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Colin Wilson은 철학자이기도 하고 소설가이기도 하며, SF, Crime Fiction, 평론 등에 두루 저서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 책은 번역 제목이 달고 있는 부제처럼, ‘피와 광기’로 얼룩진 우리들의 역사와 그 이면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폭력성과 범죄성에 대해 쓴 글입니다. 냉소적이지도 않고, 비관적이거나 낙관적이지도 않는, 개인적인 감상에 끌려 다니지 않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세계사(주로 전쟁과 침략의 역사)와 범죄사를 두루 살피고 있는 책이죠.
책은 총 세 개의 chapter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章은 인간의 잔혹성에 대해서, 두 번째 章은 세계사를 통해 본 인간의 잔혹성에 대해서, 세 번째 章은 18세기 말엽 이후부터 현대까지 일어난 주목할 만한 범죄와 범죄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죠.
‘인간은 왜 이토록 잔혹한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첫 번째 장은 무척 인상 깊습니다. 이 장에서 저자는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사회 문화적, 심리학적인 태도로 접근하고 있어요. 그런 저자의 의도는 ‘인류의 역사는 범죄의 역사이고,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범죄성의 발달과 함께 했다’는 구절로 일축되죠.
또한 저자는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는 정신이상자가 아니라, 오히려 진지한 이상주의자라고 말하며, 그 범죄성이, 善이 아닌 惡으로만 달리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진지한 이상을 추구하려는, 그 과정에서 보다 쉽고 빠른 방법을 택하려는 이기적이고 유치한 성향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모든 범죄적 행위의 근간엔, 모든 인간들에게 ‘동류 감정’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이 곧 ‘이방인 배척’과 이어지고 자신들의 폭력적인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진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거예요. 고기를 먹으면서 사람들은 그것이 단지 ‘먹을 것’일 뿐, 살아 있었던 생명체라고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죠. 저자의 이런 관점은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과 ‘희생양 매커니즘’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 있어 무척 흥미로웠어요. 인간의 이런 잔혹한 면은 멀지 않게, 그리스 신화나 Henri Clouzot의 43년 영화 ‘까마귀(le Corbeau)’를 봐도 잘 알 수 있죠. 역사적으로도 유대인들에 대한 나치의 학살이나, 일제 강점기의 관동대지진을 봐도 그렇고요.
‘분리뇌 이론’으로 인간의 폭력성을 분석한 부분도 재미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모두가 분리된 뇌를 가지고 있는데, 좌뇌에 살고 있는 ‘나’는 우뇌에 살고 있는 ‘나’와 전혀 별개의 존재라는 거죠.
‘분리뇌’의 이론으로 범죄를 말하자면, 현실적인 목적만 인식하는 좌뇌가 자기 성찰 없이 목적의 성취만을 지향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거의 모든 범죄자는 이른바 이런 ‘좌뇌 인간’인데, 목적에 너무 매달리게 되면 그 외의 어떤 가치도 만족스럽지 않게 되고, 더 심해진다면 그 목적 자체도 흐지부지되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과 행위에만 집착하게 된다는 거죠.
이런 관점에서라면 우리가 절실히 원하고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파괴할 무서운 힘이 있다는 경고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원래 평소에 ‘인간의 본성은 악(惡)하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 믿음이 내 마음속에 생겼는지는 모르겠어요.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생각에 힘이 들어가죠. 부정적이건 긍정적인 걸 떠나, 어떤 믿음에 신뢰를 얻는다면 그건 마음의 위안이 되는 법이지요.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인간은 악한 것’이 아니라 ‘약(弱)한 것’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듭니다. 서로 돕고 살아야겠다는 생각 뿐. 하지만 그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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