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기_영화

이스트_The East_2013-리뷰

달콤한 쿠키 2015. 6. 7. 20:41

 


이스트

The East 
7.7
감독
잘 배트맹글리
출연
엘렌 페이지,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브리트 말링, 패트리샤 클락슨, 실로 페르난데즈
정보
액션, 미스터리 | 미국, 영국 | 116 분 | -
글쓴이 평점  

 

전직 F.B.I. 요원이었던 ‘새러’는 ‘구린내’를 풍기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테러의 조짐을 미리 읽고, 그것에 대비를 해주는 대가로 돈을 버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F.B.I.와 긴밀한 협조관계에 있는 새러의 회사는 아무리 명백한 위험에 처한 기업일지라도 일단 자신들의 고객이 아니면 모르는 체 하는 기업윤리에 의해 운영돼요. 철저히 계약과 돈에 의해 움직이는 회사죠.

새러는 제인이라는 본명이 있지만 요원으로서는 새러입니다. 영화에서 새러는 유능하고 경험이 풍부하며 자신만만하고 원칙을 준수하는, 회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모범 사원으로 묘사되죠.

 

그리고 새러와 그가 다니는 회사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의 대척점엔 ‘이스트(The East)’라는 집단이 존재합니다. 그 집단은 무정부주의 성향의 테러 단체로,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을 무시하는 비윤리적인 기업에 대한 테러를 일삼고 있어요. 그들은 히피(hippie)의 문화와 생활 습관을 따르며, ‘눈에는 눈’의 논리에 움직입니다. 그들이 목표로 한 기업들이 사회에 끼친 폐해 그대로 되갚아준다는 식이죠.

 

이야기는 새러가 신분을 숨기고 이스트에 침투하여 그들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단체를 폭로하여 와해시키려 하지만, 점차 본래의 목적을 잊고 그들의 사회와 목적에 점차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요. 새러의 비밀 요원으로서의 활약은 스릴러 느낌으로 그려지고 새러가 이스트의 목적에 점차 설득되는 과정엔 로맨스가 동원되죠. 스릴러로서도 드라마로서도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쉽게 상상되듯, 이야기는 작정하고 사회적인 이슈를 담고 있습니다. ‘환경문제’와 ‘공공의 선(善)’, 여기에 ‘기업의 윤리’라는 테마가 끼어들죠. 익숙하고 흔하며 중요한 주제이지만, 그런 만큼 홀대받기 쉽죠. 영화는 설정은 물론이고, 에피소드, 환경 파괴로 동물들이 죽어나가는 화면을 직접적으로 삽입함으로서 제 목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주제를 전달하는 데에 있어 이런 방식은 촌스럽고 아마추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영화에선 그런 방법이 오히려 먹힙니다.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인 태도는 오히려 용감해 보이죠. 환경과 기업 윤리라는 이슈에 대해 무관심했던 관객들 코앞에 현실을 직시하라고 문제들을 들이대고 있는 느낌이죠. ‘자, 봐. 이래도 괜찮아?’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에 쉽게 설득당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이스트’가 사용하는 방법에 딜레마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이스트’란 집단이 선의 집단인가, 악의 집단인가 하는 문제죠. 그들이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폭력이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범법이니까요. 게다가 이스트라는 단체가 아무리 공공의 정의를 위한다고 큰소리를 쳐도 그들의 행동엔 사적인 복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거죠.

 

하지만 영화는 그에 대해서 살짝 핑계를 마련해 놓습니다. ‘엘렌 페이지(Ellen Page)’가 연기한 ‘이지’는 이스트가 처한 윤리의 문제를 희석시키기 위해 설계된 캐릭터입니다. 이지는 동료들과 함께 물을 오염시키고 근처 주민들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벌을 주려 합니다. ‘사회적인 복수’의 대가는 바로 자신의 목숨이고요. ‘공공의 정의’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를 증오하고 사회적인 복수를 행하는 이지는 영화 안에서 가장 빛나는 캐릭터입니다. 부모 덕에 그 그늘 아래서 호의호식하며 사회에의 환원은커녕 오히려 제 몫 축날까 전전긍긍하는 우리의 영화나 TV드라마에서 흔한 캐릭터들과 비교해 보세요. 영화나 소설, 드라마 속의 캐릭터는 시대를 반영합니다. 단순히 트렌드를 좇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그것들은 시대를 반영하는 동시에 동시대의 가치관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이야기 속에 ‘이지’ 같은 캐릭터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현재 우리의 시대와 가치관이 그렇다는 것과 크게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작가들 탓할 일은 아니죠.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엔딩입니다. 이야기의 맥락을 짚어보자면 힘이 빠지고 안일해 보이는 결말입니다. 너무 교훈적인 엔딩이라 도덕 교과서를 읽는 기분도 들고요.

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수긍되는 점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맥락에서라면 그렇지만 캐릭터의 맥락을 따지면 있을 수 있는 행동이거든요. 뻣뻣한 사람이 열렬한 사랑에 빠지고 난 뒤, 유연한 모습을 보이는 건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까요.

 

사족.

1. ‘돈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타락하는 것을 목격하고 본인도 타락하는 것’이 두려워 이스트의 일원이 된 벤지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백인우월주의자들과 함께 산다면, 스스로도 백인우월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도덕’ 과목은 그래서 어려워요.

 

2. 엘렌 페이지와 ‘패트리샤 클락슨(Patricia Clarkson)’ 때문에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만, 주인공 새러를 연기한 ‘브릿 말링(Brit Marling)’이란 여배우를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화려한 미모는 아니지만 지적인 외모에 당차고 고집스러운 분위기가 매력적이더군요. 게다가 감독과 함께 이 영화의 시나리오도 썼답니다. 다재다능한 배우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