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파인애플 스트리트_제니 잭슨

달콤한 쿠키 2024. 8. 21. 05:37

 

열성적인 Party Goer이면서 사치스러운 취향을 가진 것과는 별도로 연애에 별로 소질이 없는 조지애나는 자선사업에 욕망만 있고 능력은 없는 부잣집 딸이다. 자신의 일에 대해 있어보이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열의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던 중, 직장 동료인 브래디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데, 알고 보니 유부남. 사실을 깨달은 순간 발을 빼야 되는데 사랑에 그게 어디 쉽나. 그러다가 브래디가 비행기 사고로 죽고 조지애나는 엄청난 슬픔에 빠진다. 브래디의 열정과 포부에 공감된 조지애나는 결국 본격적으로 자선사업에 뛰어들 결심을 한다.

 

조지애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인 달리는 전업주부다. 한국계 이민자와 결혼하는 대가로 유산을 포기하고 쓸모있는 학위를 쓰레기로 만드는 데에 후회가 별로 없었으나 신랑이 직장 내의 따돌림 비슷한 문제로 희생양이 되어 해고된 이후로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게 된다. 달리는 남편의 실직을 가족들에게 비밀로 부치려고 한다.

 

사샤는 달리의 남동생이고 조지애나의 오빠인 코드와 결혼한다. 두 자매에겐 이방인인 셈. 나름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고 자신만의 작은 디자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샤는 시댁의 막대한 부유함에 별로 큰 의미를 두려하지 않는다.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시댁 식구들에게 나름 노력하던 사샤는 어느 날 두 시누이들이 자신에게 꽃뱀(Gold Digger)’이란 별명을 붙이고 지들끼리 시시덕거리는 것을 듣고는 좌절한다.

 

이야기는 각 장(chapter)마다 세 여자의 시점을 오고가는데 독자들은 세 여자의 머릿속을 드나들면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한다. 인물들보다 이야기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긴장이 쌓인다. 화자를 바꿔가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건 그것만으로 캐릭터들의 성격을 드러내고 차별화하는 방법일 수 있다. 인물마다의 관점을 알게 함으로서 독자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작가로서 다소 안일한 방법일 수 있으나 독자로서는 겪을 게 많다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니다.

 

권미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작가가 고백하기를,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려는 부잣집 아이들(The Rich Kids Who Want To Tear Down Capitalism이란 뉴욕타임즈기사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라고 한다. 기둥 아이디어가 된 기사 제목만 보면, 대단하기만 하고 현실 가망성은 거의 없는 케케묵은 도덕극 같은 인상을 주지만 작가는 거기에다가 우당탕탕+아기자기한 가족드라마의 분위기에 여자들의 기싸움, 로맨틱한 연애 같은 칙 릿(Chic Lit)’의 요소들을 두루뭉술하게 버무려 자존연대’, ‘포용’, ‘협동’, ‘나눔을 키워드로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결말도 그냥저냥 평범하고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 번 읽고 쉽게 잊힐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인물들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매력이 넘치며 그들간의 티키타카도 좋다. 눈에 띄는 악역도 없는데 긴장감이 좋아 책장이 잘 넘어간다. ‘금수저 집안이 나오는데 그들을 지나치게 타자화하지 않고 (돈만 많을 뿐) 평범한 사람들로 그린 방식도 좋다. 지나치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외치지 않는 것도 좋다. 영미권에서는 실제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20~30대의 신흥 부자들이 자선사업에 뛰어들거나 제3세계의 자립을 위해 지갑을 여는 일이 많다고 하니, 막연하고 허황된 낙관으로 쓰인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바로 전에 읽은 김약국의 딸들에서 김약국이 독립운동 자금을 대지 않은 걸 보면, 주변이 평화로울 때 마음이 좀 더 관대해진다는(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는) 게 사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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