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기_영화

오슬로, 8월 31일_Oslo, 31st August_2011-리뷰

달콤한 쿠키 2013. 9. 29. 05:33

 

 

 

마약중독의 그늘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중인 서른세 살의 앤더스에게 치료 과정의 일부분으로 취업 면접의 기회가 주어지고, 앤더스는 그것을 위해 오슬로로 향합니다. 외출이 허락된 하루 동안 앤더스는 어린 시절을 보낸 그곳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죠.

단순한 줄거리에 일어나는 사건도 별로 없고 느슨한 영화입니다. 감상자에 따라서 대단히 지루한 영화처럼 여겨질 수도 있고요.

 

 

영화에서 가장 주력하고 있는 부분은 주인공의 불안한 감정입니다. 앤더스의 감정은 조울을 넘나들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쳐 보여주고요. 그 동기는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감정적 상호작용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앤더스의 내부에 있습니다.

 

주인공인 앤더스의 나이인 서른셋이란 숫자는 어정쩡한 나이입니다. 청년의 시기를 벗어났지만 아직 중년의 나이로는 이르죠. 한때 약물중독이란 함정에 빠졌긴 했어도 앤더스에겐 희망이란 것이 있는 셈이에요. 영화를 보다보면 그가 영리하고 재능도 있는 사람이라는 힌트가 나오고요. 하여간 앤더스는 마음먹기에 따라 자신이 그리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앤더스는 주저앉습니다. 영화의 엔딩은 열려있긴 하지만 그의 미래가 암울하고 불행할 것이란 암시를 주죠.

 

 

앤더스가 일말의 용기와 삶에의 의지를 가지지 못한 것은 자신의 책임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과거에 집착하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이나 자신의 상황과 타협하기를 거부합니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마약중독이 아니라 심한 자기 동정입니다. 앤더스는 친구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위태로운 줄타기로 끊임없이 내몹니다. 인생 최고 위기의 정점까지 오른 그의 불안과 좌절감은 속도 조절에 실패하고, 자신을 향한 벗어날 수 없는 자기 동정은 타인들에게 그것을 강요하며 결국 자기 비하로 이어지죠.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된 사람이 가장 마지막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을 스스로 파멸시키는 것뿐입니다. 영화 속의 앤더스는 거의 그 과정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안타깝고 암울한데다가 불안한 정서의 영화입니다. 영화 자체는 그 정서를 '멜랑콜리'라는 단어로 표현했지만 그 단어로는 부족합니다. 이 영화는 신경질적인 날카로움으로 가득 차 있어요. 단조로운 영화의 구성과 절제된 영화음악은 영화의 그런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한 번 쯤 눈여겨 감상할 만합니다. 누구에게나 어느 한 순간, 자신이 삶에 갇혀 있고 스스로가 보잘것없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라고 느껴질 때가 있는 법이죠. 그럴 때 이런 이야기는 우리에게 삶의 의지와 용기, 살아나갈 동기를 줄 수 있으니까요.

 

우리의 삶에 그늘이 드리워질 때, 우리는 주춤거리거나 웅크려들기 쉽습니다. 이 영화 속의 앤더스처럼 말이죠. 삶이 우리 앞에 가져다 놓는 위기에 맞서느냐, 아니면 그 주인 자리를 양보하느냐는 결국 우리의 몫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그리고 그 결정이 결국 옳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믿어요.

 

 

사족.

Pierre Drieu la Rochelle의 소설, ‘Le Feu Follet'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Louie Malle이 63년, 같은 소설로 동명의 영화를 만들기도 했고요. 이 영화는 완전한 리메이크는 아니고, 이야기의 기둥과 설정 몇 가지만 빌려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