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기_책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_구광렬-리뷰

달콤한 쿠키 2015. 9. 13. 16:13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

저자
구광렬 지음
출판사
새움 | 2015-07-0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한 줄, 한 줄이 비장하고 경이롭다!” 멕시코 국민영웅 ‘뭄’...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차량 절도의 누명을 쓰고 수감된 멕시코의 한국 유학생이 이런저런 일을 겪다가, 결국 멕시코 독재에 항거하는 반(反)정부군의 일원으로서 전설적인 저격수가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멕시코’라는 이국적인 배경에 ‘하드보일드’적인 분위기, 게다가 중남미 문화권에 매우 익숙하고 그쪽 문학계에서 꽤 유명하다는 그 경력답게, 작가는 자신의 글감과 소재에 대해 무척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두드러집니다. ‘한국 문화의 세계화’라는 슬로건은 낯부끄럽더라도, 우리나라 문학계의 주류는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은 반가웠죠. 액션을 내세우고 있는 장르라는 사실에서 더더욱. 하지만 장점은 그것뿐입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재미있는 소설은 아닙니다. 그뿐 아니라 왜, 누구에게, 무엇을 위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어요.

목적과 의도가 모호해도 재미있는 작품들이 있고, 반대로 별 재미도 없고 잘 읽히지도 않지만 작품에서 들리는 작가의 목소리에 무척 공감이 가는 작품들도 있지요. 하지만 구광렬의 이 소설은 둘 다 아닙니다. 작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이에요. 제가 이 소설을 별로 즐기지 못했던 몇 가지 이유를 적어보죠.

 

왜 하필 멕시코였을까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가장 궁금했던 의문이었습니다. 작가는 왜 하필, 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멕시코란 나라를 배경으로 선택했을까요.

물론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 작가의 경력은 주로 중남미 국가들을 무대로 한 것이라 그쪽 지역의 사람들이나 지리, 문화에 대해서 훤하겠죠. 작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을 쓰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데킬라와 선인장, 사막 등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멕시코라는 나라는 작품에 이국적인 분위기를 부여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는 배경이었겠죠. 게다가 멕시코의 근현대사와 우리의 근현대사에 닮은 점이 많다는 것도 작가에게는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격동의 80년대’나 ‘독재’라는 키워드도 마찬가지이고요.

하지만 ‘독재정치’를 비판하기 위해서라면 멕시코라는 나라보다 차라리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기가 독자들의 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돼요. 책에 실린 작가의 후기에 의하면, 원래 이 작품은 그 나라에서 그곳의 언어로 출판할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하죠. 하지만 그게 여의하지 않자, 국내에서 출판하기로 하고 다시 썼다고 해요. 그런데도 작가는 처음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어요. 물론 우리의 비극을 타국의 경험과 역사에 빗대서 말하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짐작이 돼요. 하지만 그 결과물은 우리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어 주기엔 모자라도 한참 모자랍니다.

‘독재’에 대한 작가의 목소리는 그저 ‘공산당이 싫어요’ 수준에 불과합니다. 독재 치하의 민중, 서민들의 고통이나 공포가 잘 드러나질 않고 있기 때문이죠. ‘독재’를 고발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잘 알겠지만 그 거부와 증오가 피상적이고 막연해서 작품에 잘 녹아있지 않습니다. 독재가 그 시대, 그 나라의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괴롭혔는지, 민주화를 가로막은 그 정치 체계가 훗날 멕시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작가는 정작 작품의 본질은 외면해 버립니다. 결국 이야기는 핵심에 도달하지 못하고 수박 겉만 핥고 있어요.

 

이런 헐렁한 이야기 속에서 ‘인간적인’ 인물들이 존재하기 만무합니다. 무용담의 주인공들만 있을 뿐이죠. 이 작품 속엔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인간다운 인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면은 없고 껍데기뿐인 인물들에게 공감하기가 어디 쉬운가요.

강경준이란 주인공을 예로 들어보죠. 이 사람은 주인공을 하기에 너무나 편리하게 설계된 사람입니다. 좋은 체격에 태권도와 합기도에 능하고, 더군다나 너무나 잘 생겨서 여자들 뿐 아니라 게이들도 한눈에 홀딱 반합니다. 이 정도면 제임스 본드 수준 아닌가요. 그리고 줄맞춘 듯 늘어 놓은 이 사람의 갈등과 고민은 너무나 단편적이라, ‘우수에 젖은 마초’ 코스플레 이상은 아닙니다.

강경준이라는 인물에 대해 가장 불만인 것은, 이 사람의 동기에 전혀 공감이 가질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유학 중인 타국에서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참담한 심정은 이해가 간다고 쳐도, 그 나라 독재자에게 총구를 겨누는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요. 작가는 ‘복수’라는 핑계를 서둘러 대긴했지만 부족합니다. 이 사람은 마치 작가의 꼭두각시처럼 보여요.

 

흡사 TV미니시리즈의 하이라이트나 긴 소설의 축약된 줄거리를 읽는 것 같은 전개도 문제입니다. 1984년경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서울 올림픽이 언급되는 엔딩까지, 거의 5년이라는 시간을 아우릅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겠지만, 평범한 한국 유학생이 타국에서 누명으로 고생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는 족족 죽음으로 내모는 불행을 겪다가 결국은 자신의 조국도 아닌 타국의 민주화를 위해 총잡이가 되는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는 무척 긴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약간 과장해서) 거의 대하소설에 어울릴 소재를 240쪽의 장편소설 안에 우겨넣느라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허겁지겁 진행되는 통에 인물들은 설 자리를 잃고 기계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며 이들의 감정은 부족한 디테일로 터무니없고 느닷없어 보이죠. 어디, 제목처럼 ‘여자 목숨으로 살아야 하는’ 남자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어야 하는’ 여자들의 감정이 제대로 보이기나 하느냔 말이죠. 참으로 처절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처절함이 제대로 독자들에게 전달되었느냐고요.

 

그러면서도 군더더기가 참 많습니다. 작가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느라 작품의 반(半)을 허비합니다. 고국의 하숙집 주인인 고산댁과 박씨에 대한 이야기나 나우칼판의 삼인방 이야기는 그냥 사족입니다. 그리고 비교적 중요한 국면인 지진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독자는 소설의 반이나 되는 120여 쪽을 인내심을 갖고 읽어내야 하는 거죠.

그런 반면, 초반엔 꽤 중요하게 부각됐던 ‘페드라’같은 인물은 진행할수록 흐지부지되어 버립니다. 이 정도면 ‘실종된 캐릭터’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소설에 대한 기대는 별로 크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유명세도 무식한 저에겐 금시초문이었고요. 하지만 대형 서점마다 이 책이 눈에 잘 띄는 서가를 점령한 모습과,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번쩍거리는 배너 광고는 이 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더군요. 또 낚인 거죠.

어쩌면 이런 리뷰를 쓴 이유도 이 작품에 대한 불평보다는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올바른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이 시대의 마케팅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어요. 베스트셀러니, 화제작이니 하는 것들엔 거의 눈길도 안 주는 내가 어쩌다가, 에휴…….

 

사족.

제목의 출처는 본문 161쪽에 나옵니다.

그리고 ‘얼굴이 험악하지 않은 걸로 봐선 강력범은 아닌 것 같았다(본문, 126쪽)’는 작가의 편견은 약간 위험해 보이더군요.