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버려진 아이_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리뷰

달콤한 쿠키 2025. 4. 28. 19:22

 

<미하엘 콜하스>2013, ‘매즈 미켈슨주연으로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영화의 원작이다. 영화를 볼 땐 단순히 복수극으로 보였는데, 소설로 읽으니 감상이 좀 다르다.

내 권리를 보호해주지 않는 나라에서는 머물고 싶지 않소. 발로 짓밟혀야 한다면 인간이기보다는 차라리 개가 되겠소.

주인공의 이 외침은 작품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 공권력이 더 이상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할 때, 정의 구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가에 대해 작가는 질문한다. 우리의 주인공이 선택한 방법은 사적인 복수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았다. 그것은 정의로운가.

대부분, 복수하는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 등지에서 주인공이 복수를 하느라 행한 폭력에 대해서는 묵인한다. 별로 상관없는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재산을 잃거나 했을 텐데 그건 괜찮은 걸까.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처럼 보인다.

 

<O... 후작 부인>은 요즘에 발표됐다면 대단한 논란을 불러올 작품인데, 성폭력을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작품이 쓰이고 발표된 1800년대엔 묵인됐을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지만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이 작품이 어떻게 읽힐지 상당히 궁금하다.

작품 외적으로 이 작품이 진실을 숨기고 독자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끝까지 읽게 만드는 방법이 눈길을 끈다. 작가가 이 시대에 추리소설을 읽었을 리는 없고, 굉장히 독창적인 방법으로 진상을 숨기고 있는데, 이는 추리소설 장르에서 범인의 알리바이를 교묘하게 위장하거나 생략하는 방법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전개 역시 추리소설의 구조와 비슷하게 흘러가는 건 무척 재미있는 일이다.

 

<칠레의 지진>은 사형 집행을 앞둔 연인을 그리고 안타까워하는 수감자가 지진의 혼란을 틈타 탈출하여 연인을 만나지만 행복도 잠시, 죗값을 치르라는 대중의 고발에 위기에 처하는데 엉뚱하게도 다른 사람이 그 폭력에 희생된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건 알프레드 히치코크감동의 주된 테마인 오인된 남자(the Wrong Man)’가 엿보인다는 사실. 또한 종교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나름의 도덕성을 무기로 죗값을 치르기를 요구하며 마구잡이식 눈먼 폭력을 휘두르는 군중들은 앙리 클루조까마귀(le Corbeau), ‘히치코크하숙인(the Lodger), ‘폴란스키세입자(the Tenant)등의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위기에 처한 애인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는 여자의 이야기인 <산토 도밍고의 약혼>은 한 편의 멜로드라마로 읽힌다. 여인의 주검 앞에서 자살하는 남자의 모습은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을 생각나게 한다.

 

아주 짧은 소품인 <로카르노의 거지 노파>는 어둡고 차가운 귀신 이야기다. 귀신은 친절에 대해선 보답하지 않고 불친절한 사람에게는 보복을 한다. 짧은 분량에 할 얘기만 하는데도 으스스한 감상은 남다르다.

 

파렴치한 양아들의 패륜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버려진 아이>는 막장 드라마 같다. 폭력의 상호성을 고발한 <미하헬 콜하스>나 일방적이고 무분별한 집단성, 익명의 가면을 앞세운 폭력을 고찰한 <칠레의 지진> 같은 작품들과 비교하면 느낌이 사뭇 다르다.

니콜로가 양어머니에게 위협을 가하는 행동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단편, <유언장의 행방 (Wireless)>찰스와 거의 똑같다.

 

<성 세실리아 또는 음악의 힘><결투>는 전설이나 구전 동화 같은 면이 강한데 선과 악의 극렬한 대립, 악이 패배하는 결말, 갈등 해소와 문제 해결 과정에서 개입되는 성령의 힘 등으로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 종교 영화나 전설의 고향같은 시리즈로 만듦 직하다.

 

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의 기억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작가가 태어난 해가 1777년이고 주요 활동 시기가 1800년대라 문장이나 대화가 예스럽고 장황하고 지나치게 친절한 나머지 중언부언한다. 게다가 그 시대 독일 사람들 인명이 도대체 너무나 길고 어려워서 처음엔 적응하기가 힘들었지만 처음의 고비를 넘기면 읽는 데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 이야기마다 매력이 있고 재미있다.

 

작가는 당시 주로 소설, 희곡 등을 발표했고 정기 간행물 발간인으로도 활동했지만 어느 하나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연애에도 소질이 없었던지 평생 외롭게 살다가 드디어 만난 여자가 유부녀. 두 연인은 함께 자살로(당시 작가 나이 34) 생을 마쳤다고.

작가는 근대에 이르러 겨우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18세기 독일 문학의 기수로 추앙받는다고 한다.

작가의 희곡이 거의 대부분 번역되어 있고, 이 책엔 작가가 발표한 모든 단편이 실렸다고 하니 소장 가치도 좋다. 내가 읽은 책세상판은 절판이고, ‘창비의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온 책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수록작은 순서까지 똑같다. 번역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