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타주 (2013)
Montage
8.5
글쓴이 평점
15년 전 어린이 유괴 살해 사건이 일어났고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으며 그 사건의 공소시효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당시 살해된 아이(서진)의 엄마는 아직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당시 담당 형사였던 오형사는 그 사건에 일말의 책임을 느끼지요. 공소시효를 단 5일 앞둔 시점에서 두 사람은 범인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하지만 시간이 너무나 없어요. 그리고 과거의 끔찍한 사건이 되풀이 됩니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크게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일단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정의’에 대한 주제도 좋고, 그것이 실현되는 과정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나름 설득력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믿음직한 기분이 듭니다. 어떤 식으로든 죄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거죠. 현실과는 동떨어진 딴세상 얘기 같지만 그런 믿음과 노력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이런 묵직한 주제로 영화는 감동적인 드라마가 되기도, 뜻밖의 결말로 관객의 허를 찌르는 미스터리 영화가 되기도 합니다. 관객들은 자신의 취향대로 영화를 즐길 수가 있지요.
영화의 초반은 무척 매력적입니다. 관객들을 한눈에 확 사로잡아요. 공소시효 5일 전에서 영화가 시작되면 쏜살같은 속도감을 자랑합니다. 낭비되는 장면도 없고 전달하는 정보도 정확합니다. 군더더기가 없어요. 공소시효라는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시작되는 도입부는 보고 있으면 클라이맥스 못지않은 긴장감을 느끼죠. 하지만 공소시효를 지나면서 이야기는 그 속도를 잃습니다. 참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 분명한 이유가 과거의 사건을 보여주는 플래시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간 중간 나오는 과거 장면은 이야기의 흐름과 관객의 몰입을 방해합니다. 그 방식도 대부분 등장인물들이 설명하는 식이라 더 그렇죠.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바로 그 점입니다. 과거의 서진이 사건은 그렇게 특별한 점이 없어요. 그건 사건을 재구성하는 의미도 아니고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 이런 식이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에 힘을 뺀 이유는 아마 캐스팅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엄정화가 주연이니 연기할 부분이 많아야 되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주연 배우에게 연기 거리를 많이 주고 싶었다고 쳐도, 과거 사건에 매달리는 대신 차라리 수사를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서진이 엄마의 모습을 더 물고 늘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편이 더욱 흥미진진해 보이니까요.
말이 나온 김에 설명에 관해서. 이 영화는 설명이 참 많습니다. 과거 장면 뿐 아니라 수사 장면도 그래요. 영화가 범죄를 다루고 있으니 수사 장면이 비교적 비중 있게 다뤄지는데,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을 위한 배려라고는 해도 ‘지나치게’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장면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전직 국과수 음성분석가 선배와 오형사가 테이프의 목소리를 분석하는 장면은 그냥 지루합니다.
그런 ‘설명’이 많은 덕에 관객들의 감정은 끊기고 배우들의 연기는 종종 어색해집니다. 문어체의 대사들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그런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저 사람들은 지금 돈 받고 연기하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절로 드는 거죠.
과거에 힘을 쏟느라 영화가 놓친 부분들도 많이 보입니다. 중요한 디테일들이 많이 간과되었어요. 무엇보다 현재의 피해자인 ‘봄이’의 가족들을 보여주는 것에 영화는 무척 게을러요. 게다가 현재 사건에서 ‘사라진 돈 가방’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더군요. 관객으로서 무척 놀랐습니다.
현재의 사건은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중요하달 수 있죠. 현재의 ‘봄이’ 사건과 그 가족들을 충실하고 꼼꼼하게 다루었다면 과거 사건을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고 영화의 긴장감이 지금보다는 나아졌을 테니까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편집을 이용한 트릭입니다. 시간 차이를 이용한 작은 속임수지만 재치 있고 영리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사건의 전말을 보는 것을 어렵게 만들지요. 관객들을 속이기 위한 ‘red herring’이지만 그것에 대한 힌트는 충분합니다. 결정적으로 오형사가 무시한 서진이 엄마의 음성 메시지에 관한 장면들을 잘 살펴보세요. 그 덕에 이 영화는 미스터리 플롯이 갖는 추리의 쾌감을 주죠. 엔딩 즈음에 보여주는 반전도 아주 효과적이고요.
영화적인 목소리도 좋습니다. 영화는 ‘죄악’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응징되어야 마땅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아요. 공소시효라는 법적인 장치에 대해서도 솔직한 의문을 던지죠. ‘신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돌지만 모든 곡식을 아주 곱게 빻는다’라는 문구가 생각나요. 어디서 읽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요.
사족.
요즘, ‘법 제도’에 도전하거나 의문을 던지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유행일까요. 아니면 사회적인 요구 때문에? 또한 궁금한 것이,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의도가 정의에 대한 ‘믿음’ 때문일까요. 아니면 정의에 대한 ‘회의’ 때문일까요.
또 사족.
‘과거의 죄는 긴 그림자를 남긴다’는 문구는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문구에요. 이 역시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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