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파선_요시무라 아키라-리뷰

달콤한 쿠키 2025. 5. 26. 17:05

 

이야기를 꿰뚫는 정서는 핍박함이다. 절박한 궁핍과 오로지 자연에 의지해야 하는 경제상황, 과학적 사고와는 한참 떨어진 미개한 사고. 외딴 섬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고가 곳곳에 묻어난다.

마을 사람들의 피 말리는 가난과 육지에 하인으로 팔려가는 생활을 벗어나는 길은 난파된 화물선이 바닷가에 나타나는 것뿐이다. 난파선의 화물로 마을 주민들은 아주 잠깐의 경제적 여유를 맛본다.

이야기에서 가장 끔찍한 건 주민들이 난파선을 마냥 기다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나쁜 기상에 배들이 난파되기를 유도한다’. 난파된 배에 생존자가 있다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결말의 불행은 어찌 보면 자업자득, 인과응보의 측면에서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살인자이고 약탈자이다. 잘못된 프로파간다가 대중을 현혹시키고 그릇된 행위로 이끌며 그것을 정당화하는 모습은 역사적으로도 그 끝이 좋지 않았다.

이들도 자신의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 적어도 외부에 알려지면 끝장이라는 인식을 충분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위험을 감수하는 건 생존에 가해지는 위협이 녹록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그들을 동정하면서도 그 행위엔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그들에게 형벌은 다른 식으로 찾아온다. 좀 더 미묘하고 더 무서운 방식으로.

 

이야기는 시종일관 무거운 톤(tone)을 유지하며 느리게 진행한다. 사람들의 쉽지 않은 삶을 묘사하며 난파선에 대한 진실을 서서히 드러낸다. 이들의 절박함에 독자들은 연민을 갖는다. 인물들에게 어느 정도 동화된 독자는 그들을 아끼면서도 미워한다. 그들의 고난엔 동정을 하지만 행위엔 반대한다. 그러면 안 돼, 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행위를 지켜보는 데서 이야기의 긴장이 촉발된다.

 

시간적 배경이 특정되어 있지 않다. 드러난 생활상이 매우 원시적이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는데, 다른 자료에 의하면 에도시대(1603~1868)라고 한다.

저자는 일본에서 기록문학’, ‘역사문학의 대가라고 알려져 있는데, 꼼꼼한 자료 조사와 실증에 상상을 가미한 작풍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우리나라엔 처음 번역된 책이다.

이 책을 추리소설’, 심하게는 호러소설로 소개하고 있는데, 내 생각엔 전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