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루시퍼 이펙트(Lucifer Effect; 필립 짐바르도)_리뷰

달콤한 쿠키 2013. 7. 4. 19:10

 


루시퍼 이펙트

저자
필립 짐바르도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07-11-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tanford Prison Exp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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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포문을 여는 M.C. Escher의 그림 ‘Circle Limit VI’는 이 책의 주제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보기에 따라 천사의 무리로도, 혹은 악마의 무리로도 보이는 이 그림은 인간성의 양면을 잘 드러내주죠.

인간 성격의 어두운 면, 이를테면 폭력성이나 범죄성에 대한 주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지난 달, ‘가스등 이펙트’를 읽으면서 덤으로 알게 된 이 책은 단순히 ‘성선’이나 ‘성악’을 떠나 인간 성격과 행동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저자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의 성격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찰흙과 같아서 긍정적인(밝은, 이를테면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면이든 부정적인(어두운, 예를 들면 폭력성이나 범죄성같은) 면이든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마음속엔 선한 사마리아인과 흉악한 악당이 공존해 있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자극을 통해 선인도 되고 악인도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신문 보도나 TV 뉴스를 통해 흉악범을 접할 때의 흔한 반응은 그 범죄자(혹은 가해자)의 기질을 문제삼는 것으로, 저자는 이런 반응이 오류라고 지적합니다. 범죄자의 개인적인 기질보다는 사회, 문화, 경제적인 상황과 그것을 만들어낸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나쁜 시스템 아래의 나쁜 상황에서는 누구나(심지어 저나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나쁜 행동(심각하게는 범죄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단언하고 있습니다. 물론 죄나 범죄에 대한 무조건적인 면책을 주자는 주장은 아닙니다. 그 범죄를 더 잘 이해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제대로 된 예방책을 강구하기 위해서 그런 분석과 이해는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나쁜 시스템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나쁜 상황을 ‘썩은 상자’라고 말한 저자의 비교가 재미있습니다. 이 사회의 범죄자들을 단순히 ‘썩은 사과’라고 비난하기 보다는 ‘썩은 상자’ 안에 있다면 싱싱한 사과라도 언제든지 썩을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지요.

 

나쁜 시스템은 규칙과 법규, 역할 등을 내세워 상황적 힘을 만들어 내고, 익명성과 탈개인화를 조장하여 개인들로 하여금 개인의 정체성보다 공동의 정체성을 만들어냅니다. 그 ‘공동’이란 집단은 외집단(out-group)의 사람들을 내집단(in-group; 권력이 집중된)으로 끌어들여 덩치불리기에 급급하고 그 과정에서 ‘내집단’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비인간화, 타자화가 생기는 사회적 역학은 폭력과 범죄를 조성하고 방임하기에 충분한 조건이 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나쁜 시스템과 나쁜 상황 속에서 평범하고 일반적으로 선한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행동, 반응적 오류에 대해서도 저자는 고발하고 있습니다. 익명성을 통한 탈개인화, 상대를 자신과 다른 종으로 타자화시켜버리는 비개인화, 집단 동조와 권위,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 등을 저자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난 리뷰에 올린 ‘가스등 이펙트’에서도 저자인 로빈 스턴 박사가 비슷한 경고를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할수록 상대방의 영향력에 노출되기 쉽다’는 경고 말이에요. 버려지는 것, 거부당하는 두려움은 개인의 자발성과 자주성을 잃게 만들어 닻 없이 여행하는,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는 배처럼 만듭니다. 오롯이 혼자 설 수 있고 자신의 행동이나 선택의 완전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 결정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개인은 시스템이나 상황, 타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그것이 우리가 바라며 지향해야 할 ‘완전한 삶’이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저자가 말하는 ‘행동하지 않는 악’에 대한 부분도 재미있습니다. 소극적인 방관자, 혹은 무관심한 행동도 ‘악의 한 형태’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개인의 수줍음에 대해 ‘사회적인 혐오증’이라고 단언한 저자의 주장도 재미있고요. 또한 ‘나쁜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저자가 한 경고도 귀기울일만합니다. 특히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나치게 ‘안보’를 강조하여 국가 구성원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행위는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파시스트적인 세뇌라고 저자는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주제로 마무리됩니다. 평범한 사람도 충분히 악의 영향력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나는 그럴 리 없어’라는 편향적 사고야말로, 스스로를 사악하고 잘못된 시스템 아래 온 몸을 던지는 어리석음의 시작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꽤 분량이 많은 책인데(700여 쪽) 이 책의 1/4 정도는 저자가 스탠포드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로 재직할 때(1971년) 행한 SPE(Stanford Prison Experiment)의 내용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평균적인 대학생의 무리를 일부는 교도관, 일부는 수감자로 나누고 한 모의 교도소 실험이지요. 이 실험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돈을 받고 실험에 참여했을 뿐인 가짜 교도관과 가짜 수감자들이 얼마나 쉽게 잔혹해지거나 그 반대로 얼마나 쉽게 폭력을 받아들이도록 길들여지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소름이 돋을 정도지요. 최면이나 세뇌를 거치지 않아도 그 피실험자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교도소라는 배경(상황)과 관리자(저자)가 만든 교도소 규칙(시스템)이었습니다.

이 실험은 2001년 독일에서 만든 영화 ‘엑스페리먼트(Das Experiment)’의 소재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유명한 영화고 당시 이슈를 만들어낸 영화이기도 했지요.

 

사회심리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일독을 권합니다. 단순히 심리학 서적으로 대하기보다는 이 사회와 나아가 우리 자신들을 이해하는 지침으로 삼는다면 더 좋겠죠.

 

이런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메리칸 크라임(An American Crime; 2007)’, ‘뎀(Ils/Them; 2006)’, 같은 영화들을 참고하세요. 또한 최근에 보게 된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2012)’라는 영화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실제로 일어난(이 책에도 언급된) 사건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