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대온실 수리 보고서_김금희-리뷰

달콤한 쿠키 2025. 4. 27. 06:39

 

The moment of the Rose and the moment of the Yew Tree

are of equal duration.

 

장미의 시간과 주목의 시간은 같다.

 

-T. S. 엘리엇

 

 

이 작품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랬다. ‘김금희가 이런 작품도 쓸 수 있구나.

김금희의 재발견이랄까. 그냥 그런, 흔한 작가였는 줄 알았는데, 그 역량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일단 스케일이 크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대에 다양한 인물, 다양한 사건을 배치해 사슬을 엮듯이 촘촘한 서사를 엮어낸다. 과거의 사건에 주력하지만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결국은 미래를 지향하는 태도도 좋았다. 과거의 상처를 대범하게 마주하는 용기, 그 과정에서의 화해와 관용, 그 경험을 발판 삼은 성장과 성숙, 치유를 노리는 의도가 좋았다.

 

성격이 굉장히 복합적인데, 역사물이면서 성장드라마, 로맨스까지 아우른다. 다소 어설프긴 해도 미스터리의 장르적 쾌감까지 갖춘 걸 보면 다양한 취향의 독자들을 끌어들이려는 작가의 욕심도 보인다. (사실 꽤 성공하긴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재미있다는 사실. 이게 소설이라는 읽을 거리의 본질이고 가장 큰 미덕이지 않을까.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들이 언제나 흐른다(403)’는 말은 대미를 장식하기에 적당한 말처럼 보인다. 나의 역사와 현재가 분명히 존재하듯, 타인의 삶, 과거 무명씨들의 삶도 그 길이와 밀도는 다를지라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너의 삶이 힘들겠지만 우리 모두 그렇다는, 일말의 위안을 건네기 위해 작가는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닐까. 여름 한 철 살기 위해 칠 년을 땅 속에서 기다린 매미의 삶을 인간이 동정하거나 하찮게 여길 수 있을까.

아름다움과 향기에 칭송받고 주목받는 장미의 삶과 흔하고 특이할 것 없어 홀대받는 주목나무의 삶은 각자 나름의 의미와 무게를 갖는다고 노래한 T. S. 엘리엇의 마음은 마리코 할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족이지만, 책 말미에 실린,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가 참고한 문헌들 목록을 보면 정말이지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야기를 한 편 짓고 쓰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고 감탄했다면, 내가 그 일을 너무 쉽게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