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영아 유괴 및 살해 혐의로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앨리스와 로니는 이제 열여덟의 소녀들입니다.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지만 과거의 그 사건을 계기로 서로에게 완전한 타인처럼 행동합니다. 과체중의 외모에 열등감이 있는 앨리스는 식품점에서 일하는 로니를 거의 하루 종일 스토킹하고 있고, 앨리스의 엄마인 헬렌은 구직을 핑계로 밖으로만 나도는 딸을 방치하는 한편 자신의 딸보다 로니의 안부를 더 걱정하고 있으며, 두 소녀는 서로를 외면하면서 과거 범죄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7년 전 일어났던 사건과 비슷한 영아 실종 사건이 발생하고, 과거의 사건을 담당했던 낸시는 두 사건의 유사점을 근거로 앨리스와 로니에게 접근합니다.
과거로부터 드리워진 범죄의 그림자, 불쾌한 인물들, 암울한 분위기와 익숙하지만 가능성 있는 소재들로 시작된 영화는 일단 시작은 좋습니다. 외형적으로 실종이라는 미스터리에 큰 비중을 두고 시작된 이야기는 내부로 갈수록 캐릭터들, 즉 앨리스와 로니, 그리고 헬렌이라는 인물들의 내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죠.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우왕좌왕합니다. 영화는 무척 분주한 편인데, 말 할 거리를 하나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죠. 현재의 실종 사건도 해결해야 하고, 두 소녀들이 과거에 지은 죄도 저울에 달아야 하고, 그런 두 소녀와 앨리스의 엄마, 헬렌이 이루는 미묘한 삼각관계의 심리도 그려야 하고, 형사인 낸시의 트라우마도 보여줘야 하니까요. 그래서 영화는 종종 제 페이스(pace)를 놓치고 맙니다. 관객들로서는 약간 혼란스러워요.
여기저기 포커스를 들이대는 바람에 영화는 좋은 이야기 거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산만한 분위기를 띕니다. 본인은 지금의 미스터리를 앞세운 범죄 영화의 장르보다는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에 멜로드라마의 요소가 강조되는 한편, 더욱 캐릭터들에 집중하는 드라마 장르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으로선 캐릭터들에 대한 힌트만 여기저기 던져놓고 깊이 더 파고들지 않은 것 같은 아쉬움이 있거든요. 영화의 모든 재료들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극장용 장편영화보다는 TV 미니시리즈가 더 적합하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면서 영화가 간과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앨리스 모녀의 관계였습니다. 딸의 친구에게 더 큰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헬렌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불편한 마음을 경험합니다. 앨리스가 엄마로부터 보다 정당한 관심과 애정을 받았더라면 현실은 달랐을까요. 앨리스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열등감과 깊은 증오심은 과거 범죄의 가장 강한 동기가 아니었을까요. 그 심연의 그늘엔 ‘도착(倒錯)된 모성’이 남긴 상흔이 있지는 않았을까요. 하지만 이런 인물 심리의 미스터리는 그다지 비중있게 다뤄진 편은 아닙니다. 지금으로서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밖엔 더 할 말이 없는 것 같아요.
앨리스 모녀의 관계에서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브라이언 드 팔마(Brian De Palma)의 76년 작, <캐리(Carrie)>가 연상됩니다. 신(神)을 향한 지나친 사랑이 딸로 하여금 자신의 염력을 오용하게 만들었듯이, 딸아이의 친구를 향한 헬렌의 과한 관심과 애정은 앨리스로 하여금 친구를 살인자로 내몰게 만듭니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은, 다름 아닌 ‘헬렌’일지도 모르겠어요.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본 영화였습니다. 인물들의 표정을 짚어내는 집요한 카메라나 조용하지만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 이야기가 품고 있는 비밀에 대한 호기심을 영화 끝까지 잃지 않았던 점이 인상적이었죠. 하지만 여전한 미모가 눈부셨던 다이안 레인(Diane Lane)을 보는 즐거움이 가장 컸던 것 같지만 배우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연기할 공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시나리오의 탓도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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