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기_영화

만신_2014-리뷰

달콤한 쿠키 2014. 4. 5. 13:28

 


만신 (2014)

MANSHIN: Ten Thousand Spirits 
7.9
감독
박찬경
출연
김금화, 김새론, 류현경, 문소리, 김상현
정보
드라마, 다큐멘터리 | 한국 | 104 분 | 2014-03-06
글쓴이 평점  

 

중요 무형 인간문화재, 대동굿 기능 보유자 등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무당 김금화에 관한 영화입니다.

일단 내용을 떠나 영화의 만듦새가 무척 예쁩니다. 민화를 이용한 애니메이션 화면이 특히 그렇죠. 영화의 형식도 특이합니다. 주인공의 인터뷰를 곁들이면서 배우들이 나와 그 사람의 삶을 재연하는 식이예요. TV 예능 프로의 재연극처럼 보인다는 불평도 있지만 본인은 아주 괜찮았습니다.

외형적으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넘나드는 영화의 외모처럼 그 성격이나 목적도 다양합니다. 만신 김금화의 전기 영화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근대사에 대한 역사 영화이기도 하고, 인권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면서 우리나라 전통 종교인 무교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고요.

 

영화가 보여주는 김금화의 일생은 파란만장합니다.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이유로 태어날 때부터 그는 차별을 겪어야 했고 그것은 거의 평생 그를 쫓아다니죠. 유년 시절에 보였던 신기는 그의 운명을 결정짓고요. 그의 삶엔 가끔 환대와 우러름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편견과 천대, 차별과 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가 평생을 걸쳐 싸운 대상은 외부의 편견과 무교에 대한 그릇된 시각입니다. 그 야리야리한 체구로 거의 온 세상을 상대로 싸우면서 살아왔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한 개인으로서 김금화는 오히려 차분합니다. 영계와 인간계의 매개로서의 역할은 자신이 선택한 삶이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를 조롱하고 협박하며 차별하고 두려워합니다. 여전한 황해도 사투리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의 삶을 되짚는 김금화의 모습은 오히려 편안해 보입니다. 자신이 당한 온갖 사건과 구설에 분노하거나 실망하지 않는 모습이었어요. 그것들조차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죠.

 

또한 영화가 덧붙이기를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비단 김금화 자신의 남다른 능력 때문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와 육이오 전쟁, 80년대 군사 정권 등의 시대적 배경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는 거죠. 김금화는 시대의 희생양이기도 했고, 권세를 다지려는 권력자들의 도구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부당한 대접을 받았어도 무교에 대한 세인들의 인식은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고, 그런 차별은 종종 말도 안 되는 폭력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사당이 불태워지고 마을 입구에 세워진 정승이 훼손되는 사건들 기억나세요? 미친 짓이죠.

 

세대에 걸친 김금화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모두 좋습니다. 연기할 영역이 그리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모든 장면에 집약적인 감정을 전달해야 했는데, 모두 잘 한 것 같아요. 배우들로서는 평소의 자신들에게 익숙한 연기보다 힘든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김금화를 연기한 김새롬이 무구(巫具)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쇠를 동냥 받는(‘쇠걸립’이라고 한다네요) 마지막 시퀀스에는 영화의 주제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무당이 되려는 사람에게 ‘쇠걸립’이 갖는 의미와 권총이나 총알 같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 고안된 도구를 쇠걸립으로 바치는 것에서 폭력에의 거부와 평화, 화해, 연대와 결속에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어요. 결국 무당이 하는 일도, 죽은 자를 위로하고 산 자와의 화해를 꾀하며, 너도 나도 죽은 자도 산 자도 모두 안녕하자는 것이니까요.

 

제목인 ‘만신’이란 말은 ‘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인데, 사실 ‘무당’이라는 말 자체가 존경과 우러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요즘 흔히들 사용하는 ‘무속인’이란 말은 오골오골하죠. 그 말은 오히려 무당들을 모욕하는 겁니다. 사실은 그 이상이죠. ‘무교(巫敎‘)’는 우리의 전통 종교였습니다. 근대를 지나 이런저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미신이 되고 속임수가 되고 우상 숭배가 되고 사기극이 됐지요. 미신적인 속성이나 속임수, 우상 숭배나 신도들을 상대로 등을 쳐 먹는 사기극은 여타 다른 종교에도 있어 왔습니다. 그런 무교가 속되다는 뜻의 ‘속(俗)’자를 사용해서 ‘무속’이 된 후로, 우리는 우리의 뿌리를 부정하고 스스로의 치부인 듯 창피해 하는 것에 더 당당해졌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우리의 뿌리 하나, 신체의 일부를 뭉텅 잘라버리는 것과 뭐가 다르답니까. ‘무교’라는 키워드 없이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여자’ 김금화의 모습이 충분히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젊은 시절의 사진을 보니 아주 아름다운 얼굴이었는데, 여자, 아내, 어머니로서의 김금화는 어땠을까 자못 궁금해집니다.

 

사족.

한 포털 사이트에서 인물 검색으로 김금화를 찾아보니, 직업이 ‘무용인’이라고 나오더군요. ‘굿’이 일종의 공연 예술이라는 것엔 충분히 공감을 하지만, 무용인이라뇨.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잖아요. 그냥 ‘종교인’, 혹은 ‘무당’, 아니면 ‘만신’이라고 하면 될 것을. 무교에 관련된 단어들이 그렇게 껄끄러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