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가스등 이펙트 (+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 +커튼)_리뷰

달콤한 쿠키 2013. 6. 15. 07:44

 


가스등 이펙트

저자
로빈 스턴 지음
출판사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01-10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가스등 이펙트'를 통해 인간관계의 이면을 파헤친 심리서 가스...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저자가 이 책의 제목으로 인용한 ‘가스등(Gaslight)’은 Ingrid Bergman이 주연한 40년대 헐리웃 클래식입니다. 버그만이 연기한 폴라는 의존적이고 나약한 심성의 여자로 음흉한 의도를 갖고 접근한 매력적인 남편 그레고리의 속임수와 끊임없는 암시로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가지요. 영화는 그 시대의 영화답게 권선징악의 결말을 맞지만 인간이 얼마나 암시에 약하고 영향력에 노출되기 쉬운 존재인지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 존재하는, 사람들 사이의 ‘영향력’에 대한 책입니다. 그것도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주는 ‘나쁜 영향력’을 주로 다루죠. 그것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고 자중감을 모호하게 만들어 참된 삶의 목적과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보지 못하도록 판단력과 시야를 흐리게 만드는 위험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상당히 매력적인 주제입니다. 누군가에게 좋든 나쁘든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곧 상대방에 대해 ‘권력’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고, 그 권력이라는 것은 쓰기에 따라 완벽한 안전장치가 될 수도 있지만 무서운 무기가 될 수도 있잖아요.

 

영향력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타인의 영향력에 노출된다는 것은 외부의 자극, 즉 타인의 언행이나 태도 등에 대응하는 감정적, 행동적 반응을 결정하는 개인의 고유한 패턴, 혹은 습관에 따른 것이며, 그 결과가 부정적일 때 스스로 그것을 깨닫고 벗어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이 강하고 옳다는 것을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고 싶은 욕구가 다른 사람의 영향력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함정이며, 나와 상대의 생각이 다를 때 그것을 설득하고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상대의 영향력에 노출시키게 된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나쁜 영향력을 벗어나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언쟁에 휘말리지 말라’는 겁니다. 그 비유대로 ‘사탕을 야채라고 우기는 어린 아이와의 말다툼’은 아무 쓸모도 없는 거죠. 저자는 상대와 시비를 가리는 것보다 자신의 감정에 집중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틀릴 지라도 자신의 감정이 공격당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거죠.

 

빨리 읽히기도 했던 이 책은 꽤 재밌습니다. 읽는 내내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살면서, 이런저런 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가족들과 생활하면서 이게 아닌데, 하면서 어쩔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순간을 종종 만나잖아요. 이 책은 그런 순간의 배후에 있는 미스터리를 꽤 깔끔하게 정리해 줍니다.

 

하지만 영향력이라는 주제에 접근하는 저자의 태도가 약간 일방적인데다 공정하지 않아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일단 책 안의 영향력의 많은 사례들은 대부분 부정적인데다 피해자(gaslightee; 영향력을 받는 사람, 그 반대는 가해자, 즉 gaslighter;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는 대부분 여자들이죠.

 

무엇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저자가 주장하는 ‘상대방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 자체가 다른 의미에서 상대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관계 안에서의 우위를 먼저 점령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거죠. 소수의 병적인 관계인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건강한 관계에서, 영향력이란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닌,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어떤 관계 안에서 그 중의 누군가는 상대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갖기 마련이고요. 제 경험으로는 관계 안에서 서로 동등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 영향을 주거나, 혹은 받거나 그 역할을 서로 돌아가면서 분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 이유는 아마도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임상심리학 박사에 상담가로서의 훌륭한 경력을 갖고 있는 저자는 오랜 상담 경험을 통해 상대방의 영향력에 노출되어 삶이 파괴된 여성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조언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태도’에 대해서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를 떠나 재미있다고 여겨지는 또 다른 부분은 이 책의 기능입니다. 용도가 다양해요. 인간관계론에 근거한 심리학 도서 정도로 접근했던 본인으로서는 아주 다양한 독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은 커뮤니케이션의 좋은 기술에 관한 힌트와 요령을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타인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위해서, 혹은 영향력 행사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저자는 여러 가지 화법과 행동의 요령 등을 제시합니다. 이를테면 반응의 ‘좋은 예’와 ‘나쁜 예’인 거죠. 또한 ‘영향력’을 다양한 측면에서 스스로 관찰하고 진단하고, 나쁜 영향력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저자가 제시한 여러 가지 체크리스트와 방법들을 활용하려는 독자들에겐 워크북의 기능도 할 테고요. 또한 이 책은 ‘완전한 삶’을 위한 철학 도서, 내지는 명상 도서로서도 기능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완전한 삶’이란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 스스로의 이상과 관심을 돌보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다른 책들입니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

저자
한기연 지음
출판사
씨네21북스 | 2012-02-06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가족과의 관계를 올바로 세워 자신의 행복을 지켜라!사랑하지만 벗...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이 책의 화두는 ‘가족 간의 갈등’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과 용서, 이해가 가능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그 밖에서,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거나, 믿고 싶거나, 믿을 수밖에 없거나 믿도록 강요받는 대로,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사랑과 이해, 용서로 똘똘 뭉쳐진 집단이 아니라, 사실은 증오와 이기심, 욕심과 강요, 반발과 투쟁이 들끓는 관계의 집합체라는 생각에 여러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듭니다.

 

‘가스등 이펙트’에서처럼, 결국 이 책 역시 ‘영향력’, 특히 그 결과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가스등 이펙트’의 ‘가족판’인 셈이지요. 가족의 구성원, 특히 부모의 나쁜 영향력 아래에 노출된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한 가정 내의 다소 기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요구와 욕망, 저항과 강요된 순응, 그 틈바구니에서 곪는 갈등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차라리 통쾌한 독서 경험을 전달합니다.

역시 저자는 오랜 기간을 상담 업무에 몸담은 사람으로,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저자의 경험과 많은 상담 사례들을 읽고 있으면, 마치 담 너머 들리는 집안싸움에 귀를 기울이는 듯한 묘한 관음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지요.

 

이 책을 읽어보면, 지금 엄마, 아빠, 혹은 내 형제들과 겪고 있는 갈등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며, 평생을 꿍꿍 앓으면서 견뎌낼 업보가 아니라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이 책의 문제의식은 ‘나쁜 부모’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들도 어쩔 수 없는 피해자인 거고, 옛말에 ‘욕하면서 배운다’고 그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고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결국 각자의 몫이겠지만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저자의 제안과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겠지요.

 

 


커튼

저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출판사
황금가지 | 2004-12-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추리소설계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집이 기존 번역본들에서 발...
가격비교

‘가스등 이펙트’를 읽으며 Agatha Christie의 이 미스터리 소설이 생각났던 이유는,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범죄’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는 아주 특이한 살인 방법이 나오는데, 범인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살인을 저지릅니다. 이른바 ‘영향력’에 의한 살인이지요. 범인은 상대방에게 아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를 교묘하게 조종해서 살인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과장은 있겠지만 영향력의 ‘나쁜 측면’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플롯에 잘 녹여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라는 의문은 크리스티의 능숙한 필력에 힘입어 신빙성을 갖게 됩니다. ‘영향력’의 부정적인 효과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죠. 예를 들어 요즘의 처세술 관련 서적들이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이나 화법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을 보세요. 그런 것들도 근본적으로는 영향력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사소한 행동이나 태도, 말들로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누구에게 해꼬지 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 소설에 대해 잠깐. Agatah Christie의 유작이고 저자가 고인이 된 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출판 시기(76년)로는 크리스티의 맨 마지막 작품이지만, 집필은 훨씬 그 이전인 40년대(영화 ‘가스등’이 만들어진 시기와 비슷하군요)에 완성된 작품이죠.

크리스티가 만든 캐릭터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미스터리 문학 역사 상, Sherlock Holmes 못지않은 사랑을 얻고 있는 Hercules Poirot가 이 소설의 엔딩에서 죽어요. 이 소설이 발표되자 타임즈에 포와로의 부고 기사가 실렸다고 합니다. 실재 인물도 아닌, 소설 속 캐릭터의 부고가 유명 일간지에 실제로 실렸던 에피소드로 더 유명해진 작품입니다.

 

‘가스등 이펙트’를 읽고 제 자신에게 약간의 변화가 생겼는데, 그건 이렇습니다. 누군가를 상대할 때 생각을 좀 더 하게 된다는 거죠. 물론 타고난 성정이나 오래된 습관을 당장 뱀이 허물 벗듯 할 수는 어렵겠지만, 스스로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 객관적으로 살피려는 노력은 본인에겐 어떤 의미로서 새로운 시도이고 도전이 되었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말려들고 있진 않은지, 내가 상대방을 조종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제가 할 행동이나 말 뿐만 아니라 이미 해버린 행동, 이미 뱉어버린 말들일지라도 그것들을 살피는 건 꽤 재미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