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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뷰티풀_앤 나폴리타노-리뷰

주인공으로 네 자매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작가가 의도를 했을지는 몰라도 ‘루이자 메이 알콧’의 ≪작은 아씨들≫의 다른 버전으로 읽힌다. 게다가 이야기가 좀 뻔한 구석이 있다. ‘작은 아씨들’을 염두에 두고 읽자니 더 그렇다. 이 사람은 나중에 글을 쓰겠네, 하면 작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사람은 나중에 일찍 죽겠네, 하면 병에 걸린다. 넷 중에 한 명은 동성애자가 아닐까, 했더니 느닷없이 커밍아웃을 한다. 예쁘게 봐주려는 필터를 벗기면 아침드라마에나 어울릴 법한 막장 요소까지 보인다. 점입가경이다. 불륜에 가까운 사랑에 불치병이라니. 너무 뻔한 거 아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독자들마다 ‘개취’가 있으니, 이 작품의 뻔함과 결말의 신파를 싫어할 수도 있겠다. ..

꽃을 읽기_책 2025.04.15

모래 사나이_E. T. A. 호프만-리뷰

이 책 앞에 읽은 ‘위수정’의 책, 어느 단편에서 잠깐 언급됐더랬다. (아! 나한테 있는 책이었지)이 작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표제작인 모래 사나이>고, 이 작품이 실린 번역본만 내가 알기로 7권이 넘는다. 작가의 단행본은 물론이고, 호러+환상 문학 선집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에 읽은 ‘문학과지성사’ 판은 작가의 대표작 세 편이 실려 있고,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 135권으로 나온 ≪밤 풍경≫에는 원작에 실렸던 작품 8편이 모두 실려 있다. 혹시나 읽을 의향이 있다면 을유문화사 판을 권한다. 한참 후배인 ‘아서 메켄(Arthur Machen)’과 공통점이 많다. 낭만주의적인 작풍에 호러와 미스터리, 환상소설 등의 장르적인 색채가 강하다. 대략 골자를 추리자면 이..

꽃을 읽기_책 2025.04.15

우리에게 없는 밤_위수정-리뷰

책을 읽은 지 석 달이 지난 후에 뭔가를 적으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장편소설이면 그럭저럭 감상을 추릴 수 있겠으나 열 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일단 올해 첫 책으로 읽은 작가의 첫 소설집, ≪은의 세계≫와는 많이 달랐다고는 말할 수 있다. 전작이 모호하고 불친절했다면, 이 책은 대체적으로 이야기의 윤곽이 잘 보였다. 어떤 이야기인지 대략 잘 보였다는 말. (그럼에도 말미에 실린 단편 세 편은 여전히 모호했다) 편편이 감상을 적기 위해서 다시 읽어야 할까. 그럴 생각도 했으나 굳이? 이 책으로 시험을 치를 거면 몰라도. 기억을 더듬어 인상적이었던(느낌의 잔재나마 건질 수 있는) 작품들을 적어보자면… 영원한 이인자의 열등감과 시기심을 보여주며 자신을 좀 더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

꽃을 읽기_책 2025.04.15

작은 손_안드레스 바르바-리뷰

❝그것 말고는 달리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36쪽)❞ ❝누군가는 인형이 소리치지 못하도록 그 입을 막아야 했다. 나였던가? 너였나? 누군가는 인형을 밀어야 했다. 우리가 모두 바닥에 넘어졌고 그 인형 위에 있었으니까. 누군가는 그 인형을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 발길질하지 못하도록, 그래서 차분해지도록, 다른 어떤 인형도 그런 적 없을 만큼 차분해지도록, 너무 차분해서 우리가 숨을 돌리기까지 한참이 걸리도록.  인형아, 나는 여러 날을 울었어. 그리고 너를 그리워했어.  우리는 밤새도록 꼼짝않는 그 인형과 놀았다. (124쪽)❞   일곱 살의 ‘마리나’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 들어간다. 그곳엔 다른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에게 마리나는 이방인이다. 마리나와 아이들은 서로를 탐색하며 친구가 될..

꽃을 읽기_책 2025.01.25

밤의 소리를 듣다_우사미 마코토-리뷰

❝무엇이든 팝니다. 삽니다.각종 고민 상담 및 의뢰 환영.❞   허름한 외관에 이름이 ‘달나라’인 가게는 중고 물품을 사거나 팔면서 자질구레한 심부름도 맡는 그런 곳이다. 그 장소를 배경으로 세 인물이 등장한다.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온 18세의 ‘류타’, 달나라의 숙식 종업원인 ‘다이고’, 그리고 그곳의 사장인 인색하고 괴팍하지만 어딘가 인간미 있는 노파 ‘다카에’. 류타와 다이고가 만나 친구가 된 하로노부 야간 고등학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이다.  연작 형식의 장편이다. 세 개의 개별적인 에피소드가 존재하고, 그것들이 곧 하나의 커다란 사건을 이룬다. 이야기의 뼈대이자 대미를 장식하는 사건은 바로 십여 년 전, 동네에서 발생했던 일가족 살인 사건. 당시 유일한 생존자였던, 가족의 어린 아들의 행방은..

꽃을 읽기_책 2025.01.25

쾌락독서_문유석-리뷰

❝책은 즐거운 놀이다 – 문유석❞  전철로 이동할 때 거의 책을 읽는데, 스마트폰이 아닌 책을 펼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무지 반갑다. (앗! 동지다) 다가가서 말을 걸고 싶지만 그건 미친자 취급받기 쉬울 테니,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책 표지나 책등이라도 볼 수 있다면. 이 책을 만났을 때 그런 기분이었다. 책에 관한 책, 독서에 관한 책이라니. 게다가 쾌락으로서의 독서라니. 내가 딱 그런데, 하는 생각에 이 책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책 ‘덕후’로서의 저자의 자기 고백이다. 책에 관한 수다로 일관된 글. 더 정확하자면 저자가 읽은 책들에 관한 ‘썰’과 그것들에 상관된 저자 개인의 추억 등이 주를 이룬다. 정말로 에세이답다. 가벼운 톤에 읽기 쉬운 문장, 수다를 떠는가 싶으면 순간 정색을 하..

꽃을 읽기_책 2025.01.24

아서씨는 진짜 사랑입니다_엘리자베스 버그-리뷰

❝저도 무덤에서 뭔가를 느껴요.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건 아니지만 뭔가가 느껴져요.”“뭘 느끼는데?”“평온함이랄까… 안도감이랄까. 자 됐습니다. 다 풀지 못했더라도 이젠 펜을 내려놓으세요. (78쪽)❞ ❝내 눈에는 시든 잎도 여전히 예뻐요. 시들어 떨어지는 것도 생의 일부잖아요. 꽃망울이 맺힌 상태로 우리 집에 와서 꽃잎을 활짝 벌려 고운 자태를 뽐내다가 이젠 이별을 준비하는 거잖아요. 서서히 이별을 준비하게 놔둬요. 떠날 때가 되면 알아서 떨어질 거예요. 어느 한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때가 없어요. (253쪽)❞  도시락을 들고 죽은 아내의 무덤을 매일같이 찾는 80대 노인 ‘아서’, 편부슬하의 가정에서 외롭고 쓸쓸한 나날을 겨우 살아내는 십대 소녀 ‘매디’, 그리고 아서의 이웃이자 전직 선생님이고..

꽃을 읽기_책 2025.01.23

친밀한 이방인_정한아-리뷰

‘나’는 오랜 기간 슬럼프에 빠져 허덕거리고 있는 작가. 어느 날 신문에서 어떤 소설을 발췌한 광고를 보게 된다. 의뢰자는 그 소설을 쓴 당사자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설을 쓴 사람은 바로 ‘나’다. 그렇게 ‘나’는 광고 의뢰자인 ‘진’을 만나고 등단하기 전, 아주 오래 전에 바로 자신이 쓴 소설을 ‘이유미’란 사람이 도용했음을 알게 된다.  이유미라는 이름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거짓’이다. 그녀를 둘러싼, 그녀에 관한 거의 모든 게 허구다. 심지어 진에겐 성별까지 속였댄다. 이걸 속는 사람이 있다고? 싶지만 최근에 똑같은 일이 있었다는 게 생각난다. 세상 참 어처구니없구나 싶다.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재미있을까. 이 바닥에 세계적인 인물이 이미 ..

꽃을 읽기_책 2025.01.22

루시 게이하트_윌라 캐더-리뷰

주인공인 ‘루시’는 죽어서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인물이다. 밝고 쾌활하고 삶에 용감하고 도전적이었던, 훌륭한 피아니스트로서 기대 받는 재목이었다. 루시의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열정’이다. 동경의 대상과 사랑에 빠졌던 ‘성덕’이었고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고통받는 로맨틱한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우리의 주인공에게도 흠결이 있어 더욱 인간적이다. 열정적이었던 만큼 루시는 현실 감각이 남들 같지 않았다. 가족의 생계에 관해 언니와 아버지에게 모든 걸 떠넘기던 루시는 사랑하던 남자의 죽음 이후 속절없이 무너져내린다.  세계적인 성악가 ‘세바스찬’과 어릴 적 친구이면서 부유한 집안의 남자 ‘해리’는 루시와 더불어 사랑의 삼각 구도를 이룬다. 드러나지 않은 과거에 아파하..

꽃을 읽기_책 2025.01.18

은의 세계_위수정-리뷰

여덟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데 작가의 신춘문예 등단작인 중편, 무덤이 조금씩>이 수록된 걸 보면 작가의 첫 소설집인 듯하다.  새해 첫 소설인데 된통 걸렸다. 편편이 어렵다. 불친절하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다른 독자는 여백이 많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감정을 알 수 없는 인물들, 개연성 떨어지고 산발적이며 일관성 없는 사건들, 울퉁불퉁 매끄럽지 않은 진행, 툭 툭 끊어지는 구성과 모호한 결말.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긴장을 하긴 했는데, 이게 이야기 자체가 주는 긴장감인지,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싶은, 그 끝을 확인하고 싶은 독자로서의 조마조마한 마음인지는 도통 모르겠다. 어둡고 시니컬한 분위기에 현실을 초월한, 꿈을 꾸듯 몽롱한 감각엔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이 보이지만,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

꽃을 읽기_책 2025.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