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에서 잘 나가는 신혜는 승진 기회까지 바쳐가며 관계를 유지해온 남자한테 채이고 분해 하지만 십 년도 더 어린 남자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자 머뭇거립니다.
전업 주부인 미연은 남편과의 섹스를 아주 즐겁고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남편은 그렇질 않습니다. 아내에게 밝히기 거시기한 뭔가가 있거든요.
과부인 해영은 베이커리를 겸한 카페를 운영하는데, 근사하고 중후한 초로의 공예가와 사랑에 빠졌어요. 그런데 과년한 딸이 거치적거립니다.
세 명의 사십대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인기 미드 시리즈인 ‘섹스 앤 시티’나 우리 영화 ‘처녀들의 저녁 식사’, 같은 감독의 ‘싱글즈’ 등의 영화들과 모양새가 비슷합니다. 비슷한 영화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 이 영화만 보기로 하죠.
우선 재밌는 영화입니다. 러닝타임 내내 시간 가는 줄을 모를 정도로요. 그런 데엔 쫄깃쫄깃한 대사와 보편적인 유머 코드, 배우들의 능청맞은 연기가 큰 몫을 해냅니다. 저는 옆사람이 민망해할 정도로 키득거리면서 봤네요.
하지만 그런, 겉치레들을 걷고 나면 영화는 얄팍한 본질을 드러냅니다. 재밌게는 봤는데 극장을 나오고 나면 영화에 대해 별로 기억할 것이 없는 거죠. 여자들의 수다빨 외에는요.
일단 테마가 불분명합니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말이 대체 뭐죠? 알맹이를 찾을 수 없는 이유를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여자들의 수다’라는 콘셉트에 너무 매달려 있어요. 40대 여자들의 이야기를 한다면서 우리나라 보편적인 40대 여성들의 삶을 조사하고 연구하고 고민한 흔적이 없는 거죠. (영화의 영어 제목이 'About Women' 이랍니다) 영화 속의 세 인물이 우리나라 40대 여성들의 평균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실제의 그들은 자신들의 연애나 섹스 라이프보다 자식들과 남편에 매여 있는 경우가 더 많죠. 여력이 있다면 재산 불리기에 관심을 기울일 정도? 우리 주변의 40대 여성들에겐 영화 속의 여자들처럼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이나 쌀’ 그럴 여유가 없어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삶은 그들에게 보너스고 덤입니다. 사는 게 팍팍한 요즘은 더 그렇겠죠. 하물며 섹스라니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캐릭터들에 가장 큰 문제가 보입니다. 세 여자들 모두 비슷해요. 고만고만하게 똑똑하고, 고만고만하게 잘 살고, 고만고만하게 예쁘며, 고만고만한 고민을 하죠. 고만고만한 여자들이 나오니 고만고만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요. 영화 속의 여자들이 제 고민에 빠져 아무리 심각한 척을 해도 관객들은 그저 ‘강 건너 불구경’만 할뿐입니다. 주인공들이 친근하지가 않으니, 감정 이입하고 이야기 속에 빠져들 여지가 없는 거죠. 전혀 다른 영화지만 ‘써니’에서 보여준 캐릭터 모델의 다양화는 이 영화에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영화 속의 세 여자는 여자들 스스로의 판타지가 반영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전문직에, 그렇지 않다면 남편 덕에 돈도 좀 만지고, 그 나이 되도록 로맨틱한 감정을 잃지 않고 있는, 살면서 겪게 되는 삶의 불행이나 고통조차 멋지고 드라마틱한, 그렇게 나이 들고 싶은 욕망을 표현한 캐릭터죠. 여자들은 모두 ‘독립적인’ 여자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그건 겉멋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게 큰 문제냐고요? 이 영화의 목적을 상기한다면 세 명의 캐릭터 모두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죠.
영화는 오로지 재미만을 위해 기획된 것처럼 보입니다. 감동은 없어요. 클라이맥스 이후로 약간 눈물샘을 자극하긴 하지만, 그건 그냥 슬프고 안 된 겁니다. 영화는 그럭저럭 물 흐르는 것처럼 나가다가 막혀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 같이 보입니다.
영화의 종착점이 어때야 했을까요. 영화의 목적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줌마들도 여자고, 그 이전에 한 인간이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라는 모티프로 시작했겠죠. 하지만 개인이 추구하는 행복이 비단 ‘사랑’과 ‘섹스’에 국한된 문제입니까? 영화는 전혀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영화가 마치 쓰레기나 된 듯이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맨 처음에 적었듯이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재미조차 없는 영화들이 발에 채일 정도니, 일단 그것으로 절반은 성공한 겁니다. 중요한 건 나머지 절반인데, 그게 좀 아쉬운 거죠. 영화가 더 보기 좋게 나올 수 있었는데 말이에요. 이 글 처음에 ‘섹스 앤 더 시티’나 ‘처녀들의 저녁식사’ 같은 영화들을 언급한 것도 이 영화만의 개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좋은 것들을 까먹고 묻혔으니 이 영화를 꽤 즐긴 관객으로서 안타까운 거죠.
롯데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작이라고 하네요. 처음 시나리오는 40대가 아닌 50대 여자들의 이야기였다고 해요. 만약 오리지널 버전 그대로 나갔다면 오히려 더 나았을까요? 아니면 이만큼의 성공도 못 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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