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 그대로 어린시절 트라우마에 대해 고찰한다.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의 성격, 타인과의 관계에서 두드러지는 태도, 취향, 관점 등, ‘지금의 나’는 과거의 무엇(대개 부정적인 경험)에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내 안의 울고 있는 어린아이’라는 제목이 참 슬프다. 그 어린아이는 물론 나이고, 어떤 여정을 따라 그 아이를 위로하고 과거를 받아들이고 모종의 상처를 준 사람을 이해하고 그와 화해함으로서 지금의 나를 치유한다는 생각만으로 벌써 한결 나아진 기분이 든다.
‘에고(ego)’나 ‘슈퍼-에고(super-ego)’를 다룬 책들과 주제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많다. 지금의 나, 타인이 보는 나, 겉으로 드러난 나는 트라우마에 대한 방어기제로 필요에 따른 가면을 쓴 ‘사회적인 나’에 불과하다. ‘진정한 나’는 나조차 알지 못 한다. 탐구하여 알아내야 할 미지의 영역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불행과 타인과의 갈등은 대부분 나를 알지 못 함에서 온다. 나의 본질과 내가 아는 나, 남들이 아는 나, 나로 착각하는 나와의 거리감에서 오는 불일치감은 삶의 많은 문제들을 야기한다. 그러므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기만적인 외피를 모두 걷어내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고 있는 유년 시절의 나를 만나 위로를 건네고 화해하고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게 쉬운 일일까. 어린 시절의 상처는 대부분 가족(특히 엄마)이 제공하는 경우가 많고, 용서를 하려면 그에 앞서 그들의 가해를 인정해야 하는데 가족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우리 가족이 내게 그럴 리 없어) 또한 표면에 굳어진 외피는 너무나 단단히 밀착되어 있어서 쉽게 깨지거나 벗어던질 수가 없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성격이 단지 패턴화 된 방어기제적인 행동의 총체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닌가, 요즘 유행하는 ‘성격 유형’이란 게 고작 누군가의 패턴을 범주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닌가. 과연 성격이란 단어가 그저 행동과 반응의 패턴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성격을 알게 된 후, 그것에 맞춰 행동이나 태도를 수정하는 경우는 없을까.
이 책의 성격은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과학(심리학)에 많은 부분 의지하면서도 ‘자기 계발’의 성격을 지닌 워크북처럼 보이기도 하고, 저자는 때때로 영적 지도자(spiritual movement leader) 같은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취지도 좋고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기대 이상의(난 무엇을 기대했던가) 만족감은 얻지 못 했다. 뭔가 말하다 만 느낌,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느낌. 이런 감상은 물론 나의 배경 지식이 짧아서일 것이다. 다소 어려워서 이 책을 완벽히 소화한 것 같지 않다.
'꽃을 읽기_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신들의 땅_천쓰홍-리뷰 (1) | 2025.04.27 |
---|---|
버터_유즈키 아사코-리뷰 (0) | 2025.04.27 |
이름 없는 여자들_아나 그루에-리뷰 (0) | 2025.04.27 |
대온실 수리 보고서_김금희-리뷰 (0) | 2025.04.27 |
거짓의 봄_후루타 덴-리뷰 (1) | 2025.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