 되죠.
84년 그 곳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작품의 테마는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숨은 걸작, <회상 속의 살인 (Murder in Retrospect)>을 연상케 합니다. ‘과거의 살인’이란 테마는 언제나 저를 흥분시곤 합니다. 범죄 자체의 비밀스러운 양상에 오락가락하고 불분명한 기억이 한 겹 덧씌워진다는 ‘이중의 의문’이란 요소가 무척 매력적이기 때문이죠. 이 작품을 서점에서 접하자마자 바로 구매해서 읽기 시작한 것도 제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두루 갖춘 걸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다지 많이 접하지 않았던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라니, 많이 궁금했던 거죠.
그리고 마침내 다 읽었습니다. 어땠냐고요?
일단 이야기의 진행은 중반까지 매끄러운 편이고 그럭저럭 잘 읽힙니다. 아마도 본인의 취향에 적중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특히 이야기의 주된 배경이 되는 80년대를 저 역시 십대의 나이로 살았던 터라 향수를 자극하는 부분들이 많았고 공감할 여지들이 수두룩해서 ‘아, 맞아, 맞아. 그랬었지. 기억 나.’ 이런 감탄들을 연발하며 읽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에는 정말로 흔했던 ‘연탄가스 중독사’라는 평범한 소재로 한 공간을 공유하던 친숙한 이웃들의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면을 파헤치고 발견하고 캐내는 이야기의 진행도 흥미로웠고요.
또 그리고, 음..... 글쎄요. (긁적긁적) 이쯤에서 이 작품의 장점이라고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는 걸 솔직히 적어야겠습니다. (칭찬할 부분이 의외로 적어서 놀라는 중입니다.)
이야기엔 총 두 건의 살인에 두 명의 살인범이 등장합니다. 과거 조영달의 죽음은 현재 ‘임계숙’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두 죽음은 정말로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범인의 정체는 물론이고 범죄의 목적도, 그 동기도 서로 다르죠.
물론 그런 트릭을 사용한 걸작들은 수두룩합니다. 작가인 ‘송시우’ 역시 그랬을 수도 있어요. ‘레드 헤링(red herring; mis-direction을 위한 장치)’으로서 두 죽음이 서로 연관이 있는 거라 믿게끔 하다가 뒤통수를 치는 거죠. 하지만 작가는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플롯 상의 그런 함정이 없으니 추리소설로서 이 작품은 심심합니다. 독자들로서는 모험에 도전할 기회도 갖질 못하죠. 작가는 좋은 수를 갖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활용하지 않습니다. 추리소설의 묘미를 작가 스스로 제한하고 마는 거죠.
추리소설로서 이 작품은 ‘흐리멍덩’합니다. 전혀 추리소설답지가 않습니다. 범죄와 범죄자가 등장한다고 모두 추리소설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분명한 추리소설입니다. 작가는 그 장르를 목표로 썼고, 출판사 역시 미스터리 시장을 겨냥했으며 독자들 또한 이 작품을 추리소설로 소비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엔 ‘추리’의 요소들이 전무합니다. 두 사람이 탐정 비슷한 역할을 하긴 하는데 모호한 행동으로 일관합니다. 목적이 없어 보여요. 정작 추리소설의 주인공이면서 응당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처럼 보입니다.
주인공인 현수빈도, 그 조역인 고영두도 전혀 추리소설의 주인공처럼 보이질 않습니다. 두 사람은 여느 추리소설의 탐정들처럼 단서를 수집하고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고 실패를 겪지 않습니다. (이거야 말로 추리소설이 들을 수 있는 최악의 악평인데) 주인공의 추리 과정, 추리에 의한 결말의 카타르시스가 없는데 과연 그 작품을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결말에 이르는 과정도 '운'에 의합니다. 주인공들은 그저 넘겨짚고 ‘통밥’을 굴릴 뿐이죠.
그런 행동의 부재, 역할의 실종, 장르적 쾌감의 결여는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막판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범인 하나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조역에게 주절주절 자백을 해버리고, 그나마 조영달에 대한 살해 혐의를 추궁하는 고영두의 추리는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닌 짐작과 좋은 운의 결과라, 정말로 ‘뒤로 가다가 개구리 밟은 격’이에요.
가장 나쁜 건 따로 있습니다. 그 동안 주인공 행세를 해 온 현수빈은 엔딩에서 하는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인데, 죽 쒀서 개나 준다는 양으로 클라이맥스에서의 역할을 다른 인물들에게 빼앗겨버립니다. 이쯤 되면 주인공이 실종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인가요.
등장인물들이 많은 만큼, 각자의 사연과 전체로서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자 했던 작가의 노력은 가늠이 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복잡합니다. 인물들의 관계와 감정이 그렇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장점이죠. 문제가 되는 것은 사족이 많다는 건데, 사실 그것도 단점은 아닙니다.
가장 근원적인 단점은 작가가 그것들을, 많은 인물, 소소하지만 중요한 사건들, 얽히고설킨 그 다채로운 감정들, 수많은 비밀들과 각양각색의 욕망들, 그것들을 한데 모아 전체로서의 큰 그림을 그려내는 것에 실패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무척 산만합니다. 각각의 사연들은 하나로 뭉쳐져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고 각자 따로 놀아요. 인물이 많고 사건이 많고 그 사연들이 많을수록 그것들을 하나로 엮는 구심점이 필요한데, 작가는 그것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요. 작품의 산만함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심해집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로는 플롯들을 엮는 그 중심 역할을 ‘80년대’라는 소재가 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 시절을 중요한 패로 사용하기로 작정했다면 작가는 그것을 중요한 위치에 두고 써먹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결과물로서의 이 작품은, 작가가 무진장 힘을 쏟았을 법한 80년대라는 소재는 그냥 소재로, 배경으로 주저앉습니다. 그냥 ‘추억거리’, ‘감성팔이’ 소재 정도로 소비되고 말죠. 아까워요.
그렇게 되면 작품에 대한 모든 불만은 ‘왜 하필 80년대였을까’라는 질문으로 귀착됩니다. 사실에 가장 근접할 거라 상상되는 대답은 작가가 그 시절을 직접 살아냈기 때문일 겁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소재를 쓰는 게 가장 쉬우니까요. 하지만 작가는 그 이상은 해내질 못합니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80년대는 옛날 앨범 속의 사진을 휘리릭, 성의 없이 넘겨다보는 수준입니다. 작가는 작품의 곳곳에 80년대의 아이코닉(iconic)한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왜 배경이 80년대여야 했는지’에 대한 필연적인 이유와 그 명확한 대답을, 작가는 들려주질 못하고 있습니다.
80년대를 살아보지 못한 그 이후 세대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읽을까요. 저보다 젊은 독자들이 작품에 과연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 작품은 그 시절의 특이성을 지니면서도 시대를 아우르고 꿰뚫는 보편성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 작품은 좋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장르와 세대를 막론한 폭넓은 독자들이 공감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아쉽죠.
이 글을 쓰면서 작품을 되짚어 보니,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것을 알겠습니다. 잘 읽힌다고, 흥미롭게 읽었다고 빈약한 작품이 면죄부를 얻는 것은 아니죠.
‘등장인물과 배경이네?’ 라는 ‘우돌’의 농담이 민망할 정도로 현수빈의 칼럼의 기능이 너무 노골적이고 편의적이라는 점(우돌은 칼럼에 실으라면서 그 집의 평면도를 직접 그려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말 다했죠), 평면적이고 전형적인 인물(특히 건넌방 세 언니), 어색하고 오글거리는 대화, 작위적인 단서와 실마리 등등에 대해서는 따로 적지 않겠습니다.
작가의 데뷔작은 아닌 것 같고, 이 작품 이전에 몇 편의 작품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미숙함이 많이 드러나는 것 또한 단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장르 소설, 특히 이런 종류의 ‘후던잇(Whodunit)’은 작가에게 매우 노련한 기교를 요구합니다. 출판을 염두에 둔 작품을 습작처럼 취급하는 것은 작가의 프로 정신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최악의 경험은 아니었으니, 작가의 차기작을 조심스레 기다려 봅니다.
사족
‘자기 개발(開發)서’인지, ‘자기 계발(啓發)서’인지 확실하게 정리가 안 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계발’이라고 되어 있고, 인터넷 곳곳에선 ‘개발’이란 말이 더 흔히 쓰이고 있고요. 사전을 뒤져보니, 두 단어 모두 뜻이 통하는 것 같으니,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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